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작가 김려령이 뛰어난 재치와 유머로 그려낸
아파트와 사람들의 정 깊은 이야기!
■ 재건축을 눈앞에 둔 아파트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교감
2007년과 2008년 올해 『기억을 가져온 아이』(제3회 마해송문학상),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제8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완득이』(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로 각종 어린이 · 청소년 문학상을 거머쥐며 돌풍을 일으킨 작가 김려령의 따뜻하면서 위트 넘치는 동화가 출간됐다. 오래 된 아파트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집’이 그저 건물이 아니라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는 가족 같은 존재임을 때로는 짠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담아냈다.
이 작품에서는 사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무생물인 건물(아파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순간, 그 건물은 너무나도 생생한 생명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생명은 건물이 사람들 옆에서 무뚝뚝한 조연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동반자 역할을 하게 해 준다. 사람은 사람대로, 집은 집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지만 그 안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가 녹아 있다. 서로를 보듬어 주고 보살펴 주는 그런 사랑 말이다.
작가가 재건축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의 주된 시각과는 아주 다르다. 요즘도 뉴스나 신문의 주요 머리기사가 되곤 하는 아파트 재건축 문제를 경제 논리를 떠나 ‘생명을 지닌’ 집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강퍅하고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진정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한다.
■ 사십 년 된 우정을 자랑하는 푸른아파트에 수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어진 지 사십 년 된 5층짜리 푸른아파트는 네 동이 옹기종기 모여 시시콜콜 다투기도 하지만 오래 된 우정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런 듬직한 아파트에도 신도시 개발이라는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아파트 주민들은 재건축이 되면 집값도 오르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들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역풍이 되어 다른 지역과의 마찰 때문에 재개발이 취소가 되고 만다.
갑작스러운 재개발 취소 소식에 푸른아파트들과 사람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다른 건물들이 무참히 철거되는 것을 지켜보아 온 푸른아파트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깨끗하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날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푸른아파트는 황량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불만의 표시로 ‘이제 와서 재건축 반대 웬 말이냐!’ ‘우리도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다’ 등의 현수막을 내걸더니 급기야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파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쓴 기다란 검정 띠를 두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 푸른아파트들은 하루도 맘이 편할 날이 없다. 지금껏 데리고 살던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재건축을 염원하는 일들을 꾀하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2동에 혼자 사는 할머니네 기동이라는 사내아이가 오고부터 푸른아파트들은 더욱 몸살을 앓기 시작한다. 기동이는 엄마 아빠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할머니네 자신만 맡겨 두고 간 것도 못마땅하고 좁디좁은 할머니 집에 자기만의 방이 없는 것도 불만스럽다. 그런 맘을 풀 길이 없던 기동이는 아파트 동마다 다니며 ‘이 아파트를 보는 사람은 다 죽는다’ 등의 낙서를 해대서 아파트들 속을 썩이지만, 그래도 2동은 자기가 데리고 사는 아이라고 끝까지 기동이 편을 들어 주어 다른 아파트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갖가지 좌충우돌을 겪으며 결국 푸른아파트는 재건축 허가를 받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들떠서 이삿짐을 꾸리지만 기동이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2동 벽을 손으로 문지르며 아파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세상에 나는 것들은 다 지 헐 몫을 가지고 나는 것이여. 허투루 나는 게 한나 없다니께. 고 단단하던 것들이 이렇게 제 몸 다 낡도록 사람들 지켜 주느라 얼마나 고생혔냐. 인자 지 헐 일 다 허고, 저 세상 간다 생각허니, 짠허다”
할멈은 2동 벽을 손으로 문질렀다.
“할멈은 착해서 어딜 가든 잘 살 거야. 잘 가……”
“그 동안 편하게 잘 살고 간다.”
할멈은 한 번 더 102호를 보고 밖으로 나왔다. _본문 168쪽에서
■ 아파트와 사람들, 생생한 캐릭터들의 향연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해 주는 것이 바로 캐릭터다. 이 작품에서도 아파트의 이야기가 더욱 진솔하게 다가오는 것은 작가가 빚어 놓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아파트에도 각자 개성과 성품과 특징을 부여해 하나의 인격체로 창조해 냈다. 이렇듯 살아 있는 캐릭터들은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흡인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감성에도 울림을 준다.
