개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문학의 힘
그 아름다운 가능성에 대한 치열한 모색!
“작가에게 보내는 격려”와 “독자에게 건네는 위안”(정과리)을 ‘다감’한 목소리에 담아, 한국문학의 ‘지금’을 통해 ‘미래’ 성찰한 김치수의 새 비평집 『상처와 치유』(2010년, 339쪽/3부 21편)가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발간되었다. 여전히 날카롭고도 웅숭깊은 사유와 따뜻한 정서, 그리고 폭넓은 독서와 성찰로부터 비롯하는 힘 있고 단단한 문장들은 그가 어느새 종심(從心)의 나이를 넘겼음을 잊게 한다. 특히, 4·19비평그룹의 주역으로, ‘새로운 문학’의 출현에 한 축을 담당했던 평론가 김치수의 새 비평집이 4·19혁명 50주년이 되는 올해(2010년) 출간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어떤 폭력적 정의도 가로막을 수 없는 ‘자유와 창조’의 4·19 문학 정신으로부터 출발한 이번 비평집 『상처와 치유』는 어느 시대 어떤 체제에서나 상처 입는 개인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문학의 고유한 힘과 그 역사(歷史)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김치수의 비평은 작가에게 보내는 격려이고 독자에게 건네는 위안의 메시지다. 그의 문체는 곁에 앉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정과리, 『김치수 깊이 읽기』, 「책을 엮으며」에서
저자 김치수는 1966년 중알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이래, 『산문시대』와 『68문학』 동인을 거쳐 김현, 김병익, 김주연과 함께 문학과지성의 동인으로 활동해왔다. 김치수의 이 굵직한 약력은 한국 현대문학사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특히, 이 ‘굵직한 이력’ 중에서도 핵심에 놓여 있는 ‘4·19세대 문학인’ 김치수는 그러나, 보편적 의미에서의 ‘세대’라는 한정적 구획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평론가다. 그의 문학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문학은 멈춘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김치수는 누구보다 4·19적인 평론가이기도 하다.
한글을 배우고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쓴 우리 세대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최초로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동류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세대의 문학을 읽고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거기에 나타난 우리 세대의 정신을 찾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한글세대의 문체와 감수성, 그들의 문제의식을 밝히는 작업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책머리에」에서
이 글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4·19세대는 이른바 1) 민주주의를 교육받은 세대이며 2) 한글세대이다. 이는 곧, 3) 언어와 사유와 행동의 일치가 이뤄진 첫 세대임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얻어진 ‘동류의식’은 불의의 권력-힘과 싸울 수 있었던 동력인 동시에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근원이다. 이처럼 4·19혁명 세대란 해방 부근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196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으며, 자신들의 힘으로 불온한 정권을 끌어낸 한 세대를 통칭한다. 이 시기/세대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시발점인 동시에 한국 현대 정신사의 시발점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말했고, 행동해냈으며,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한데, 김치수와 그의 비평에 붙는 ‘4·19’란 수식은 이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물론, 여기서의 4·19는 분명 그 격동의 시기를 가리킨다. 실제로 그는 1960년 4월 19일, 그 격렬한 ‘현장’에 있었으며(『김치수 깊이 읽기』, 정과리 엮음, 문학과지성사, p.26 참조), 그 시기를 함께 보낸 이들과 ‘새로운 시기’를 살아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4·19’란 정치 현실적인 의미 그 이상이다. ‘그들’은 4·19를 통해 정치적 의미의 자유뿐 아니라 정신적 자유를 얻어내었다. ‘정신적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은 4·19비평그룹과 김치수에게 4·19는 정신의 자유, 인간의 자유, 문학의 자유를 의미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김치수와 그의 비평에 붙는 ‘4·19’란 인간의 자유 정신을 의미함에 다름 아니다. 4·19는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계승과 극복이라는 차별화된 ‘세대’의 개념이 아닌, 불멸의 정신의 의미에 ‘세대’이고 ‘문학’이다.
김치수는 이렇게 얻은 ‘자유의 정신’을 바탕 삼아 문학의 진정성을 탐구한다. 이 ‘진정성’은 모든 위대한 정신과 고전이 그러한 것처럼 인간이 존재하는 한, 초-시공간적 개념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문학의 초-시공간성의 존재 근거를 ‘상처’와 ‘치유’로부터 찾는다.
