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

문학과지성 시인선 342

오규원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8년 1월 31일 | ISBN 9788932018362

사양 · 84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시적 언어가 가닿을 수 있는 최대치의 투명성

1965년 등단한 이래 ‘시의 언어와 구조’의 문제에 대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탐구해왔던 시인 오규원. 하여 전통적인 시의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적 경향을 확립한 한국 현대시의 진정한 전위로서 그의 시적 행보 자체가 한국 현대시의 행보이자 역사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20여 년간 서울예대 문창과에서 시 창작을 지도한 후학과 후배 시인들에게 지금도 여전히 두터운 문학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그가 우리 곁을 떠나 강화도 전등사 소나무 아래에 묻힌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휴머니즘이라는 미명하에 인간 중심으로 모든 사물을 이해하고 명명함으로써 세계가 가려지고 왜곡되는 것을 거부하고, 상징적 어휘 하나로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거나 어떤 관념 하나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던 오규원 시인은 그저 그냥 ‘있을 뿐’인 세계와 인간이 어떤 관계를 유지하며 수사적 인간의 존엄성을 찾을 수 있는가에 천착했었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시작을 놓지 않았던 시인은 휴대폰 문자나 제자의 손바닥에 또렷이, 그의 시적 사유를 남겼다.

오규원 유고 시집 『두두』(문학과지성사, 2008)는 그렇게 시인이 없는 세상에 여전한 시인의 눈과 목소리를 갖고서 나왔다. 제목으로 쓰인 ‘두두’는 생전의 시인이 ‘날이미지시’론을 통해 밝혔듯이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다)이라는 선가(禪家)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시집은 앞부분 ‘두두’에 33편, 뒷부분 ‘물물’에 17편, 총 50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두두’에 속하는 작품들은 오규원 시인이 짧은 형식으로 따로 써서 모아둔 것들이고, ‘물물’에 속하는 작품들은 생전의 아홉번째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문학과지성사, 2005) 이후 발표한 것들로 모두 그가 서울예대를 떠나 경기도 양평 서후리에 터를 잡고 접한 세계와 사유의 기록이라 하겠다. ‘두두’와 ‘물물’이라는 오규원 시인의 명명은, 단어의 어감이 주는 단장(短長)의 호흡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두두’와 ‘물물’의 시들을 자연스럽게 섞는 편집도 생각할 수 있었으나, 유족 대표와 책임편집을 맡은 서울예대 이광호 교수는, ‘두두’의 시편들을 독립적으로 생각한 시인의 의도를 존중하여 짧은 시편들을 분리, 시집의 앞부분에 싣기로 의견을 모았다.

원래 시인은,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를 상자했을 당시, 짧은 시편만 모은 <두두집>과 그보다는 긴 호흡을 가진 <물물집>, 이렇게 두 권의 시집을 동시에 내려고 계획하였으나, 검토 후 두두집 원고의 편수가 적어 좀더 쓴 후에 내려고 미뤄둔 상태였다고 한다. 지금의 <두두집> 원고는 그 후로 추가 없이 그대로를 수록한 것이며, 수록한 모든 원고는 그 당시 최종적으로 시인의 손을 거쳐 탈고까지 마친 상태의 것이다. <두두집>의 원고가 씌어진 시기는 정확히 1995년경부터 2001년 무렵이다. 즉 날이미지시론의 첫번째 시집 격인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 소리』(1995)를 출간한 그 즈음부터 날이미지시론의 두번째 시집인『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를 출간하고 난 몇 년 뒤까지다. 그 후에 시인은 이 작품들을 계속 여러 번 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시인은 두 권의 시집을 같이 낼 경우, 세계가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두두집의 출간을 보류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두두』는, 선시나 하이쿠와는 다른, 날이미지시론으로 된 극히 짧은 형식의 시를 써보고자 했던 시인의 의지의 총체다. 특히 날이미지시론이 불교적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아 선시로 오해되는 경우가 꽤 있어, 선시와는 다르다는 것을 짧은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자 애쓴 것은 시인이 생존 당시 거듭 밝힌 바다. 이번 유고 시집 『두두』는, 첫째, 시의 수사법으로서 은유를 거부하고 환유적 언어 체계의 방법을 사용한다; 둘째,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관념적인 시각을 완전히 배제한다, 라는 오규원 시인의 ‘날이미지시’론(오규원 시론집, 『날이지미와 시』, 문학과지성사, 2005 참조)의 핵심사항이 오롯이 육화된 집적물이라 할 것이다.

