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

박해현 성석제 이광호 엮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9년 3월 3일 | ISBN 9788932019475

사양 신국판 152x225mm · 488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한국 문학의 뜨거운 신화, 영원한 청년의 표상, 기형도
그가 없는 오늘 이 자리에 그를 다시 부른다

80년대 이후 시를 꿈꾸는 모든 문청의 질투와 부러움, 문학 대중의 압도적인 열광 속에, 한국 문학의 뜨거운 신화로, 그리고 꺼지지 않는 생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시인 기형도.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스무 해가 지났다. 한 청년의 투명하고도 깊이 모를 절망과 우울이 지난 20년 동안 한국 현대시사에 끼친 영향력은 그야말로 ‘기형도 현상’이라고밖에 규정지을 수 없는 엄청난 파문이었다. 앞서 시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과 그의 10주기에 맞춰 시인의 시, 산문, 소설 등을 한데 모은 『기형도 전집』(1999)을 펴낸 바 있는 문학과지성사가 올해 기형도 시인의 20주기(3월 7일)를 맞아, 문학/문화사적 측면에서 기형도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그 현재적 의미를 밝히는 한편, 그를 아끼고 추억하는 지인과 문우들의 산문, 그리고 그의 사후 그의 시를 분석하고 의미 지은 여러 비평가들의 밀도 높은 평문들을 한데 모아 『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박해현 성석제 이광호 엮음, 문학과지성사, 2009)을 펴냈다. 그의 사후 20년, 여전한 현재형의 이름으로 한국 현대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그의 삶과 문학, 그리고 문화적 징후를 꿰뚫어볼 수 있는 이번 기념문집의 제목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기형도의 시 세계를 압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전의 시인이 시집의 제목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기형도 시의 현재적 의미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는 글들을 모았다. 우선 기형도를 통해 문학적 감수성을 키운 2000년대의 젊은 시인들인 김행숙 심보선 하재연 김경주와 문학평론가 조강석 씨가 그 생생한 좌담의 현장에 동참해주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처음 기형도 시를 경험했던 순간들에 대해, 기형도 시인이 끈질기게 탐문했던 거대서사에 매몰된 개인 서정의 강렬한 희구와 형식적 측면에서의 집요한 미학적 나르시시즘 추구 등에 대해 각자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자유로이 주고받았다. 또한 각자의 시 세계에 기형도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한 고백을 나누며, 80년대 말에 짧은 생으로 마감한 기형도가 21세기 오늘의 문학적 지형도에 어떤 식으로 깊이 뿌리 내리고 그 현재적 의의를 갱신해가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도 함께 내리고 있다. 이어서 2000년대 젊은 한국 시단을 적극적으로 호명하고 있는 소장 비평가 함돈균 씨가 기형도 ‘사건-현상-텍스트’라는 틀 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예민한 청춘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지순한 울림”으로 그의 시를 명명하고, 사후 20년 동안 이른바 ‘기형도 현상’으로 대중에게 자리재김할 수 있었던 요인에 주목하여 그의 문학적 연대기를 새롭게 구성해주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 씨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당대의 미학적 평가 이상의 문화적 상징성에 주목하여 그의 시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기형도의 거리의 감성은, “도시의 익명적 공간에서 ‘예감’의 순간을 발견하는 관찰자인 ‘나’의 시선과 ‘습관’의 시간 속에 있는 군중들과의 관계” 속에서 구축된다. 이어 그는 거리의 한 순간에, 생의 모든 시간의 무게를 경험하는 기형도 시 속에 응축된 시인의 낯선 시각의 감각을 사회적, 시적 경험으로 정치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더불어 기형도가 거리에서 만나는 다른 삶의 위험한 가능성들은 곧 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미적 사회적 가능성으로 이미 기능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청년의 투명한 우울이 도시의 거리에서 맞닥뜨린 다른 시간들,
한국 현대시의 역사는 그렇게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2부는 직·간접적으로 기형도와의 만남을 가졌던 분들의 산문을 모았다. 이 산문들은 기형도의 인간적인 면모와 문학적 향기를 따뜻하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제껏 기형도의 시에서 우리가 읽어온 절망과 우울의 이미지 대신 소탈하면서도 섬세하고, 여리면서도 강건한 시인의 다층 다면적인 생의 스펙트럼을 새롭게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출판사 대표와 기자로 첫 대면을 가졌던 시절을 회고하는 문학평론가 김병익 씨와 당시 시집의 편집자였던 임우기 씨의 글에서부터 직장 선후배로 시인이 발표하는 시의 영광스런 첫 독자로 자임했던 박해현 기자의 글, 선배기자로서 가슴 먹먹한 추도사를 써내려간 김훈 씨의 글, 한시절을 같이 나면서 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기형도를 추억케 하는 동창 이영진, 조병준 씨의 글, 문우 이문재 나희덕 시인의 촉촉하면서도 애틋한 산문들이 여기에 함께 실렸다. 시인의 문학적 연대기이면서 가장 충실한 자료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소설가 성석제 씨의 글 역시 이 지면에 재수록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구했다.