나는 우리 문학이 다르고 있는 공통된 주제가 개인이 겪은 역사적 상처라는 것을 발견하고 문학 정신의 근본적인 양상이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머리에」에서
언제나 개인에게는 역사적인 의미의 상처가 존재한다. 지배나 전쟁, 혹은 혁명의 복판에 삶을 살든, 그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삶을 살든, 그 상처의 크기와 숫자에 상관없이, 개인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의 종류는 인류사적이기도 하고 가족사적이기도 하고, 개인사적이기도 하다. 그 종류와 형태와 관계없이 개인은 상처 입기 마련이다. 그렇게 개인은 역사 속에, 사회 속에 둥지를 틀고 생을 유지한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모든 개인, 즉 ‘우리’에게는 치유와 재생이 필요하다. 모든 개체의 궁극은 생을 유지·보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극복의 힘, 즉 치유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이 힘의 근원을 ‘문학’이라고 말한다. 문학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하게 하는 모색”인 까닭이다.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 문학. 이 문학의 힘은 개인을 핍박하고 억누르는 힘에 저항하고, 이를 극복하여 자유와 미래를 얻는 힘이다. 이 책 『상처와 치유』에서 김치수는 자유 정신의 힘으로 한국문학의 과거-현재-미래를 성찰한다. 과거에서는 정신의 근원을, 현재에서는 극복의 현장을, 미래에서는 가능성을 찾는 이 ‘긍정의 비평’은 작가의 상처를 위로하고 독자들의 치유를 돕는다.
저자가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비평집 『상처와 치유』는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작가들의 치열함에 대한 위로와 박수다. 좋은 작품에 대한 그의 긍정적 분석과 해석은 여기서 기인한다. 이로써 우리의 작가들이 삶의 상처와 아픔을 상대하는 이 싸움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 때 우리의 ‘상처’ 그 치유의 가능성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견 허물어지고 있는 듯한 정신, 우리가 인간이기에 가능한 이 모든 상처를 위해 평론가 김치수가 내미는 이 따뜻하고도 힘찬,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비평집 『상처와 치유』는 그것이 비록 지금 당장의 ‘치유’가 아닐지라도,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만들 것이다.
『상처와 치유』의 제1부는 저자가 대학에서 퇴임한 뒤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자신을 매혹시킨 소설들과 그 소설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미래지향적’ 의미들을 발굴하고 과연 문학의 가능성은 어디에 닿아 있는가에 대해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같은 4·19세대의 대표작가 김주영과 이청준의 소설들을 신화적 구조로 파악하고 그것의 현대성을 확인하는가 하면, 김연수, 김중혁, 신경숙 등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젊은 소설들의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제2부는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론으로 꾸려져 있다. 이병주, 홍성원, 이청준, 김원일에서부터 정찬, 최수철 그리고 김연수와 조경란에 이르기까지의 소설들 그리고 박이문, 정현종, 마종기의 시들에서 저자는 문학의 근원과 그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현대인의 상처와 그 상처의 치유 가능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때론 집요하게 추적하여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한국문학만의 고유성과 이에 기여하고 있는 현대 한국의 특수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제3부는 2000년 중반 한국문학의 지형도를 살펴본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각해의 총론 격인 각 글들은 문학의 교류, 민족 문학, 시, 소설, 희곡 등 각각의 소제목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 각 장르와 화제가 되었던 주제들에 대한 문학평이다.
책머리에
해방 후 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배우고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쓴 우리 세대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최초로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것은 우리 세대만이 갖고 있는 언어와 사유와 행동의 일치라는 동류의식을 갖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세대의 문학을 읽고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거기에 나타난 우리 세대의 정신을 찾고 한글세대의 문체와 감수성, 그들의 문제의식을 밝히는 작업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 세대의 특성은 그 이전 세대 문학과의 관련 아래에서 설명되고 그 이후 세대의 문학에 의해 계승 혹은 극복되는 과정을 통해 설명된다. 민족적 열등감을 강조한 식민지 사관을 극복한 새로운 역사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 우리 세대의 비평은 그렇기 때문에 좋지 않은 문학 작품을 비판하는 부정적 비평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한국문학의 형태와 정신적 지향을 찾고자 한 긍정적 비평을 목표로 삼았다.
이번 평론집의 교정을 보면서 나는 우리 문학이 다루고 있는 공통된 주제가 개인이 겪은 역사적 상처라는 것을 발견하고 문학 정신의 근본적인 양상이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생활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삶의 원리나 양상이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어느 시대 어떤 체제에서나 개인은 상처를 입고 고통 받는다. 문학은 그 상처와 고통의 정체를 밝혀주고 그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것이 값싼 화해나 손쉬운 결말이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하게 하는 모색일 때 문학은 우리의 마음에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다.
책머리에
제1부
하찮은 이야기들의 감동
화해와 상처의 치유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국 소설의 풍경
서정시의 시대는 갔는가
한국 소설의 현대적 신화─이청준과 김주영의 소설
제2부
예술가와 사상가─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
세계화된 시인의 꿈과 언어─박이문의 『부서진 말들』
김현 문학에 관한 기억들─인간적 면모와 일화
완전한 자유의 꿈─정현종의 『광휘의 속삭임』
시인의 자리─마종기론
빛나는 대서사의 힘─홍성원의 소설
상처의 아픔과 치유의 미학─이청준의 소설
3대의 가족사─김원일의 『전갈』
영혼의 목소리─정찬의 『희고 둥근 달』
진부한 일상과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최수철의 『몽타주』
우연과 필연─김연수의 두 장편소설
자아의 존재론적 탐구─조경란의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제3부
세계를 향한 발돋움─2005년 문학적 상황
문학의 분단 극복을 위하여─2006년 문학적 상황
한류와 한국문학─2007년 문학적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