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지적이고 예술적인 언어의 실험으로 빛나는
새로운 글쓰기의 전범!
최인훈의 소설과 희곡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글은, ‘문학 혹은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이방인, 피난민이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자각 혹은 작가적 운명에 지극히 충실한 작품들이다. 그 작품들은 최인훈 자신이 쓸 수 있고 또 써야만 하는 문학적 주제에 탐닉하게 된 계기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려낼 뿐만 아니라, 그가 평생에 걸쳐 탐문한 추억과 현실에 기반을 둔 ‘관념적 재현체’의 실재들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최인훈은 그의 초기작들에 해당하는 『광장』(1960) 『회색인』(1964) 『서유기』(1966) 등에서 도저한 ‘관념’으로 그 문학적 글쓰기의 과정을 수행했고 훌륭하게 상징화된 리얼리티의 세계를 선보인다. 이어지는 『총독의 소리』(1967) 연작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71)에서는 ‘패러디’의 기법을 도입하여 다른 텍스트와의 적극적인 길항 속에 개인의 관념이 갇힐 수 있는 주관성의 세계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하늘의 다리」(1970)와 「두만강」(1970)은 앞서 시도된 관념과 패러디 형식의 특징을 끌어안으면서도 주체의 내외부를 분석하는 발판으로 ‘환상’이라는 기법을 새롭게 도입하고 있다.
지적으로 추상화되고 우화적으로 관념화된 이 땅 위의 이방인들,
그 소외된 관찰자들이 그려내는
추억과 현실이 길항하는 환상의 세계
「하늘의 다리」(1970)는 독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삼십대 중반의 월남민 출신 화가 김준구가 고향에서의 학창 시절 은사였던 한동순 선생의 부탁으로 그의 딸 성희를 찾는 이야기를 기본 줄기로 삼고 있는데, 소설은 그 줄기 사이사이에 김준구의 관념과 하늘에 떠 있는 여자 다리의 환각, 그리고 그의 짝패인 소설가 한명기와의 대화가 수시로 틈입하며 전개된다. 작품 전반에 걸쳐 같은 형태의 문장들이 반복되어 서술되는 가운데 함께 출현하는 하늘에 떠 있는 여자의 다리라는 환각은 다름 아닌 김준구 자신의 내면에서 발생한 낯설고도 낯익은 현상이다. 여기에서 최인훈이 의도하는 바는 생성된 환상의 유희가 아니라, 환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의식 속에서 그러한 환상이 발생하게 된 현실적 근거를 탐색하고자 함이다. 이미지의 치환과 중첩을 통해 빈번하게 등장하는 환각 그리고 인간 의식의 불투명성에 대한 비유와 언급은, 상징화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회의와 그러한 상징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밀한 욕망이 불러낸 결과에 해당한다.
「하늘의 다리」가 기억과 의식 사이의 복잡한 치환과 압축의 고리, 그리고 그 고리에서 일탈된 낯선 환각을 보여준다면, 작가 최인훈의 실제적인 처녀작에 해당하는 「두만강」(1970)은 작가의 읽어버린 고향 회령을 무대로 한 일제 말기의 ‘일상 속에 주저앉은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현실 부정의 의지와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민감한 존재들, 그들 스스로 난민들이고 이방인들, 경계인들이라는 소외 의식 속에 사회의 주변인으로 전락하는 군상이 등장한다.
이렇듯 소설 「하늘의 다리」와 「두만강」을 통해 우리는 환각과 현실을 한 작품 속에서 동시에 제시하고 그 상호 관련의 폭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최인훈 소설의 고유한 구도를 재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사적인 기억 혹은 트라우마가 객관화 ․ 보편화되어 현실에 대한 문학적 인식으로 성립되어나가는 극적 파노라마와 만나게 된다. 이는 곧 자유 연상 기법 그리고 이미지들의 무한 반복과 변이 속에서 (문학) 언어에 대한 반성은 물론이요, 본질에 해당하는 이 세계와 언어의 상징으로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가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찰나를 쉼 없이 모색하는 최인훈 문학의 본령이라 하겠다.
살아 있는 지식인의 표상이자, 삶과 소설이 쉽게 분리되지 않는 운명을 지닌 작가의 상에 가장 적확한 최인훈. 그의 문학적 진면모를 오늘에 되살려 독자들이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학과지성사는 2008년 11월부터 새로운 판형, 정교한 편집으로 독자들에게 ‘최인훈 전집’을 새로이 선보이고 있다. ‘최인훈 전집’ 7권으로 펴내는 『하늘의 다리/ 두만강』 역시 최인훈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과 예술적 깊이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텍스트로써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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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처녀작 「두만강」은 작가의 잃어버린 고향 회령을 무대로 한 일제 말기의 ‘일상 속에 주저앉은 비극’을, 중편 「하늘의 다리」는 ‘따라지’로 월남한 지식인 예술가의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그리고 있다. 따라서 소년기와 성숙기의 두 작가적 체험이 상상적 공간으로 옮겨진 이 두 소설은 전환기의 정신적 ․ 풍속적 한계 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 한계 의식이야말로 예술과 현실의 배반을 지양하려는 작가의 꿈일 것이다. 천이두(문학평론가)
「하늘의 다리」와 「두만강」은 피난민 의식을 지속적으로 탈주관화, 객관화하는 과정의 한 국면을 보여준다. 최인훈은 문학 혹은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이방인, 피난민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자각적이었고 그것을 작품을 통해,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문학 작품을 쓴 것이라기보다 문학을 살았다. 손정수(문학평론가)
[표지 그림] 서용선, 돈암동 건널목, 200×339cm, acrylic on canvas
[작가 컷] 이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