3부에는 지난 20년간 발표된 기형도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문들에서 뽑은 글들을 실었다. 기형도論의 그동안의 집적과 행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을 연대기적으로 수록한 이 지면에는,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부쳐 이후 기형도 시의 문학적 레테르인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란 결정적 주석을 남긴 문학평론가 김현의 해설(1989)로 시작하여, 기형도 시의 문체와 문장기법을 분석하는 이아라(2005) 씨의 논문까지 다양한 해석과 비평이 차지하고 있다: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한 것은 그런 괴이한 이미지들 속에, 뒤에, 아니 밑에, 타인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져, 자신 속에서 암종처럼 자라나는 죽음을 바라다보는 개별자, 갇힌 개별자의 비극적 모습이, 마치 무덤 속의 시체처럼─그로테스크라는 말은 원래 무덤을 뜻하는 그로타에서 연유한 말이다─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는 데에 있다.
(김현, 1989)
그는 ‘안개’라는 이름의 사막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앞으로만 길게 뻗은 철로 옆에서 마치 푯말처럼 서 있는 자신을. 타락한 세계 속에서 눈물과 울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자는 얼마나 순결한가, 그의 시 곳곳에서 새어나오는 눈물과 울음을 보라. (박철화, 1989)

이 상징적 죽음의 형식을 통해 그의 시는 도시적 삶의 불모성에 대한 소묘 이상이 되었고, 우리는 거기에서 실존적 죽음과 사회적·문화적 죽음을 동시에 읽는 것이다. (이광호, 1989)

스스로 고통이 되고 부정성이 됨으로써 현실의 거짓 긍정성이라는 부정성을 거부하고 전복시키는 언어. 기형도의 언어는 바로 도저한 부정성의 언어이다. (성민엽, 1989)

다가오는 90년대 시의 한 징후였고 예감이었던 한 섬세한 자아는 이 세계의 부조리성과 뜻 있음의 결핍에 대한 진지한 성찰 끝에, 그의 넋에 각인된 악몽의 현실들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보여주면서, 불안과 자학과 절망을 넘어서서, 삶의 한 원리를 제시한다. (장석주, 1989)

기형도의 시엔 현실의 참혹함에 대한 엄정한 관찰과 인식이 있는가 하면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인공낙원으로의 도피적 몰입이 있기도 하고 신성에 대한 갈망과 금욕적인 자기 단련이 있는가 하면 감상적인 나르시시즘의 흔적이 엿보이기도 한다. 지금 이곳의 존재-현실의 나신을 직시하고자 한 이 시인의 노력이 소중한 것처럼 유년의 순진무구함에 대한 깊은 향수 또한 이 시인에겐 중요한 몫이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한계지점으로의 끝없는 접근, 이것이 기형도의 시의 미덕이자 기형도라는 인간의 진정성의 표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의 내적 명령에 충실했고 그럼으로써 1990년대 시의 첫 관문을 열고 나간 시인이 되었다. (남진우, 1999)

