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이름, 사랑 그 절정의 시공간에서 흔들리는 생의 시어들
김명인 『꽃차례』
특유의 섬세함으로 척박한 삶에서 오련한 빛을 찾아내는 시인 김명인의 아홉번째 시집 『꽃차례』(문학과지성사, 2009)가 출간되었다. 시인의 그간 시적 행보를 망라한 시선집 『따뜻한 적막』(문학과지성사, 2006) 이후로는 3년 만에 발간되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 『꽃차례』에는 삶의 남루함조차 결연한 아름다움으로 만드는, 김명인의 고유한 힘이 더욱 도드라진다. 생 위에 피어올린 빛나는 언어를 셈을 하듯 써내려간 58편의 시를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시인이 전 생애를 통해 찾아낸 치명적인 사랑에 중독될 것이다.
꽃차례는 꽃이 대궁 위에 붙기까지의 순서를 일컫는 단어이다. 씨앗이 깊지도 얕지도 않게 묻히고, 해와 달과 비와 온도의 힘을 빌려 싹을 틔우고, 꽃잎을 달기까지 이 모든 현상을 일컫는, ‘우주적 단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현상을 한 번에 괄호 치는 이 놀라운 단어가 바로 김명인의 새 시집의 제목이다.
‘꽃차례’라는 단어는 들여다보는 자의 단어다. 지나치거나 쳐다보는 자는 이 단어를 알 수 없다. 인내심과 예민함 그리고 애정과 일종의 두근거림을 가지고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피어나는 것들을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김명인은 자신의 일상의 전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것들. 과거-현재-미래의 공간이 시로 태어나는 순간을. 그리고 그순간이 바로 시집 『꽃차례』다.
그러니 내 누추한 사랑이여, 아직은 너를 놓칠 때가 아니라고 말해다오. 다시 기운을 내서 흘러가보자. ―뒤표지 글 부분
김명인은 말한다. 아직 사랑을 놓칠 때가 아니라고. 이 말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사랑을 꼭 쥐고 놓지 않는 시인의 손을 떠올릴 수 있다. 절박함으로, 불안함으로 쥐고 있는 사랑은 이 순간, 그러나 절망이기는커녕 희망이다. 놓치지 않기 위하여 시인은 기운을 차린다. 다시 시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세상의 격절들을 몸과 꿈의 생생한 현실로” 불러온다. 사랑을 얻기 위하여? 아니다. 사랑은 이미 쥐고 있지 않은가. 시인은 자신이 쥐고 있는 이 사랑이 사실 얼마나 가슴 뛰는 것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노래해야 하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닿기 위하여. 그리하여 시인 자신에게 닿기 위하여.
그가 떠나면서 마음 들머리가 지워졌다
빛살로 환하던 여백들이
세찬 비바람에 켜질당할 때
그 폭풍우 속에 웅크리고 앉아
절망하고 절망하고서 비로소 두리번거리는
늦봄의 끝자락
운동모를 눌러쓰고 몇 달 만에 앞산에 오르다가
넓은 떡갈잎 양산처럼 받들고 선
꿩의밥 작은 풀꽃을 보았다
힘겹게 꽃 창 열어젖히고 무거운 머리 쳐든
이삭꽃의 적막 가까이 원기 잃은 햇살 한 줌
한때는 왁자지껄 시루 속 콩나물 같았던
꽃차례의 다툼들 막 내려놓고
들릴락 말락 곁의 풀 더미에게 중얼거리는 불꽃의 말이
가슴속으로 허전한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꽃차례」 부분
시집 『꽃차례』에 비밀은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의 괘적이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김명인의 꽃차례는 시작되고 끝나며 다시 시작의 조짐을 내보인다. 이 환형의 시간은 그의 시 곳곳에서 찾아낼 수 있다. 이 무궁한 반복은 실상, 회귀라는 불교의 사상과 진배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같은 것일까. 그럴 리 없다. 김명인은 한 권의 시집으로 완성시킨 세계 안에 각각의 시마다 다시 소우주, 한 차례의 꽃차례를 심어놓는다. 그렇게 시집 내의 시간은 프랙털의 그것처럼 무수한 반복을 이루면서도 그 안에서 끝없이 변신한다. 동시에 끝없이 변신하면서도 무수한 동일성을 형성한다. 동시에 김명인의 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번갈아가면서 동시에, 단숨에 살아내버린다. 우리가 시집을 읽으면서 체험할 기묘한 경험은 이 무구, 무수한 공간적-시간적 감각에 기대 있다.
