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숨의 광합성

정과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9년 2월 27일 | ISBN 9788932019468

사양 · 336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작가의 들숨과 날숨 그 내밀한 숨결까지 파고드는
정치하고도 복합적인 겹눈의 시선

1년 전 상재한 『네안데르탈인의 귀환─소설의 문법』 「책머리에」를 통해 저자는 “이 책은 소설의 내적 문법을 중시한 글들을 모았고, 다음 책은 소설이 세계와 직면한 상황을 중시한 글들을 모았”노라고 밝힌 바 있다. 바로 그 다음 책이 『글숨의 광합성─한국 소설의 내밀한 충동들』(문학과지성사, 2009)이라는 제목으로 만 1년 만에 빛을 보았다.

전작이 ‘간단 형식-대위법-중첩법-혼종법’ 등 소설의 내적 문법 탐구를 위한 한국 소설 깊이 읽기였다면, 이번 책에서 저자는 최인훈부터 이응준에 이르는 아홉 명의 소설가들의 작품을 새로 읽으며 소설이 세계와 직면한 상황, 즉 주체 혹은 근대인으로서의 존재(존재의 나침반), 역사 혹은 일상으로서의 시간(회귀의 목마), 그리고 타자 혹은 욕망으로서의 사랑의 문제(사랑의 상대성 원리)를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유의 접근법으로 정치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존재의 나침반’에서는 최인훈, 이청준, 김원일이, ‘회귀의 목마’에서는 최윤, 정찬, 채영주가, ‘사랑의 상대성 원리’에서는 신경숙, 배수아, 이응준이 각각 호명되고 있는데, 치열한 주제의식과 독특한 소설 세계를 구축한 이들 문제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저자의 접근 방식은 여전히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이를 통해 삶에 대한 부단한 반성과 새로운 상상력으로 소설 쓰기에 천착해온 작가들, 그리고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자의 자각과 고뇌를 개성 넘치는 그들만의 언어로 그리는 데 전력투구해온 작가들의 면면이 뚜렷이 부각된다.

주지하다시피 존재와 시간 그리고 욕망은 근대소설의 태동 이후 줄곧 소설의 핵심 주제를 이루어왔던 문제들인지라, 저자가 이미 전작에서 불편한 심기를 표한 바 있는 이른바 ‘조념(造念) 비평’식의 접근으로는 단지 분류하고 갈래지을 수 있을 뿐, 작가의 들숨과 날숨 그 내밀한 숨결까지 간파해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오직 한 가지 강박관념만이 작동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기성(新奇性)을 기준으로 개념들을 끌어 모은 다음, 모든 개념의 문제를 ‘무엇인가’에 집중시킨다는 것이다. 그 ‘무엇’ 안에 대개는 상투적인 내용이 우겨넣어지기 일쑤인데, 그것에 빵빵한 탄성감을 부여하는 건 개념의 신기성이며, 그 점에서 그 탄성감은 일종의 환각이다. 그 환각으로부터 좁은 공간에 갇힌 빛처럼 개념들 사이를 난반사하는 개념 중독증과 개념들을 엇비슷이 붙여서 근사 개념들을 남조(濫造)하는 개념 분열증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놓치기 쉽다. “언어가 존재의 질료라는 건, 글쟁이들은 언어로 호흡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숨을 쉬듯 언어를 쉰다. 언어를 거둔다는 것은 숨을 거둔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그렇게 언어를 쉬어서 그들이 하는 건 삶을 주어진 관념의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생생히 되살아보게끔 하는 것이다. 문학의 역할을 반성과 상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방향이 다를 뿐, 모든 삶을 신생으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공히 같은 일을 한다. 그리고 신생의 삶을 산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그 언어를 ‘어떻게’의 차원에서 맞이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무엇을 가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상식적인 금언은 사실 문학의 진실과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그걸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다면 저자의 접근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책 말미에 붙인 「보유」─‘근대소설의 기원에 대한 이론적 검토’에서 저자는 소설이 왜 단지 시간적 길이만이 아니라 그 깊이를 가지며 동시에 공간적 넓이만이 아니라 그 부피를 갖는지를 기원의 문제를 통해 규명해내고 있다. 즉 “소설은 거짓말을 통해 보다 나은 세계를 꿈꾸며, 동시에 그 언어에 갇힌 꿈의 허망함을 비춘다. 그러니까, 소설의 변형은 중층적인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첫번째 층에서 허구는 세계를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나를 변화시킨다. 그런데 그때 그 변화는 나의 욕망의 방향 속에 놓여 있다. 따라서 그 이중의 변화는 상극의 지점에서 출발하여 동일한 한 지점으로 수렴되는, 사실상 하나의 변화이다. 그러나 바로 덧쌓인 층에서의 변화는 동시적이지 않고 계기적이며, 동질적이지 않고 상충적이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은 세계와 나를 변화시키려는 나의 욕망의 수정·변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삭막한 현실을 낙원으로 만들고 나의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행동이 결국 불가능한 꿈으로 판명되는 바로 그 순간에 나의 욕망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에 직면한다. 그 회의가 극에 달할 때, 소설은 ‘절대에의 탐구’로 혹은 ‘소설에 대한 증오’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소설은 ‘자신의 내부에 반-소설, 즉 그 자신의 요구에 의해 환상을 후퇴시키고, 허구로 하여금 너무나 보잘것없는 마력을 단념케 하고야 마는 까다로운 검열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문제는 소설이 중층적인 두께, 말하자면 시공간적 길이와 넓이만이 아니라 그 깊이와 부피까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구성체임을 간파하고 각각의 위상의 짜임들을 낱낱이 고려하지 않는다면 공감을 통한 스며듦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저자의 첫번째 비평집 제목이 『스밈과 짜임』(1999)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저자는 그 복합적인 구성체를 가히 위상학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복합적인 겹눈의 시선을 통해 조망한다. 소설을 분석하는 그의 위치가 단일하지 않은 것 또한 물론이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마치 존재, 시간 그리고 사랑이 소설 공간에서 얼마나 다양한 위상을 갖는지를 보여주려 하는 듯한데, 그 위상들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낙폭을 느끼는 순간 소설의 두께는 고스란히 비평의 두께로 전이된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얻는다:

