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사랑으로 출렁이는 시선
그 속에서 드러나는 한국문학의 지형
시리도록 정확한 비판과 이성과 열정어린 감성으로 쓸어안는 문학의 미래!
우리 문단의 가장 활발한 현장 비평가이자, 탁월한 문학 평론가인 이광호의 새 비평집 『익명의 사랑』(문학과지성사, 2009)이 지난 6월 30일 출간되었다. 2006년 『이토록 사소한 정치성』 발간 이후 3년 만인 이번 비평집은 그간 현장비평가로서 걸어온 숨 가쁜 행보의 집적체이다. 시적인 목소리로, 그러나 냉혹하다 이를 정도로 정확한 문장으로 적어낸 총 5부 27편의 글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학의 탈 시·공간적인 미학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폭넓은 시야를 통해 문학에 접근하려는 의지는 ‘불가능함이 아닌 불가능성’으로의 사랑에 가닿는다.
내가 당신, 하며
꽃가루를 공중에 뿌려주면 공기들은 명랑해질 거네.
새털 옷은 하늘을 얼마나 기쁘게 할까,
사랑인데.
─ 이연주, 「익명의 사랑─위험한 시절의 진료실1」
저자는 동시대의 소설에서 “무심함의 존재 미학과 자기 연출법을 읽”었고, 동시대의 시에선 “탈현대성의 언어가 익명성의 공간으로 존재를 이동시키는 장면”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에는 한국 문학의 현재가 요약되어 있다. ‘익명 속 무심함’은 현실과의 괴리 그리고 무관에 안주하는 습성을 이르는 까닭에 ‘무심함’과 ‘익명성’으로 요약되는 이런 현상은 일견, ‘정치적 사건’인 동시에 ‘문제’로 읽힌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이를 가능성으로 읽고 있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꾸는 방법인 까닭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그런데 “사랑이라니?”(「사랑은 피 흘리는 텍스트, 즐거운 비가」 중에서)
『익명의 사랑』의 머리글 격인 「익명의 사랑에 부쳐」에 따르면, 사랑에는 성도 이름도 없다. 지극히 투명해진 주체의 몸은 ‘이름’에서 ‘익명’으로 이행된다. 그 이행의 노정은 혼재이며 동시에 합일이다. 이 이름 붙일 수 없는 사건은, 그러므로 시이고 음악이고 전위이다. 이는 전작 『이토록 사소한 정치성』의 ‘틈새의 호명에의 반발’과 다르고 또 같다. 존재(문학)를 호명하여 틀 안에 가둬두는 일은 사랑(평론)이 아니다. 이는 사랑(평론)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살해’이므로. 사랑은 이런 일이다. 익명이 될 때까지 투명해져서 비인칭의 탈 사회화 그 안에는 어떤 논리도,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노력. 즉, “다른 삶의 ‘정치성’”이다. 이렇게 다른 삶을 꿈꾸는 한 문학은 불온해질 수 없다. 그리고 불온이 없는 경우에 문학은 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그 가능성은 본질로 다가가는 노력이다. 그런 것들, 불가능한 사랑이 아니라, 불가능성의 사랑으로 문학과 문학 비평은 다시 태어난다. 『익명의 사랑』은 이런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사이에서 쓰인 비평집이다.
제1부 유령의 시간은 근래 한국 문학의 현장의 현상과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글들이다. 여기서 저자는 문학의 자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고 있는 위반을 지적하고, 진정성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시도한다. 또 동인 운동과 인디의 가능성, 2000년대의 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다룸으로서 지금의 문학 현장의 현재를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재고해본다. 제2부 우주 지리학은 최인훈, 오정희 소설에서 찾아낸 동시대성과 김애란, 한유주, 김미월, 이홍, 정한아 등의 동시대 소설의 ‘무심함,’ ‘비인칭성’의 미래를 찾아내어 한국 소설이 걸어온 노정과 그 길의 새로운 확장을 점검한다. 제3부 즐거운 비가에서는 오규원, 김혜순, 기형도, 성기완, 문태준의 시 속에서 찾아낸 ‘지금-여기’의 의미와 시의 본질을 검토하고 사라져버릴 감성의 어떤 것이 아닌 뿌리 깊은 가능성으로서의 시의 정신을 탐색한다. 제4부 소수점 이하는 ‘미래파’로 통칭되었던 2000년 젊은 시인들이 인칭의 세부화 및 변화를 통해 이룩한 비인칭성의 가능성을 읽어내고, 그 ‘파괴’성의 에너지로부터 ‘시의 모반을 꿈꾸는 시’의 가능성/불가능성을 모색한다. 제5부 풍경과 사건에서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공통 분모로서의 사회, 현상의 관계를 고찰해보고, 김주연, 김치수 두 비평가의 비평적 업적을 검토하여, 인문학적인 비평의 가능성을 풀어낸다.
