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문학과지성 시인선 347

이민하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8년 5월 23일 | ISBN 9788932018577

사양 · 196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아픈 환상의 이미지들이 불꽃처럼 팡팡 터진다!
여성의 상처와 욕망, 그리고… 위안
이민하 두번째 시집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전위 시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이민하 시인의 두번째 시집 『음악처럼 스캔들처럼』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2000년 『현대시』로 등단한 이민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첫 시집 『환상수족』(2005)에서 보여주었던 그로테스크한 환상의 이미지들을 재료로 더욱 다채로운 방식의 실험을 거쳐, 기면증 환자의 악몽과도 같은 체험을 불안하고 강박적인 언어로 구현하였다. 이민하 시인의 시세계에 대해 이승훈 시인은 “환상은 위안이고 고통이다. 그가 노래하는 환상은 현실의 결핍을 은폐하는 게 아니라 폭로하고 따라서 환상은 황사가 된다. 이 황사 바람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젊은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고 고백함으로써 이민하의 시가 던져주는 엄청난 양의 환상 이미지들이 단순히 시인 혼자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들 개개인의 기억 속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며 이 시편들이 그러한 고통에 대한 시인의 대처법의 소산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박찬일 시인은 “이민하의 시가 가볍지 않은 것은 ‘욕망의 죽음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끝없이 욕망의 죽음에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죽음을 ‘긍정한 자’의 글쓰기는 ‘발랄한 글쓰기’이다. 이민하의 시들은 발랄하다. 발랄하게 무겁다”라며 이민하의 시편들의 의미를 긍정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 있는’ 환상들과 무거우나 발랄함을 견지하는 글쓰기를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열린 구조 안에 녹여낸 이번 시집 『음악처럼 스캔들처럼』은 마음과 뇌를 동시에 자극하는 매력적인 시편들로 가득하다.

나는 너를 개미라고 부를래
버거운 사체를 나르는 너의 팔에 매달려
나는 죽어서도 복에 겨운 지렁이가 될래
봄날 소풍 도시락을 싸는 너의 다리를 부러뜨리며
나는 너를 제비라고 부를래
그러면 너는 짧은 여름날 나무에 목을 매달고
심장처럼 꺼내는 매미의 눈물
그러면 나는 나무
십 량 너의 운구차가 지하에서 불면할 때
커피나무가 되어 펑펑펑 검은 물을 따른다
몸을 펼치면 표범
온몸 가득 까만 불씨를 날리며
너를 삼킬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앉으면 구름
깔끔하게 무늬를 접는 날개의 뒷면
성숙한 우리의 인사법
너를 낳은 너의 이름은 오늘도 애지중지
미행을 하네 그가 휘휘 던지는 그물망을 피해
장애물경마 기수처럼 우리 달릴래?
달릴래? 그러면 너는 바람
천공에서! 눈앞에서! 땅 끝에서! 너의 목덜미를 끝없이 잡아타고서
나는 구름! 나는 표범! 나는 나비!
살이 벗겨지도록 일광욕을 하며 기린초의 꿀을 빠는
노란 입술 빨간 종아리
울긋불긋 이름이 많은 나를 부르며 목이 쭉쭉 늘어나는
너를 기린이라 부를래
그러면 너는 흑마술 같은 울음
바늘이 되어 나의 이름에 꾹꾹 文身을 하는
너를 자꾸 통과하며 門身이 되는
나는 죽어서도 구름표범나비
표본실에 묻혀 사각사각 날개를 펴고 접으며
찍을 테면 찍어봐! 포즈를 바꾸며 ─「구름표범나비」 전문

“몸을 펼치면 표범” “앉으면 구름”이라고 적어놓은 대로 바깥쪽 무늬는 표범 같고 안쪽 무늬는 구름 같은 구름표범나비. 제 몸에 구름과 표범과 나비라는 세 가지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생명체의 매력이 한껏 빛나는 이 시는 시인이 대상을 호명하는 방식의 변주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왜 ‘나’는 ‘너’가 되지 못하는 가 혹은 다른 무엇이 되지 못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는 시인과 독자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민하의 시를 읽고 단숨에 공감하기란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밀스러우며 난해해 보이는 시 구절들 사이에서 시인이 독자가 되고 독자가 시인이 되는, 한 존재와 다른 존재가 통하는 지점들을 꿈꾸는 시인의 경쾌한 목소리를 통해 괴상하지만 매력적인 공감이 일어난다. 이민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이러한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여러 번 내비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다음과 같이 해설에 적고 있다.

