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전2권, 1994년 제6회 이산문학상 수상작)는 우리 시대 대표적 지성이자 전후 최대의 작가인 최인훈의 ‘생애의 작품’이다. 20세기 세계사의 격변 속에 맞물려온 한반도의 운명, 그 역정을 고독하게 종단한 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보편적인 20세기인의 삶과 고뇌를 응시하게 된다.
“사람은 관념의 세계시민은 될 수 있어도 그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세계시민이 될 수는 없다.” -『화두』 1에서
소설 『화두』는, 기본적으로 한 소설가가 미국과 러시아의 행장기를 중심으로 20세기의 화두를 찾아나서는 소설을 구상하고, 또한 구성하는 과정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20세기 말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는 이 화두 풀이 작업은, 지난 20세기의 기억과 관련된다. 그 거듭되는 기억의 발생으로 한 땀 한 땀 엮이는 여정, 울울한 기억의 성층 사이에서 작가는 20세기와 ‘나’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인간은 무엇인가”를 묻고 찾아 나선다.
작품의 화자는 일제시대 북에서 태어났으나 6․25전쟁 기간 중에 북에서 탈출하여 가족과 함께 월남한다. 이후 4․19, 5․16, 10월유신, 광주항쟁 등 민족사적 격랑과 중국 공산화, 독일 통일이나 동구 몰락, 소련 해체 등 세계사적 지각 변동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생애의 기억은, 소설 속에서 ‘북한—남한—미국—남한—미국—남한—러시아—남한’ 등의 공간 경로로 이동해가며 층층이 쌓인 켜를 드러내며, 그에 따라 주인공의 의식 지평 또한 점점 넓게 그리고 깊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방식은 단선적 연대기나 유기적 플롯과는 거리가 먼, 시공간을 재배치하고 중첩시키면서 축성된다. 독자들은 끝없이 열린 소설의 구조를 따라가며, 거대한 사유의 집적물들이, 원숙한 이성의 성찰과 자유로운 감성의 무늬들이 한데 모여 마침내 우리 자신의 화두를 열어젖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화두』는 우리 시대 최고의 거장의 눈으로 20세기 자체를 전면적으로 탐색하면서 20세기인의 운명을 큰 시각에서 조망한 대작이다. 한반도의 변두리에서 태어난 한 작가의 인식 여정이 소설 전반을 통해 세계의 중심부에 진입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고통스런 현대사를 거쳐 이제 우리가 도달한 자리를 정직하게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은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문학과지성사가 심혈을 기울여 새롭게 내놓은 『광장』에서 『화두』까지의 ‘최인훈 전집’은, 그야말로 한국의 분단 상황에서 20세기 세계체제론에 이르는 문학적 성찰의 역정으로 더할 나위 없는 독서 체험을 제공할 것이다.
표지 그림: 유영국, , 1995년, 캔버스에 유채, 97X130.5cm(c)유영국미술문화재단
작가 컷: 김영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