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권의 책을 찾는 무모한 여정
그 길의 지도가 될 『단 한 권의 책』
조선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형중의 세번째 비평집 『단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2006년에 출간된 『변장한 유토피아』 이후 2년 만에 펴낸 이번 비평집에는 총 4부에 걸쳐 그동안 발표한 글 22편이 실렸다.
한국 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 그리고 그를 향한 문단의 주목도는 수록된 글들의 편수만 보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형중은 지난 2005년 말, 문인들을 대상으로 동아일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한 평론가’로 1위 정과리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그 열정을 꾸준히 이어와 올해 초 한국일보에서 조사 발표한 ‘최근 1년간 가장 인기 있는 평론가’에 신형철, 이광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2007년 1월 1일에서 2008년 2월 3일까지 국내 작가의 신작을 담아 출간된 시집 69종, 단편집 39종, 장편 47종 등 총 155종의 작품집을 분석하여 해설 편수 순으로 선정).
작품을 일거에 꿰뚫는 힘 있는 소설 해설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한 김형중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6월, 제20회 ‘소천 이헌구 비평문학상’을 수상하며 대표적인 문학평론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비평집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부에는 김이듬, 김민정, 진은영 등 최근 여성 시인들이 그리는 달라진 여성성과 황병승, 배수아의 작품에서 드러난 모호한 성 정체성, 윤성희, 강영숙의 작품에서 드러난 전통적인 가족상의 붕괴와 다양한 ‘대안가족’의 등장 등을 분석하여 2000년대 한국 문학에 나타난 성·사랑·가족을 짚어본 「성(性)을 사유하는 윤리적 방식」을 시작으로, 2000년대 한국 문학에서 드러난 다양한 변화들과 그 안에서 비평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모색하는 글들이 실렸다.
제2부에는 이번 비평집의 표제를 장식한 글이자 제20회 소천 이헌구 비평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단 한 권의 책」이 가장 앞에 놓였다.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대한 서평을 담은 이 글에 이어, 김중혁론, 김태용론, 김소진론, 임철우론 등의 작가론과 조선희 『햇빛 찬란한 나날』, 박형서 『자정의 픽션』,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전경린 『엄마의 집』, 김경욱 『장국영이 죽었다고?』, 방현희 『바빌론 특급 우편』, 안성호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 등의 작품론을 치밀한 분석과 독특한 그만의 화법으로 풀어냈다.
제3부는 문학과 영화에 대한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들은 발표될 당시부터 문학과 영화의 소통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련의 현장 비평으로 화제를 모았었다. 「소설의 외출」은 영화적 기법을 차용한 90년대 중후반 소설가들의 작업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비평이다. 이어서 원작 소설과 영화를 일대일 대응시켜 본격적 사례 연구에 나선 「기나긴 fort-da 놀이」와 「최근 소설의 영화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각각, 이청준 원작·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이만교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유하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중심으로 하여 장르 자율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4부에서는 현재 한국 문학이 직면한 과제와 독특한 흐름을 지적하고 다양한 작품을 예로 들어 분석한 세 편의 글을 볼 수 있다.
김형중은 ‘서문’을 대신하여 쓴 「사라져버린 검은 해적」이라는 글에서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어머니가 외가에서 얻어온 ‘세계 어린이 명작 동화 전집’을 읽고 문학의 꿈을 키워온 자신에게, 달랑 껍데기만 있었던 전집의 마지막 책 ‘검은 해적’이, 그 부재 자체로 고마운 글쓰기의 선생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라진 ‘검은 해적’의 부재를 스스로 메우면서 그의 글쓰기는 시작된 것이다. 그는 아직도 비어 있던 그 한 권의 부재를 글로 메우고 있는지 모른다. 그에게 비평은 “존재하지 않는‘단 한 권의 책’을 찾는 무모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차례
제1부
성(性)을 사유하는 윤리적 방식―최근 한국 문학에 나타난 성·사랑·가족에 대한 단상들
기어라, 비평!―2000년대 소설 담론에 대한 단상들
부재하는 원인, 갱신된 리얼리즘―이것은 리얼리즘이 아니다3
국경을 넘는 세 척의 배
제2부
단 한 권의 책―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사물들의 해방자, 김중혁론
차라리, 글쓰기―김태용론
어쩔 수 없이, 카르페 디엠!―조선희, 『햇빛 찬란한 나날』
소설 이전, 혹은 이후의 소설―박형서, 『자정의 픽션』
텅 빈 중심에서의 고독―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비루한 것들의 리얼리즘―김소진론
페넬로페의 후일담―전경린, 『엄마의 집』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김경욱, 『장국영이 죽었다고?』
교환 가능한 사랑―방현희, 『바빌론 특급 우편』
문명 속의 불만―안성호, 『때론 아내의 방에 나와 닮은 도둑이 든다』
『봄날』 이후, 임철우 소설의 궤적에 대하여
제3부
소설의 외출―문학과 영화 1: 「외출」을 중심으로
기나긴 fort-da 놀이―문학과 영화 2: 「서편제」를 중심으로
최근 소설의 영화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문학과 영화 3: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중심으로
제4부
타자를 소설화하는 몇 가지 방식들
말할 수 없는 것들 앞에 선 한국 문학
편백나무 숲 쪽으로, 혹은 밖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