훈훈하게 빚어 놓은 아파트들의 특징을 들여다보면 이야기의 생생함이 한결 가깝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냥 건물이 아니라 가족처럼 친구처럼 느껴진다. 이야기 속에서 건물은 건물끼리, 사람은 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누지만 말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로 탄생한 아파트들의 성격을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재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1동: 벼락을 맞아 좀 이상하게 변했지만,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자신이 집이라는 것과 집은 사람들을 잘 지켜 줘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음.
2동: 데리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정이 깊고, 버릇없는 일이 제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싫어함. 아홉 살인데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된 기동이가 오고부터는 더욱 정이 깊어짐.
3동: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쓴 검정 띠를 몸에 두르고 있는 것도 힘겨운데 기동이가 써 놓은 ‘이 아파트를 보는 사람은 다 죽는다’라는 낙서 때문에 더 기운이 빠져 있음.
4동: 제일 구석진 곳에 있는데다가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밤마다 몸을 비틀어 대는 바람에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퍼짐. 그래서 제일 싸구려 동이 됨.
상가: 계산이 빠름. 내색은 안 하지만 밤만 되면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 속이 텅 비어 쓸쓸해함. 무슨 일만 생기면 푸른아파트들끼리 편들어 주는 것 같아 야속하게 여김.
이 산뜻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왠지 정말 우리 모르게 아파트들끼리 자신들이 품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집을 들고날 때마다 예사롭지 않은 눈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집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동반자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감싸주고 있는지에 대해 새삼 감사하게 된다.
[국민일보] 2008.10.31
■ [책과 길] 사람들이 보듬어주면… 낡은 아파트도 외롭지 않아
‘요란 요란 푸른 아파트’/김려령/문학과지성사
오래된 아파트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집이 그저 시멘트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유쾌하고 상큼한 문체에 담아냈다.
지어진 지 40년 된 5층짜리 ‘푸른아파트’ 4개 동이 옹기종기 서 있다. 그러니까 아파트들은 형제지간이나 마찬가지다. “아우 간지러워. 바퀴벌레들이 왜 이렇게 기어다니면서 긁고 그래.” 1동이 말하자 2동이 대꾸한다. “그거야 낡아서 그렇지. 얘들이 가만히 있는 척하다가 휙! 달려. 아 정말, 움찔움찔하단 말이야.”
갑작스런 재개발 취소 소식에 푸른아파트들과 사람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자신의 몸이 철거되는 걸 간신히 막아낸 아파트들은 환호성을 지르지만 깨끗하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날만을 기다리던 주민들은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아파트들은 좋겠다. 편들어 줄 동이 많아서. 에라, 퉤퉤퉤!”
아파트 앞에 외롭게 서 있는 3층짜리 상가건물이 5층짜리 아파트 4개 동을 부러워하며 질러대는 볼멘소리는 배꼽을 잡게 한다.
그래도 아파트의 마음을 알아주는 동네 할머니의 말에 위안을 삼는다. “집도 죽은 집이 있고, 살아 있는 집이 있어야. 요 아파트는 살아 있는 집이여. 한 번도 사람이 빈 적이 없었다니께. 집은 사람을 보듬어 주고, 사람은 집을 보듬어 주면서 같이 사는거여.”
사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무생물인 아파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순간, 그 건물은 너무나도 생생한 생명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생명은 사람들 옆에서 무뚝뚝한 조연의 역할을 넘어 훌륭한 동반자로 변한다. 사람은 사람대로, 집은 집대로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가 녹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한국일보] 2008.11.01
■ 불혹의 재건축 아파트, 시끌벅적한 일상
“애비가 기동이만 할 때 와서, 똑 고만한 손자 데리고 간다. 니도 고생 많었다.” 지은 지 40년 돼 재건축이 결정된 아파트를, 이곳에서 30년 세월을 보낸 할머니가 떠나며 쓰다듬는다. 할머니에겐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아파트가 대답한다. “할멈은 착해서 어딜 가든 잘 살 거야. 잘 가….”