저녁이 와서 하는 일이란
천지간에 어둠을 깔아놓는 일
그걸 거두려고 이튿날의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까지
밤은 밤대로 저를 지키려고 사방을 꽉 잠가둔다
여름밤은 너무 짧아 수평선 채 잠그지 못해
두 사내가 빠져나와 한밤의 모래톱에 마주 앉았다
이봐,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어
부려놓으면 바다가 다 메워질 거야
그럴 테지, 사방을 빼곡히 채운 이 어둠 좀 봐
망연해서 도무지 실마릴 몰라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겹쳐
밤새도록 철썩거리며 파도가 오고
그래서 여름밤 더욱 짧다
어느새 아침 해가 솟아
두 사람을 해안선 이쪽저쪽으로 갈라놓는다
―「천지간」부분
이번 시집의 비밀, 즉 주제가 시간과 공간의 초월적 반복이라면, 이 주제의 축은 ‘현상’과 ‘일상’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축 안에는 거대한 시공간이 응축되어 있다. 이번 시집의 제일 처음에 위치하고 있는 시 「천지간」은 저녁으로부터 시작되어 해가 뜰 때까지의 시간에 바닷가라는 공간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은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느끼게 한다. 두 남자의 대화로부터 독자는 ‘태초’를 느끼는 동시에 종말과 그로부터의 재생까지 느낄 수 있다. 이 웅장함은 그러나 하룻밤 대화에 불과할 뿐이다. 다른 시 「모래톱」에서는 모래톱에서 거북을 키워 바다로 내보내는 바위의 독백이 주조를 이룬다. 이 시의 행간은 단숨에 수백 년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러한 호흡마저 비약이 아니다. 시에서만 가능한 무궁의 시간을 시인은 단 한 단어의 추상어도 쓰지 않고 펼쳐낸다. 어쩌면 시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시의 시간 뿐 아니라 시를 읽는 이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시간도.
또 다른 축인 ‘일상’의 시공간 또한 마찬가지다. 어머니/가족으로 대변되는 시인의 과거는 현재이면서 동시의 미래이다.
어떤 벌레가 어머니의 회로를 갉아먹는지
깜박깜박 기억이 헛발 디딜 때가 잦다
어머니는 지금 망각이라는 골목에 접어든 것이니
번지수를 이어놓아도
엉뚱한 곳에서 살다 오신 듯 한생이 뒤죽박죽이다
밤낮이 예 있어도 분간할 수 없으니
문득 얕은 꿈에서 깨어난 잠
더는 깊어지지 않겠다
이리저리 뒤척거릴수록 의식만 또렷해져
나 밖에 없는 방 안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고
누군가 건넌방 문을 여닫는다, 환청인가?