“무지의 방식으로 실행된 지식의 획득은 민족적인 것에 대한 집요한 갈망과 외국 이론에 대한 무분별한-무차별적 수용으로 나타나는 새것 콤플렉스를 양 극단으로 가지는 한국 지식인의 사유 구조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게 아닐까?” _최인훈

“「날개의 집」은 큰 타자에게로 가는 길은 헛된 타자(실제의 아버지)로부터 탈출하는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결국 가짜 타자에게로 이르는 길일 뿐이다. 「날개의 집」은 헛된 타자를 떠남으로써 헛된 타자로 돌아오는 길, 그래서 아버지에게서 헛됨의 누더기들을 진실의 징표들로 바꾸는 길을 슬며시 가리키고 있다.” _이청준

“세상 만남의 방식이 나아감이 아니라 들어감이라는 것은 세상이 탐험되어야 할 곳이 아니라 가담해야 할 곳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우선 미완의 주체의 자격으로 세상과 부딪치고 겨루어서 그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의의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세상의 가르침을 받아 그것을 실행하고 갈등하고 성찰하는 가운데 그 의미를 이해한다.” _김원일

“최윤의 소설은 역사의 축약이자, 동시에, 역사의 결여이다. 합쳐 말하면, 소설은 영원히 미완되는 역사이다. 전자의 통로를 통해 작가는 소설을 시로 둔갑시킨다. 묘사와 진술의 복합체가 암시와 환기의 덩어리로 변모한다. 후자를 통해 작가는 이야기의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_최윤

“우리는 다시 한 번 정찬의 소설학이 시간의 연구임을 확인한다. 권력의 안감에 몸을 기대어 그것의 조급한 제 목 죔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은 살아남음의 시간 그 자체이다. 어떤 권력도 종말을 가지고 있다.” _정찬

“감정과 현실, 말더듬과 의미 사이에 놓인 진공의 띠는 사전적 정의대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다. 진공의 과학적 정의는 ‘영점 진동의 파가 충만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 영점 진동에 의해서, 물리학에서 캐시미어 효과Casimir effect라고 부르는 자장이 형성된다. 이 자장의 에너지가 클수록 소설적 완성도는, 다시 말해, 소설의 울림의 진폭은 커진다. 소설에서, 그 영점 진동의 파를 발생시키는 것은 바로 의미에 즉각적으로 쓰이지 못하는 징조 단위들의 짜임과 포개짐이다.” _신경숙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마침내 ‘어떻게’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살펴보고 해독하려고 애쓴 소설가들이 바로 그 ‘어떻게’라는 언어의 운명에 전력투구한 사람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언제나 은밀한 충동들의 형식으로 복류해왔다. 그것은 한국 문학의 수용의 장이 한국 문학을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한 어긋남의 하나의 결과가 오늘의 문학의 제도화와 산업화에 한국 문학이, 소설가들 자신을 포함해서, 지극히 무력한 소이이다. 이 환경 속에 살면서, 나는 숨 막히는가, 아니, 그래도 이들이 그나마 숨통을 틔어주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가, 아니한가? 그 저울 위에 내 책 역시 놓이길 바란다.” _「책머리에」 中

차례
존재의 나침반
21세기에 다시 읽는 최인훈 문학의 문제성
모르기, 모르려 하기, 모른 체하기─『광장』에서 『태풍』으로, 혹은 자발적 무지의 생존술
꿈 이야기: 한국적 모더니티의 한 심연─이청준의 「날개의 집」을 빌려
세상 살아내기의 의미─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회귀의 목마
나날의 전쟁: 일상의 역사 만들기─최윤의 『열세 가지 이름의 꽃향기』
시간의 한 연구: 기억과 변신─정찬론
권력의 모든 것과 모든 것의 권력─정찬의 『황금 사다리』에 부쳐
끝없는 귀환─채영주론

사랑의 상대성 원리
타인의 아이를 향한 꿈─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어른이 없는, 어른 된, 어른이 아닌─배수아의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촛불의 욕망과 사랑의 상대성 원리─이응준의 『무정한 짐승의 연애』

보유
근대 소설의 기원에 대한 이론적 검토

작가 소개

정과리 지음

1958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조세희론」으로 입선하며 평단에 나왔다. 저서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존재의 변증법 2』(1986),『스밈과 짜임』(1988),『문명의 배꼽』(1998), 『무덤 속의 마젤란』(1999),『문학이라는 것의 욕망─존재의 변증법 4 』(2005),『문신공방 하나』(2005),『네안데르탈인의 귀환─소설의 문법』(2008), 『네안데르탈인의 귀향─내가 사랑한 시인들·처음』(2008) ,『글숨의 광합성─한국 소설의 내밀한 충동들』(2009) 등이 있으며, 소천비평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2년 8월 28일 | 최종 업데이트 2012년 8월 28일

ISBN 978-89-320-1946-8 | 가격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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