뉴타운이니 재개발이니 신산스러운 서울 구석의 짠한 풍경을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씨가 동화로 담았다. 작품의 주인공은 곧 헐릴 처지에 놓인 5층짜리 푸른아파트 단지. 그리고 그곳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는 열한살 기동이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황량한 서울에 아직 남아 있는 삶의 온기를 전한다.
김씨는 ‘작가의 말’에 “다리 부러진 의자를 걱정하고 들에 핀 개망초를 예뻐하던, 그렇게 모든 사물과 이야기를 하시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썼다”고 적었다. 낡은 아파트들은 그런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자신들이 품고 사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지켜주는 생명체가 된다. 벼락을 맞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1동, 기동이네를 품고 사는 2동, 재건축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덕지덕지 붙은 3동, 다른 동에 가려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4동의 엉뚱하고 정다운 대화가 페이지를 채운다.
주민들은 그러나 얼른 재건축 허가가 떨어져 지긋지긋한 푸른아파트를 헐고 새 아파트에서 살 날만 기다린다. 그래도 아파트들은 주민들을 보듬으며 마지막까지 그들의 보금자리가 돼준다. 할머니에게 맡겨진 말썽꾸러기 기동이가 이곳에서 꿈을 키워가는 모습이 아리게 담긴다. 먹고 잠자는 공간의 생명성이 철저히 탈색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속 깊은 우화다.
[동아일보] 2008.11.01
■ [어린이 책] 쓰러져 가는 아파트들이 ‘궁시렁 궁시렁’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푸른아파트. 주민들은 재건축을 원하고 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하다. 이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파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현수막을 상가의 검은 띠처럼 동 앞에 걸어두는 방식으로 당국에 항의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푸른아파트가 초상집처럼 우울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푸른아파트의 네 개 동은 오히려 ‘해머에 두들겨 맞고 포클레인에 파헤쳐져’ 허물어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집’이란 본분을 잊지 않고 주민들을 돌보기 위해 애쓴다. 그런 그들 앞에 심술쟁이 소년 기동이가 출현했다. 기동의 부모가 아이를 2동에 사는 할머니에게 맡기고 사라져 버린 것.
청소년 성장소설 ‘완득이’의 작가인 저자는 재건축을 앞둔 낡은 아파트를 의인화한 이번 동화에서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을, 기동이란 장난꾸러기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따뜻하게 그려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파트 각 동은 사람처럼 살아 숨쉰다. 1동은 벼락을 맞은 뒤부터 치매든 노인처럼 헛소리를 잘하고 2동은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해 잔정이 많다. 3동은 기운이 없어 축 처져 있고 4동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이사 오면 몸을 비틀어 놀래는 식이다. 이들은 기동이가 이곳으로 오면서부터 골치를 앓는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기동이는 말썽쟁이다. 부모의 무관심으로 한 해 늦게 입학했기에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많다. 전학 간 첫날 반 아이들과 치고받고 싸우거나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벽에 ‘이 아파트 보는 사람은 다 죽는다!’고 낙서를 한다. 하지만 기동이가 벽에난 금을 따라 산등성이를 그리고 녹물이 새나오는 곳에 작은 집을 그려내는 것을 보고 아파트는 놀란다. 노상 싸우고 천방지축이기만 할 것 같은 기동이는 만화를 그리는 데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동이는 4동에 살고 있는 괴짜 만화가 아저씨에게 그림을 배우고 비슷한 처지로 할아버지에게 맡겨진 단아와 친해지며 점차 푸른아파트 생활에 적응해 간다.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뭔지, 새끼 밴 도둑고양이 등 주변의 하찮고 작은 것들과 어울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뭔지도 배워간다. 그 즈음 주민들은 재건축 허가를 받게 된다.