어째서 우리는 다른 무엇이 되지 못하는가, 왜 늘 ‘너’이고 ‘나’여야 하는가, 이 정체(停滯)가 관계를 불모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가, 너(나)가 변하면 나(너)도 변하는 그런 역동적인 관계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것은 우선 이상적인 연애의 어떤 가능성을 꿈꾸는 노래이겠지만,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를 꿈꾸는 작품으로도 읽힌다. “당신은 文을 제작하는 사람./나는 門을 제작하는 사람”(「문제작」)이라는 구절이 여기서는 “나의 이름에 꾹꾹 文身을 하는/너를 자꾸 통과하며 門身이 되는 나”로 변용돼 있다. 너는 내게 문신(文身)을 새기려하지만 나는 문신(門身)이 되어 너를 빠져나간다. 이렇게 빠져나가면서 이민하의 시는 비밀을 품고 영혼을 얻는다. 이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이 시의 발랄한 어조는 말하고 있다. 자, 이것으로 이민하의 시를 읽을 준비는 끝난 것일까? _신형철(문학평론가)

이민하의 시들은 대상을 충실히 재현하는 묘사가 아닌 왜곡하고 변용하는 묘사를 보여준다. 그녀는 진술하기보다는 묘사하고, 대상을 왜곡하고 변용하기를 즐기며, 그로써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천국의 i들」 「개랑 프라이」 「유재河」 「移死 前夜」 등의 시 제목들에서 드러난 말놀이를 통해 이민하 시인은 실재 세계의 의미와 구조들을 일그러뜨리고 비튼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민하 시인의 작업에 대해 “시인들이 ‘다른 세계’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계’를 ‘실재’가 아니라 언어로 ‘구성’된 것이라 간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말놀이는 말들의 질서를 비틀어 말들로 구성된 ‘이 세계’의 주춧돌 하나의 위치를 슬쩍 바꿔놓는 일이 된다. 말놀이는 세계건축의 기초공사다”라고 하였다.

휴지통에 버려진 상반신과 하반신을 용접하고
난 변신이 빠르다.

진짜 내 몸은 껍. 데. 기. 털갈이를 하듯
비워낸 내장을 새로 끼우기 위해

당신이 잘근잘근 씹기 전에
난 이미 씹을 만큼 씹었다.
땡볕에 익은 반숙의 살덩이를
개랑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두 개의 혀.

당신이 지글지글 지지기 전에
내가 먼저 지질 만큼 지졌다. 짖을 만큼 짖었다. ─「개랑 프라이」 부분

그대여 싹둑 눈을 감아요 싹둑 눈을 떠요 싹둑 나풀나풀 찢어진 눈을 깜박거리며 나는 화단에 발을 묻고 전지가위로 앞머리를 자릅니다 아침을 꾸역꾸역 입에 넣다가도 딱딱하게 굳은 배꼽을 만지다가도 우두커니 양철가위로 앞머리를 자릅니다 꿈꾸는 밤마다 가위에 눌리지 않으려고 불철주야 이마를 가위에 눌리며 싹둑싹둑 거울 없이 거울도 없이 나풀나풀 앞머리 없이 앞머리도 없이
─「가위놀이」 부분

가면을 수십 개 바꿔 쓰는 나는 그들의 상상 속에 이미 없어요
나는 너무 끝없이 자라고
해가 지고 있다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당신이 보채는 사이에도
몇 개의 가면이 내 얼굴을 스쳐갔는지 몰라요
입을 맞춰도 소용없어요
가면을 버리고 당신은 너무 빨리 늙어버렸는걸요
벽돌처럼 굳어버린 얼굴엔 악몽조차 기웃거리지 않는걸요
물론 이건 사라지는 고백 ─「가면놀이」 부분

