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축적된 고통과 응결된 눈물,
깊이 있는 문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언어의 연금술
이동하 대표작 『장난감 도시』
생생하게 다가오는 전후 도시적 생태의 질곡과
실감 있게 드러나는 궁핍한 시대의 인간 생리!
초판 간행 이후 시간의 벽을 넘어 끊임없이 독자와 평자 들의 애호와 평가를 끌어 열고 있는, 말의 바른 의미에서의 ‘스테디셀러’들을 충실한 원본 검증을 거쳐 다시 찍어내어 우리 시대 명작 소설들이 펼치는 문학적 축제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시리즈의 스물다섯번째 작품으로, 전후 도시의 척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동하의 대표작 『장난감 도시』가 출간되었다.
세 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1955년경, 초등학교 4학년의 한 소년이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 변두리 판자촌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담고 있다. 작품 속의 화자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을 통해 복원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과거의 연속적이고 총체적인 삶은 각각의 부에서 19개, 18개, 16개의 짧은 삽화들로 드러난다. 그 삽화들 속에는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는 본토박이, 피난민, 떠돌이 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지만, 작가가 이 작품에 담고자 한 것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문양이 아니다. 작가는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어버리면, 세상에 되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라는 삶의 지혜를 체득해가는 한 초등학교 4학년생의 의식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김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새로운 깊이의 해설로 그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나간다는 데에 있다. 이번 신판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김광규의 시 「이대목의 탄생」을 언급하는 것으로 해설을 시작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시골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휴전 직후의 도시로 ‘이식된’ 어린이가 ‘장난감 도시’와도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거의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통과제의를 경험하면서 빛나는 작품을 쓸 문학적 양식을 비축하여 ‘이대목’ 같은 문학의 이파리를 틔워내는, 그런 형상이기 때문이다.”
낯익은 세계로부터 갑자기 떨어져 나와 뿌리 뽑힌 주인공이 도시의 변두리 판자촌으로 이식되면서, 갈증과 구토를 느끼고 아버지의 부재와 생활의 빈곤으로 결핍과 불안을 느끼다가, 결국 어머니를 여읜 후 그 결핍과 불안은 극대화된다. 우찬제는 “‘장난감 도시’에서의 모든 갈증과 허기, 결핍과 불안의 심층에 바로 “사랑의 결핍”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년 비극이었고 문제적이었던 셈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화자는 이 모든 상황에서도 함부로 웃거나 울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지연된 애도는 “자신의 소년 시절을 견디고 성장을 거듭해나가면서 상상력과 연금술로 단련된 이후” 이처럼 빛나는 작품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1982년 초판이 발행되었던 이 작품은 12년 뒤인 1994년 재편을 거쳐, 또 그로부터 15년 뒤인 2009년 현재의 3판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이야기와 문장들을 다듬어 그 완성도를 높인 이 작품은, 30년 가까운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가슴 먹먹한, 그러나 토해낼 수 없는 슬픔과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때문에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21세기에 이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난감 도시』는 척박한 전후 도시에 갑작스럽게 이식된 어린이의 고통스러운 통과제의 이야기다. 느닷없이 뿌리 뽑힌 아이가 감당하는 고통의 스펙트럼이 인상적이다. 전후 도시적 생태의 질곡을 생생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궁핍한 시대의 인간 생리의 현장을 실감 있게 안내한다. 그런 난세에 인간적 자존과 위의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하는 윤리의 문제를 환기한다. 아울러 뿌리 뽑힌 삶으로 인해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적절히 감정을 치유하고 자기를 성장시켜 나갈 계기를 어떻게 마련하는가, 고통스러웠으되 함부로 울 수도 없었던 상처받은 내면 아이의 고통을 애도하는 작업이 지연되는 가운데 이동하의 문학적 상상력은 어떻게 깊어지는가, 그리고 그 난세에 축적된 고통과 응결된 눈물이 어떻게 훗날 언어의 연금술로 미학화되는가 등의 문제를 숙고하게 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신판 작가의 말
『장난감 도시』는 1982년도에 첫 판을 냈고, 다음 해던가 재판을 찍었다. 내 기억으로는, 두 차례를 다 합해도 3천 권이 넘지 않는다. 그리고 열두 해 뒤인 1994년도에 판형과 표지를 바꾸어 다시 한 판을 더 찍었다. 발행부수는 천 권이었지 싶다. 그 이듬해, 동아출판사 간행 100권짜리 전집 ‘한국소설문학대계’의 제54권에, 몇 편의 단편들과 함께, 통째로 수록되었다. 여기서도 초판 분 1천 부던가 2천 부에 해당하는 인세 외에는 받은 게 없다. 내가 쓴 소설 중에는 그래도 『장난감 도시』가 좀 팔릴 거라던 주변의 기대에는 도무지 미치지 못한 셈이다.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게 작가의 솔직한 욕심이라면 나로서도 아쉬움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경우란, 정작 책(『장난감 도시』)이 필요한 사람도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팔리지 않는 작가의 서러움은 아마도 이런 데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참에 복간을 기획해준 출판사가 고맙기 그지없다.
『장난감 도시』는 첫 발표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이제 은연중 나의 대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곤혹감을 느낀다. 아직은 대표작을 쓰지 못했다고 고집하고 싶은 까닭에서다. 어쨌거나 이번에 다시 읽고 부분적으로 손질하면서, 내 문학의 근원 정서를 새삼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평소 내 소설 읽기를 싫어하면서도 이것만은 예외적으로 종종 뒤적거려보곤 했던 게 비로소 이해된다. 그랬다. 글쓰기가 힘겨울 때 또는, 문득 길을 잃어버린 듯한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나는 이 소설을 새삼 뒤적거리곤 했던 것이다. 좀 민망스런 고백이 되겠지만 내친 김에 실토하자면, 매번 눈물과 더불어 더없는 마음의 정화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의 피난민촌과 그 마을 사람들인 작중인물들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보잘것없는 언어의 집 속에서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건재하여 더 많은 세상 사람들과 만나기를 나는 또 소망해본다.
2009년 겨울, 밤산골에서
제I부 장난감 도시
제II부 굶주린 혼
제III부 유다의 시간
초판 해설 가난의 문화의 현장 _김현
신판 해설 벙어리의 울음과 애도의 지연 _우찬제
초판 작가의 말
신판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