떠나는 사람이나 떠나보내는 집이나 목이 메긴 마찬가지다. 기동이는 쉬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할머니가 보낸 푸른아파트에는 당신 삶의 면면이 함께 깃들어 있고 기동이가 보낸 푸른아파트에는 이제 막 발견한 꿈과 우정, 희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푸른아파트가 사라지면 그 속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행복하고, 슬프고, 감사했던 날의 추억도 바스러져 버릴까. 오랜 친구를 보내듯 “니도 고생 많았다”고 푸른아파트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와 “야, 푸른아파트! 잘 가라, 푸른아파트!” 하고 소리치는 기동이의 외침에 마음이 찡해진다.
사물에도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따스한 시선과 기동이의 좌충우돌 성장기가 어우러져 시큰한 여운을 남긴다.
[한겨레] 2008.11.07
■ 재건축 앞둔 아파트 알콩달콩 수다를 떠네
생명 부여받은 건물 네 동과 상가
말썽쟁이 기동이 나타나면서 소란
할머니처럼 지혜롭고 푸근한 모습
인간들의 삶 지켜보고 보듬어줘
시골에서는 나이를 알 길 없는 커다란 고목이 마을을 굽어 살피고 있다면, 시가지에서는 낡은 아파트가 서민들의 삶과 도시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지은 지 40년이 지나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푸른아파트는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5층짜리 건물 네 동과 3층짜리 상가로 이뤄져 있다. 1동은 30년 전 큰 벼락을 맞으면서도 온 힘을 다해 아파트 주민들을 지켜냈지만, 그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다. 2동은 사람들에 대한 정이 깊고,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건축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걸어 놓은 검정 띠를 온몸에 감고 있는 3동은 늘 우울하다. 소란 떠는 사람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한 4동은 성가신 주민이 들어올 때마다 몸을 비틀어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퍼졌고, 덕분에 주위에서 제일 싼 집값을 자랑한다. 상가는 셈이 빠르고,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가장 잘 아는 소식통이다.
부모의 경제 형편이 어려워져 2동 102호에 사는 할머니에게 홀로 맡겨진 초등학생 기동이가 나타나면서 아파트들은 서로 나눌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다. 담벼락에 낙서를 하고, 우편물을 뒤섞고, 소화전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등 온갖 말썽을 피우는 기동이에게 시달리면서도 아파트들은 장난꾸러기의 깊은 속을 헤아릴 줄 안다. 그들은 기동이가 상가 문방구에서 200원짜리 빨간 머리끈을 사 학교 짝꿍인 여자아이에게 선물하는 모습을 부모와 같은 호기심과 애정으로 숨죽이며 관찰하기도 한다. 제 자식만 귀한 줄 알고 기동이를 문제아로 몰아 홀로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의 마음에 상처를 준 동네 학부모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것도 물론 아파트들의 몫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 낡은 아파트는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콘크리트 덩어리이거나 재건축을 통해 재산을 불릴 수단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푸른아파트는 어느 노인이나 고목보다도 지혜롭고 푸근한 마음으로 인간들의 세상살이를 지켜보고 보듬어주는 존재다. 이 동화를 읽고 나면 우리가 잠든 사이 아파트들이 자신들의 품속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두런거릴 것만 같고, 길을 가다가 금이 가고 칠이 벗겨진 아파트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할 것 같다.
[연합뉴스] 2008.10.30
■ ‘시끌벅적’ 아파트들의 수다 들어보세요
상반기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독자들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청소년 소설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 씨가 동화 ‘요란요란 푸른아파트'(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출간했다.
책은 재개발을 앞둔 낡은 아파트들을 의인화해 이들이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을 재치와 유머를 버무려 따뜻하게 그려낸다.
30년 전 벼락을 맞은 뒤로 좀 이상해 진 1동(棟)과 정이 많은 2동, 할아버지 교장선생님이랑 손녀딸 단아가 사는 3동, 그리고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라 시끄러운 사람들이 이사 오면 건물을 뒤흔들어 쫓아내 버리는 4동까지 지은 지 40년이 되어 재개발을 앞둔 ‘푸른 아파트’의 네 개 동들은 아파트 주민들의 생활을 지켜보며 시시콜콜 대화를 나누기에 바쁘다.