『음악처럼 스캔들처럼』의 첫 장에는 쌍둥이 태아의 사진이 있고 마지막 장에는 유골의 사진이 있다. 시집을 다 읽고 나면, 시집의 시작과 끝에 이들 사진과 함께 시를 배치한 시인의 작업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아마도 여러 가지 단어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존재, 상처, 관계, 숙명, 위안… 실제 이민하 시인의 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낡았으나 울림을 주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시인의 발랄한 목소리의 이면에 공존하는 슬픔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시집 소개글
시집 『음악처럼 스캔들처럼』은 ‘언어의 착란’을 통해 상식과 질서의 세계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가공된 시적 이미지의 세계를 구축한다. 언어는 의미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감각적 이미지의 질서를 따라 문장을 완성한다. 이는 상투화된 언어나 문장에 대한 비판이며, 관습적이고 규격화된 세계에 대한 반란이다. 이렇게 구축된 시의 세계는 현실을 초현실의 시공간으로 교체하면서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삶의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동화를 지향한다.

■ 뒷표지글
나는 A형이다. AB형 남자와 O형 여자가 나를 기록했다.
A형 외에 다른 피에 대해선 발설되지 않는다.
아무도 구분해 주지 않는다. 가령, 유리血.
열세 살의 키스와 거울의 체온. 눈을 감아봐. 처음 분리된 그녀가 검은 교복 치마로 나를 감쌌다. 그해 화양동에서 붙박이 할머니는 염습으로 새단장되었고 노래하던 개가 집을 나갔고 정신여고의 채플 시간마다 책상 아래 숨겨질 만큼 난 미리 조금씩 작아졌고 밖에는 잇몸이 예쁜 언니들이 늘 젖어 있었다.

무슨 걱정이에요. 긴 잠에서 깨어나 우리는 안녕! 내일은 봄의 쇼윈도를 지나 출렁거리는 육교(肉橋)를 타고 만날 거잖니. 신축 병동이 공사 중인 등넝쿨 아래 반짝이는 휠체어가 덜 마른 산책로를 구르고, 반소매 차림의 팔이 빨간 사람들 틈에 섞여 진료실의 불빛은 비행접시처럼 몇 개의 깃털을 털고, 청진기를 서로의 창문에 대고 맥박의 리듬 속으로
창백한 당신이 들어온다. 당신의 손목을 놓친 주치의는 베이커리에서 새로 구운 아침을 시식하고, 당신은 어떤 날엔 화장(火葬)을 곱게 하고 내게로 온다. 웃자란 손톱으로 나의 내장을 뒤적이며 악기를 고른다. 갈빗대가 우수수 떨어지고 유릿방울이 터져나온다. 뒤따라온 주치의가 허리를 구부려 바닥을 훔치는 나의 몸을 펴고 시간의 유리창을 갈아끼운다. 時集이 가볍게 死月에서 orWall로 토스됐다.

폭발 직전까지 팽창하는 수소풍선처럼 두렵던 말들이여, 나의 적대감은 틀렸다.
목소리가 성가신 날이 온다면 그때야말로 끝이다.
사모하는 침묵이여, 사실은 네가 두렵다.
너는 강하고. 향기롭고.
나는 연거푸 변성기를 지나고,
너는 강하고. 향기롭고.
나는 문득 사라지고,

■ 차례
제1악장

첫 키스
합창단
식탐
일요일
전망 좋은 창
빈 상자
해피엔드
血流
비둘기 페트라
오이에 관한 편견과 중독
유년의 전설
해변의 소녀들
구름표범나비
레이니하우스
천국의 i들
해변의 수족관
두 개의 항아리
피아노

제2악장

거식증
개랑 프라이
애인은 고기를 사고
문제작
6월 성탄제
묘지 위의 산책
가위놀이
계단놀이
카니발
가면놀이
관객놀이
테이블
악수놀이
구름놀이
유재河
배드민턴
지하철 3호랜드
wallpaper for the soul
시간의 골목
시간의 골목
칼의 꽃
바늘과 트랙

제3악장

가든파티
지붕 위의 잠
요리의 탄생
삭발
글루미선데이클럽
302호 밍크고래
누드
밀담
녹턴
사이의 관극
뿔뿔이
移死 前夜
지붕 위의 아리아
달리는 달리
한 아이가 시소를 타며 놀고 있네
어둠의 악보
안락의자
지퍼
관계의 고집

작가 소개

이민하 지음

시인 이민하는 2000년 『현대시』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환상수족』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모조 숲』 『세상의 모든 비밀』이 있다. 2012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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