머리말
당신의 사랑에는 이름이 없다. 사랑은 다만 이미지와 리듬으로 다가왔으며, 그 안에서 더 이상 ‘나’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의 한가운데서 감각의 고통과 전율만이 존재했고, 이름은 사라졌다. 그 ‘움직임’과 ‘있음’만이 사랑의 모든 것이었다. 사랑은 익명성으로의 이행이다. 분별의 의지는 사라지고 가슴 떨리는 혼돈의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사랑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 속에 머무는 사건이다. 갈망의 지겨움과 공허 속에서 문득 명랑해진 사랑은 익명적인 힘들과 만난다. 사랑은 근원적으로 시적이고 음악적이며, 급진적이다.
동시대의 소설에서 읽은 것은 무심함의 존재 미학과 자기 연출법이었고, 시에서 읽은 것은 탈현대성의 언어가 익명성의 공간으로 존재를 이동시키는 장면이었다. 오늘의 시에서 비인칭성의 언어를 읽었고, 소설에서 초연성의 존재 미학을 읽었다면, 그것은 시가 언어(감각)의 국면과 관련되고, 소설이 인간(윤리)의 국면과 더 관계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둘은 일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현대 이후의 다른 삶의 ‘정치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어떤 젊은 텍스트 속에서는 거꾸로 소설 언어의 비인칭성과 시 언어의 초연성을 읽었다. 동시대 문학의 무심함과 익명성으로부터 다른 사랑의 사건성을 만났다. 놀랍게도 지난 시대의 빛나는 텍스트들 역시, 명사적인 것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동시대성을 보존하고 있다. 다른 삶(인간, 언어)의 가능성을 꿈꾸지 않는 문학은 불온하지 않다. 비평은 저 매혹적인 텍스트들, 그 몸의 일부가 되고 싶다.
사랑이란 집단적 주체화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비밀스런 2인 공동체를 생성한다. 그러나 그 2인의 공동체에 어떤 이름과 제도가 주어지면, 그것은 다른 억압적인 공동체와 다르지 않다. 들끓는 사랑은 그래서 사랑의 정체성과 동일성을 지우는 데까지, 자기의 파괴와 혼돈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사랑의 (불)가능성이다. 문학이 자신의 이름 너머로, 이름의 완전한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이름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부디 문학이 용서하지 않기를.
지금 메마른 입술을 닫고 사랑을 말할 때, 그건 누가 말하는 것인가? ‘그대’ 입속의 ‘내’ 검은 입, 복화술의 사랑. 불가능한 사랑이 아니라, 불가능성의 사랑. 이름 너머의 당신에게.
2009년 6월
이광호
차례
익명의 사랑에 부쳐
제1부 유령의 시간
이토록 잡스러운 문학의 자율성
(소수) 문학 공동체는 가능한가?─다시, 문학 동인 운동을 생각하며
‘인디’라는 유령의 시간
‘2000년대 문학 논쟁’을 넘어서
제2부 우주 지리학
‘광장,’ 탈주의 정치학─최인훈
그녀 몸 안에, 깊은 물의 시간들─오정희
나만의 방, 그 우주 지리학─김애란
이야기의 무덤 속에서 글쓰기─한유주
최소 낙원의 고독과 은폐 기억의 서사─김미월
달과 룸미러, 사이의 서사 광학─이홍·정한아
너무나 무심한 당신─2000년대 소설에서 읽은 초연성의 존재 미학
제3부 즐거운 비가
투명성의 시학이 끝간 데─오규원
‘두두’의 최소 사건과 최소 언어─오규원
나, 그녀, 당신, 그리고 첫─김혜순
기형도의 시간, 거리의 시간─기형도
사랑은 피 흘리는 텍스트, 즐거운 비가─성기완
극빈의 미학, 수평의 힘─문태준
제4부 소수점 이하
익명적 사랑, 비인칭의 복화술─젊은 시인들과‘파괴’의 시학
소수점 이하의 1인칭들─한국 시와 1인칭의 모험
이상한 2인칭의 세계─한국 시와 2인칭의 모험
숭고한 뒤죽박죽 캠프─황병승
세이렌의 유령 놀이─김이듬
흐르는, 증발하는 그녀들의 환상통로─신영배
초연성(超然性)의 시 쓰기─하재연
제5부 풍경과 사건
불우한 산책자들의 도시─한국 현대문학과 도시의 모더니티
한국 현대시 100년, 그 이후─풍경의 시와 사건의 시
인문학적 비평의 두 열림─김치수와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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