어느 날 폐품을 주워 생활하는 2동의 할머니에게 새 식구가 생기지만 푸른 아파트들은 아들이 당분간만 맡아달라며 할머니에게 맡기고 간 손자 기동이가 맘에 들지 않는다.
가뜩이나 낡은 아파트 동마다 다니며 벽에 낙서를 해대고 할머니에게 불평을 하는가 하면 고양이에게 돌을 던져 아파트들의 미움을 샀던 기동이는 그러나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친구들을 사귀고 이런 기동이의 모습에 푸른아파트들도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고양이한테 먹이를 주려고 소시지를 던졌는데도 기동이가 임신한 고양이에게 막대기를 던졌다며 오해하는 동네 사람들과 손자가 오해받는 게 싫어 사람들과 투닥거리는 할머니, 문방구에서 산 머리끈을 공짜로 얻은 거라며 짝꿍에게 수줍게 내미는 기동이의 모습, 그리고 이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수다 떠는 푸른 아파트들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 없이 흘러가지만 잔잔한 재미를 준다.
[소년한국일보] 2008.11.06
■ [화제의 책] 요란요란 푸른아파트
회색빛 콘크리트 속에도 숨쉬는 사랑
사람이 아닌 아파트를 주인공으로 한 색다른 동화가 나왔다.
4 개 동(30년 전벼락을 맞아 이상해진 1동, 정이 많은 2동, 단아가 사는 3동, 시끄러운 사람이 이사오면 건물을 뒤흔들어 쫓아내 버리는 4동)으로 이뤄진 푸른 아파트는 지은 지 40 년이 넘어서 곧 헐릴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이 아파트들은 ‘집’이란 본분을 한시도 잊지 않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지켜주고 도와 준다.
어느 날 아파트 앞에 초등 3학년인 심술쟁이 기동이가 나타난다. 아빠가 “방 한 칸 마련할 돈이 생기면 데리고 갈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2동에 사는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나가 버린 것이다.
이 때부터 기동이를 중심으로 아파트 4 개 동과 주변 인물들이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엮어 낸다. 기동이는 괴짜 만화가 아저씨에게 만화를 배우고, 단아와는 친구가 되고,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도 느낀다. 또 새끼 밴 도둑고양이 등 주변의 하찮고 작은 것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 즈음 주민들은 재건축 허가를 받는다. 떠나는 사람이나 떠나 보내는 ‘집’이나 다같이 이쉬움에 목이 멘다. 기동도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할머니의 삶이 깃들었고, 자신의 꿈과 우정, 희망이 녹아 있는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할멈은 착해서 어딜 가든 잘 살 거야.”
2동의 인사에 할머니가 “그 동안 편하게 잘 살고 간다.”며 작별하자, 기동이가 이렇게 외친다. “야, 푸른 아파트! 잘가라, 푸른 아파트.”
삭막한 변두리 낡은 아파트, 을씨년스러운 시멘트 건물에 생명력과 정을 불어 넣은 작가의 따스한 눈길이 인상적이다.
[독서신문] 2008.11.10
■ 요란요란 푸른아파트
『완득이』작가 김려령의 신작으로 오래 된 아파트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집’이 그저 건물이 아니라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는 가족 같은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무생물인 아파트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저자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펼쳐진다.
푸른아파트는 사십년이 넘은 아파트이다. 1동은 벼락을 맞아 조금 이상하지만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있음.
2동은 사람들에 대한 정이 깊고 이해심이 넓다.
3동은 기동이가 써 놓은 ‘이 아파트를 보는 사람은 다 죽는다’라는 낙서때문에 기운이 속 빠져 있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있는 데다가 소란을 피우는 사람에게는 밤마다 몸을 비틀어 대는 바람에 4동에는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퍼진다. 상가는 계산이 빠르고 푸른아파트들 끼리만 편들어 주는 것 같아 야속하게 여기며 외로워하며 (혼자여서) 까칠하다.
2010.4.20. 이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