그러고 보면 나도 어느새 후생과 사귈 나이
―「대추나무와 사귀다」 부문
여기서는 ‘어머니-망각’이라는 과거와 그 과거가 “툭 떨어지”는 나 밖에 없는 방인 현재, 그리고 ‘꿈’이라는 미래의 시간이 뒤섞인다. 그러나 이렇게 아득하기만 한 ‘한 생’을 펼쳐놓으면서 시인은 그저 담담히 “나도 어느새 후생과 사귈 나이”라고 고백할 뿐이다. 그렇게 까마득한 시간은 이 순간, 일상에 편입된다. 어머니의 ‘등’으로부터 생의 시간 지도를 펼쳐내는 시 「등」과 어제의 어머니와 오늘의 어머니 사이에서 대추나무를 키우고 단숨에 베어버리는 시 「도낏자루」 책을 태우며 일가(一家)의 ‘과거-현재’ 사이 화해를 부조하는 시 「책을 태우다」 등에서 우리는 시인의 ‘시간 속에 머무르되 머무르지 않고 벗어나는’ 초시간적인 능력을 본다. 이 능력이 ‘사랑’이다. 그것이 김명인의 시이며, 김명인이라는 시인(詩人)이다.
물론 이번 시집에서는 이러한 시들 뿐 아니라 전작들에서 선보였던 ‘김명인스러운 시’라 할 수 있는 “길 위에 선 시인 김명인”(하응백)의 더 웅숭깊어진 시편들도 만날 수 있다. 행간으로 언어와 언어 사이 여백으로 무한함을 만들어내거나 (「속수무책」) 탁월한 시적 직관을 사유로 발전시켜 끄집어내는 시(「얼음호수」) 혹은 길과 시간에 대한 환유를 다뤄내는 시(「쌍가락지」)등이 그것이다.
나는, 솟아나고 가라앉으며 60억 광년 회로를 따라
약속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억만 년 전에 찢긴 흰 구름
푸른 물결로 출렁이면서
이 모래밭에 뿌리내리려던 한 알갱이 모래
모든 일몰은 죽음으로 간다, 다시 내장되거나
캄캄하게 태어나는 빛!
―「쌍가락지」 부분
해설을 쓴 평론가 이광호는 이런 김명인의 시를 감각하는 일은 여전히 몸 한 부분이 ‘시린 일’이라고 말한다. 해설에 따르면, 김명인의 시는 “삶의 헐벗음”과 누추함 그리고 그 “소멸될 운명”으로부터 길어올리는 “정밀한 시간성의 미학”이다. 과연 김명인의 시는 그렇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 피워낼 후생의 시간과 그동안의 시간이었던 아득한 과거”를 동시에 읽어내기. 김명인의, 김명인 만의 ‘들여다보기’란 이것이다. 그러나 이 ‘들여다보기’를 그저 하나의 시선으로 치부해야 할까. 그의 이러한 생의 태도는 결코 간단치 않다. 비밀을 알아버린 시인의 시에서만 가능한 이런 초-시공간에 대해 무엇이라 일러야 할까. 분명한 것은 김명인의 시는 이 모든 것을 애정어린 눈으로, 그러니까 사랑으로 피워올린다는 사실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어찌 남녀상열지사 속의 닳고 닳은 감정이겠는가. 그것이 아니라, 더 넓은 영원불멸의 미래와 과거 속을 아우르는 하나의 결정체, 절대가 아니겠는가.
김명인의 꽃차례는 이렇게 시간 공간을 아우르는 ‘결정체’이자 ‘절대’에 대한 시집이다. 시도와 좌절 그리고 재시도가 아닌, 생성과 만개, 소멸에서 다시 생성으로 가는 완벽한 체계의 시집이기도 하다. 이러한 체계는 이 우주에 대한 곡진한 사랑으로부터 기원한다. 사랑 없이 어떻게 들여다보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모든 사랑은 태어나고 만개했다가 다시 죽고 또 태어나는 일. 그래. 어떻게 사랑이 멈출 수 있겠는가. 사랑은 사라지거나 마르지 않는다 멀리 시를 시간을 공간을 끌어안고 아득하게 흘러갈 뿐. 만약, 모든 문학 작품이 이 세계에 대한 존경심 어린 주석이라면, 이렇기 때문에, 김명인의 시집 「꽃차례」는 사랑에 대한 놀랍도록 아름다운 주석이라고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꽃차례』 읽기
속수무책
빈농을 먹 치러 오는
저녁나절의 빗소리여, 산막 후드리는
속수무책 소슬바람이여!