시인은 죽음으로써 타자 옆에 살고, 독자는 삶으로써 죽음 안으로 들어갈 통로를 그 시가 연 것이다. 순수-텍스트는 본래 고정된 장소와 확정된 부피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순수-텍스트는 놀랍게도 작품 안에 자리 잡았다. 그 존재방식 또한 시의 내적 구조에 그대로 반향한다. 그는 사후의 영광을 누릴 만한 시인이었다. (정과리, 1999)

그에게 죽음은 노년의 죽음이 아니라 청춘의 내밀한 깊이에서 생성된 죽음이다. 그런 죽음을 보여준 점에서 그의 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영원의 젊음의 얼굴로 웃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오생근, 2001)

2009년 3월 현재, 1989년 5월에 출간된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초판 24쇄, 재판 41쇄, 총 65쇄를 찍었으며 24만 부가 판매되었다. 1999년 3월에 출간된 『기형도 전집』은 초판 15쇄를 찍었으며 4만 7천 부가 판매되었다.

차례

제1부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를 읽는 시간
좌담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이 읽은 기형도 조강석 김행숙 심보선 하재연 김경주
함돈균 수상한 시대에 배달된 청춘의 비가─기형도의 문학적 연대기
이광호 기형도의 시간, 거리의 시간

제2부 기억할 만한 지나침─기형도와의 만남
김병익 검은 잎, 기형도, 그리고 김현
김 훈 기형도 詩의 한 읽기
나희덕 얼음과 물의 경계
박해현 추억의 빈집
이문재 기형도에서 중얼거리다
이영준 형도야, 어두운 거리에서 미친 듯 사랑을 찾아 헤매었느냐
임우기 구름의 관음(觀音)
조병준 질투는 나의 힘
성석제 기형도, 삶의 공간과 추억에 대한 경멸

제3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기형도 다시 읽기
김 현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박철화 집 없는 자의 길 찾기, 혹은 죽음
성민엽 부정성의 언어, 그 사회적 의미
원재길 대화적(對話的) 울음과 극적(劇的) 울음
장석주 기형도 혹은 길 위에서의 중얼거림
정효구 차가운 죽음의 상상력
남진우 숲으로 된 성벽
정과리 죽음, 혹은 순수 텍스트로서의 시
오생근 삶의 어둠과 영원한 청춘의 죽음
이성혁 경악의 얼굴
이아라 새로운 직유의 수사학과 기형도 직유의 겉과 속

문학과지성사는 기형도 20주기 기념문집 출간과 더불어, 3월 5일(목) 저녁 7시에 홍대 인근 이리 카페에서 낭독회 <기형도 시를 읽는 밤> 자리를 마련한다. 우리 시대 기형도와 기형도의 시는 더 이상 추모할 대상이 아닌, 즐겨 읽고, 듣고, 감각하는 문화 현상이기에, 추모 행사가 아닌 문학 축제로, 또한 시를 새롭게 감각하는 자리로 기획된 이 시간은, 시인과 소설가, 음악가(성석제, 이문재, 황인숙, 한강, 김중혁, 함성호, 진은영, 최하연, 성기완, 한유주, 김남윤, 백현진) 등 기형도 시를 향수하는 다양한 세대의 문인과 예술인들이 참여하여, 기형도 시와 그를 추모하는 헌정시를 낭독하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뜻 깊은 밤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더불어 <기형도 시를 읽는 밤>은 기형도로부터 자라온 세대와 뒤를 이어 자라날 다음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기형도’를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작가 소개

박해현

1961년 부산 출생.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현재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으로 재직 중이다.

성석제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간행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재미나는 인생』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적이다』 등이, 장편소설로 『인간의 힘』 등이 있으며, 산문집 『즐겁게 춤을 추다가』 『소풍』 『유쾌한 발견』 등을 펴냈다. 1997년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으며, 동서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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