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의 벽을 뛰어넘는 명작들의 향연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의 스물네번째 선택
‘30년 시간의 벽을 허무는 뜻 깊은 기획,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모델을 내놓으며 빠르게 전개되는 디지털 문화의 성장은 인쇄 활자와 책의 무력화 현상을 바라보는 우려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한 권의 문학책이 작가-출판사-서점-독자를 거쳐 모두에게서 잊히기까지의 순환 주기는 나날이 짧아져간다. 이런 현실에서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독자와 비평가 들의 꾸준한 애호와 평가를 이끄는 책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의 축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비록 인쇄된 활자는 때 묻고 바랬을망정, 그 문장과 행간에 깊이 박인 의미들은 온고지신의 자세로 독자의 눈을 빌려 새롭게 읽히고 해석되며 잔잔한 감동을 전달한다. 때문에 좋은 책이 온당한 대접을 받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새삼 중요해진다.
창사 30주년을 맞은 지난 2006년, 문학과지성사는, 스테디셀러에 대한 스스로의 요구를 실천에 옮기며 독자들이 명작에 가깝게 다갈 수 있도록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는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을 매년 한 권씩 선보이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간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등 보석과 같은 명작들을 저자의 꼼꼼한 수정과 새로운 본문 편집을 거쳐 특별 개정판으로 선보였던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은 2006년 『주말여행』(홍성원 지음)을 시작으로 매년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작품들을 출간하고 있다.
분열된 자아의 다성성으로부터 집요하게 추적해내는 내면의 풍경
마음의 열쇠를 간절하게 응시하여 되찾아내는 상실한 인간성
이번 2009년 겨울, 문학과지성사가 선택한 스물네번째 소설은 1995년 타계한 소설가 허윤석 씨의 장편소설 『구관조』이다. 1979년 출간되었던 이 소설은 당시의 산문적 과제에 대한 대응 서사가 우세했던 1970년대에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문하고 현대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고독과 불안, 공포와 고통을 세련된 필치로 서사화시킨 수작(秀作)이다. 문학사(文學史)적 의미뿐 아니라, 서사 미학의 한 정점으로 기억될 장편소설 『구관조』의 재출간은 문학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에게 인간의 파편화된 내면으로부터 생의 진정한 목적을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구관조』는 1966년, 1부 「구관조」를 『文學』지에 발표하는 것을 그 시작으로 무려 15년간의 구상과 연재를 통해 그 끝을 보았다. 한국 최초의 본격 심리소설*로 현대사회에서 탈락되어가는 인간성을 비판하고, 그 회복의 가능성을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 윤리와 죄, 역사와 구원 등 현대 사회의 결핍된 그리고 핵심적인 문제들에서 찾는 치밀한 내면 세계의 묘사로 신심리주의의 독자적 경지를 확보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주인공 ‘한갑수’란 인물의 현실과 내면의 괴리와 그 갈등에서 드러내난 분열적 정신세계를 내적 독백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사건의 일관성이나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방-감방-법정’ 등으로의 공간의 이동을 통해 작중 인물의 극한적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한편, 인물의 분열된 자아는 ‘돌매’와 ‘득심’이라는 한 쌍의 ‘구관조’를 통해 드러낸다. 이 구관조들은 ‘한갑수’ 본인의 분신인 동시에, 그의 과거(죄책감)와 현재(불안함)에 대한 은유적 분신이기도 하다. 이(들)을 넘나드는 현실-꿈, 각성-환상, 죽음-삶, 자아-타자 등 내면에선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개념들은 현대 한국인들의 고통스런 현실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구관조도 한갑수도 타인이 아니다”라고 고백함으로서 소설이 내재하고 있는 현실을 고백한다.
문학평론가 우찬제 씨(서강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역시 이 소설의 해설에서 주인공 한갑수와 작가 허윤석을 일치시키며, “한갑수라는 인물은 결여의 공간에 존재”하며 “있는 자리에 없고, 없는 자리에 있는 역설적인 존재”임을 밝힌다. 그(들)은 “있는 자기를 죽이고, 없는 자기를 살”림으로 해서 “자기 치유의 가능성을 가까스로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내의 분열적 징후는 결국 “결여의 존재론”인 동시에 중층적인 삶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이다. 그러므로 이런 주체의 “타자화 전략”은 결국 20세기의 한국 근대인들의 내면의 치유에 대한 논의인 것이다.
장편소설 『구관조』는 타국의 지배와 전쟁을 경험하며 살아온 20세기의 ‘한국민’들이 “왜 그와 같이 고통스러운 결여나 결핍을 내면화해야 했으며, 어떻게 그토록 불길한 고통과 불안을 백일몽처럼 견디어야 했”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음에 열쇠를 간절하게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이 답변은 결국 20세기를 거쳐 21세기-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한국민’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허윤석의 처음이자 마지막 장편소설 『구관조』가 30년이 지난 지금 재발간되어야 할 그리고 기념되고 기억되어야 할 이유다.
후기에서
나는 이 작품을 소설을 쓴다고 쓰지 않았다. 더욱 시를 쓴다고 쓰지도 않았다. 야인으로 돌아가서 내 얘기를 내가 쓰는 투로 씀으로 해서 현대문학의 습성을 탈피해봤으면 했다. 작품에 나오는 구관조도 한갑수도 타인이 아니다. 내 체내에 나와 함께 이단을 모의하고 있는 내 분신들로 돼 있다. 허나 분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문학작품에서 하듯이 언어의 기능 한계선까지만 응해줄 뿐 그 이상은 표현을 해주지 않았다. _허윤석
표4글
허윤석의 『구관조』는 리얼리즘이 중심 경향이던 1970년대 소설 동향을 고려할 때 매우 이채로운 소설임에 틀림없다. 외적으로 주어진 산문적 과제에 대한 대응의 서사가 우세했던 시절에 본격적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문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상과 본질, 외적 풍경과 내면 정경, 현실과 소망 사이의 괴리라는 근본적 문제에 착목하여, 내면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서사화했다는 점에서 세계문학의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아울러 식민지와 전쟁을 혹독하게 체험한 한국 근대인의 비극적 내면과 심리적 외상을 극화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의 특수성을 웅변한다. _우찬제
분신(分身)과의 대화
증인 신립(申立)
삽화
인간 초심(初審)
인간 재심(再審)
돌아오지 않는 새들
무서운 대결
축제
하수인의 변(辯)
구관조
초인(草人)
타인을 대행하는 두뇌들
후기
해설| 백일몽, 그 결여의 존재론_우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