구부렸을 고개만큼 절삭당한
키 큰 수숫대가
서걱서걱 먹구름들 썰어 넘기고 있다
그 소리에 불려 오는지
수수밭 뭉갠 검은
화판에 새기듯
희끗희끗 빗살 무늬 흩뿌린다
울음
울 일이 아니라고
커다란 눈 대문짝처럼 껌뻑거리지만
밀고 나오려고 아우성치는 물의 기운 가로막느라
눈언저리가 온통 일그러졌다
어느새 눈두덩까지 벌겋게 달아올랐으니
마침내 수문을 열어젖히자 수로를 따라
낱낱의 봇도랑 이어가며 후루룩
물길 흘러넘친다 누가 손을 뻗어 장마 들머리
툭툭 치는가
더 큰 손이 와서 휘저으면
한 움큼 머리칼 뽑듯 홍수까지 뽑아들 것 같아
파묻은 고백 깊이깊이 다독거리지만
울음 앞이라 참는다는 말 굽이굽이 물결쳐 가라!
까마득한 광대무변이라도 저이 앞에서는
숨겨놓은 강 더는 감출 길 없는 것을!
시인의 말
수국 위에 내려앉은 보랏빛이 희뿌옇게 물러졌다.
어느새 가을이다.
2009년 가을
김명인
뒤표지 글
마당가 벽오동 아래 평상(平床)을 펴고 설핏 낮잠 들었는데, 꿈길 따라나선 잠깐이 일생이 되었다. 회감(回感)의 오동나무로 어느덧 장롱을 짜야 하는데, 푸르게 소용돌이치던 몽유(夢遊). 언제부턴가 활력을 잃었다.
해와 달로 회전해온 귀환에의 신화, 나의 시. 시의 기적은 세상의 격절들을 몸과 꿈의 생생한 현실로 통합한다. 그러나 나는 균열을 용납하기보다는 마음의 전말들을 봉함(封緘)하는데 급급했었다.
그러니 내 누추한 사랑이여, 아직은 너를 놓칠 때가 아니라고 말해다오. 다시 기운을 내서 흘러가보자. 나는 여전히 혈육(血肉)으로 낭자한 시를 욕망하느니, 너의 하해(河海)에 격랑으로 닿고 싶을 뿐!
시집 소개글
김명인의 시는 척박한 변경의 경험을 드러낼 때조차도 결연한 아름다움을 내장한다. 남루함과 아름다움이라는, 생을 둘러싼 극단의 양태는 하나의 시적 육체 안에서 지극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구체적인 이미지로부터 삶의 비의를 탐문하는 높은 밀도의 언어들. 이제 들어가자. 시인이 만난 그 우주적, 치명적인 사랑의 시간으로.
시인의 말
제1부
천지간
쌍가락지
모자
독창(毒瘡)
집과 길
쾌청
맨드라미
모래톱
머뭇하다
어머니의 명주
자반고등어
꽃차례
대추나무와 사귀다
오후 여섯 시 반의 학습
제2부
햇살 소독
도가네 식당
속수무책
너무 무거운 노을
지속
울음
쑥밭
얼음 호수
밤 장대 소나기
유원지
햇살 줄 긋고 지나가는
곤핍(困乏)
노래의 지붕
고랑
나비
제3부
등
도낏자루
다라이 타고 나르는 구름
누에
책을 태우다
빈집
세상모르게 깊었네
소리라는 사막
이사
랍스터를 먹는 시간
리프트
낡은 집
새장에 가두는 여관
전신마취
새와 비, 울음과 구름 사이
제4부
유목 혹은 정착
자전거
꽃밥 가까이
목련
주문진
올망졸망
고로쇠 숲
도원
달밤의 붕어 낚시
사과밭
나귀
아들에게
동안
저수지 관리인
해설|꽃차례의 미학, 시간이라는 독법·이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