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사의 큰 산맥, 김윤식
그가 살아온 근현대문학사의 결정적 장면들
문학사와 문학이론, 개별 작가론과 작품론 등 한국 문학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철저한 고증과 분석을 토대로 쉼 없는 연구와 강의, 저술 활동을 펼쳐온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교수가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문학과지성사, 2009)를 펴냈다.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절대적 증언자이자 독보적인 문학사가로, 평생을 글쓰기와 읽기를 업으로 삼아온 저자이기에 이 책의 제목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울림은 새삼 클 수밖에 없으며, 일백 여 권을 웃도는 순수 저작물에 또 한 권을 보태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많은 후학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저자가 2006년을 전후로 국내외 몇몇 한국어학·한국문학 관련 학술단체의 초청과 지원을 받아 쓴 논문들을 추려 묶은 것으로, 전작 『문학사의 새 영역』(2007) 이후 채 묶지 못한 강연문들과 최근 그가 집중적 논의와 저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중어 글쓰기(공간)론> 3부작과 저서 『백철 연구』 등을 놓고 이뤄진 국문학자 남송우 교수와의 대담 글을 함께 엮었다.
저자는, 문학이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입학했던 대학에서 전공으로 삼은 것이 ‘근대문학’이었고, 당시 60년대에 팽배했던 인문학의 사명감이 식민지사관의 극복과 이 ‘근대’라는 개념을 해명하는 데 있었기에 정치적으로 국민국가의 형성과 사회경제적으로 자본제 생산양식이라는 보편성을 탐구하는 데 8년을 보냈다. 이어 일제강점기의 한국적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반제 투쟁과 반자본제 생산양식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8년의 시간을 더 보탰다. 결국 한국사회의 특수성과 세계인류사의 보편성을 이해하는 도정에 그의 평생의 과제인 ‘근대문학’ 연구와 ‘현대문학’ 비평이 무르익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이 책의 2~5부에 걸쳐 그 주요한 학문적, 문학적 성과물들이 알차게 꾸려져 있다. 앞서는, ‘문학이자 그 이상’으로까지 명명되는 카프문학의 실체에 대해 20세기적 단일문학사를 논하는 시선과 탈근대론을 전면에 배치한 21세기적 시선에서 분석한 논문들, 일제 강점기하에서 조선어학회 사건 직후 해방직전까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중어 글쓰기 공간에 대한 실증적이고 정밀한 분석, 그리고 이와 관련한 이광수와 최재서의 글쓰기론, 세계문학의 시선에서 본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이 낳은 문학적 결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어 육당 최남선과 김억, 이상, 김소월, 김기림, 임화, 유치환 등 전시대의 문학적 맹아들과 동시대를 빛내고 오늘에까지 그 넓은 문학적 자장을 드리우고 있는 김종삼, 김춘수, 김현, 이청준 등 개별 문인에 대한 애정 어린 비평과 개인적 회고문들이 책의 후반부를 차지한다. 책의 말미를 장식하는 5부는 오랫동안 김윤식 교수의 저서에 공감의 독자와 학문하는 연구자로서 지대한 관심을 보여온 남송우 교수와의 대담글을 싣고 있다. 특히 저자가 최근 발표한 이중어 글쓰기론 3부작(『일제말기 한국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 『해방공간 한국작가의 민족문학 글쓰기론』 『일제말기 한국인 학병세대의 체험적 글쓰기론』)과 작가 전기 연구에 있어 앞서의 임화,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이상 등에 이어 또 한 번의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저서 『백철 연구』에 대한 두 사람의 학문적 연대감과 긴장이 길항하는 논의는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과거(김용섭 저, 『조선후기농업사연구』)와 미래(W. W. 로스토우, 『경제성장의 제단계』)에서 동시에 식민지사관의 극복이라는 사명감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내보이며 분발하라고 독려했고, 이에 응하는 학문이야말로 성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우리들에게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이를 또 다르게 말하면, 인류사에 대한 지평에로 향하게끔 해주었던 것. 제 개인적으로 이러한 공부는 G.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서도 왔습니다.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을 하늘의 별이 지도 몫을 하는 시대, 그 별이 그 길을 훤히 비춰주던 시대는 복되도다”라고 서두를 삼은 이 책에서 제가 배운 것은 (1)공부다운 공부란 인류사에 대한 공부라야 한다는 것과, (2)그 공부란 소설론에서도 가능하다는 두 가지였습니다. 어쩌면 문학의 독자적 근거도 이에 내속되어 있을 뿐이라는 자부심만큼 가슴 벅찬 것이 따로 있었겠는가”(p.21)라는 대목에서 반평생을 문학(소설) 읽기와 비평에 바친 저자의 내밀한 속내가 비치기도 한다.
그야말로 20세기와 21세기라는 격동의 두 세기를 한 몸으로 겪어온 저자는, 칼 포퍼와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려, “진리가 진리일 수 있는 것은 진리 속에 거짓이 될 가능성이 깃들어 있는 동안이라는 것. 학문이란 무엇이뇨. 예술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 능가당한다는 사실이 그것. 이것이 학문의 운명이자 의의라는 것, 이 운명에 복종하고 헌신하기. 이것을 스스로 원하고 있다는 것”(「머리말」)이라는 제언으로, 앞으로도 여전히 그가 가게 될 길, 가야만 하는 길이 문학연구자의 그 길임을 밝히고 있다.
●차례
머리말 한 몸으로 두 세기 살아가기의 문법과 어법
|제1부|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
두 세기의 시선에서 본 한국 현대문학사론―준(準)통일문학사 시론
한국 근대시 백 년의 밝음과 어둠―담 크고 순정한 소년배의 행보
|제2부|
한국 근대문학사의 시선에서 본 카프 문학
6?5와 소설
한국문학의 월남 체험―전쟁 체험에서 문학 체험에 이르기
|제3부|
조선의 阿Q 코휴지 선생
‘阿Q=香山光郞’의 글쓰기와 ‘춘원=이광수’의 글쓰기
최재서의 고민의 종자론과 도키에다[時枝] 국어학―경성제대 문학과 『국민문학』지의 관련 양상
[부록] 조선에서의 국어―실천 및 연구의 제상
북두시학(北斗詩學)의 윤리감각―청마의 북만주 체험
|제4부|
백철의 『조선신문학사조사』론
김소운 글쓰기의 세 가지 쟁점―은관문화훈장의 무게 달기
『춘향전』의 특수성과 세계화의 가능성
김현과 세사르 프랑크 마주하기―김종삼과 김춘수
아, 이청준―창작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에 부쳐
|제5부|
남송우 교수와의 대화 (1)
―김윤식의 『일제말기 한국인 학병세대의 체험적 글쓰기』에 대한 생산적 대화
남송우 교수와의 대화 (2)
―김윤식의 『백철 연구』: 한없이 지루한 글쓰기, 참을 수 없이 조급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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