더불어 고인의 유고를 정리한 시집의 출간과 그의 1주기에 맞춰 유족과 제자들이 뜻을 모아 유고시집 발간을 기념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가 2008년 2월 2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남산 드라마센터 대극장에서 치러진다. 이와 함께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한 <<오규원문학회>>의 발족도 조만간 있을 예정이다.

■ 시집 소개
그대 몸이 열리면 거기 산이 있어 해가 솟아오르리라,
계곡의 물이 계곡을 더 깊게 하리라, 밤이 오고
별이 몸을 태워 아침을 맞이하리라
-「그대와 산」 전문

구멍이 하나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지나가는 새의 그림자가 들어왔다가

급히 나와 새와 함께 사라지는 구멍이 하나 있다

때로 바람이 와서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둘이 모두 자취를 감추는 구멍이 하나 있다
-「구멍 하나」 전문

■ 시인의 자서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2007. 1. 21
오규원

■ 시집 『두두』 해설- 이광호, 「‘두두’의 최소 사건과 최소 언어」 중에서
오규원의 마지막 시들은 이렇게 시적 언어가 가닿을 수 있는 최대치의 투명성을 시도했다. 그 시도는 ‘두두’와 ‘물물’ 들의 있음 혹은 이웃해 있음, 또한 그것들의 움직임 혹은 연쇄적인 움직임을 포착한다. 그것은 ‘이야기’가 되기 이전의 ‘최소 사건’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차원이 되었을 때, 거기에는 이념의 개입이 시작될 것이다. 사물들의 최소 사건에는 서사 이전의 동사(動詞)적 존재론이 드러난다. 사물들의 살아 있는 움직임을 묘사하는 일은 사물을 동원한 명사(名詞)적 비유가 아니라, 존재에의 경험으로서 제시된다. 그러기 위해 그의 언어는 한없이 간명했고, 극도의 투명성을 추구하는 최소 언어가 될 수밖에 없다. 그의 최소 언어는 단지 정제된 시어를 구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언어가 사물에 대한 덫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방식에 대한 상상적 공간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기 위해, 그의 언어는 그토록 맑고도 정밀했다. 오규원의 시는 어떤 독법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열려 있다. 시 언어의 방법론에 대한 저 극한적인 모색은 어떤 현대의 시인도 넘어서지 않은 경계에 다다랐다. 그 시적 탐구의 치열성은 그에 대한 어떤 독법보다도 깊다. 그가 아니라면, 그 누가 “끝없이 투명해지고자 하는 어떤 욕망으로 여기까지 왔다”라고 술회할 수 있을까?

■ 출판사 소개글(앞날개)
유고시집 『두두』는 언어의 진경을 펼쳐 보이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세계이다. 흔히 눈에 보이는 전경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한다고 하지만, 언어가 그리는 풍경에는 언제나 언어 사용자의 거리와 각도, 색깔…… 의식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시집 속의 언어들은 사물이나 사건 그 자체에 곧바로 다가가려고 하기 때문에 의식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으려 한다. 아니, 의식이 묻을 때마다 가능한 깨끗하게 깎고 닦아 사물과 사건에 의해 파생되는 의미를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결과적으로 언어의 진경이 아닌, 존재의 진경을 펼쳐 보인다.

■ 뒤표지(시인이 남긴 산문 글 중에서)
제발 내 시 속에 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찾지 마라. 내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은 없다. 이우환 식으로 말해,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읽으라. 어떤 느낌을 주거나 사유케 하는 게 있다면 그곳의 존재가 참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현상이 참이기 때문이다. 내 시는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의 세계다. 모든 존재가 참이 아니라면 그대도 나도 참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모든 시는 의미를 채운다. 의미는 가득 채울수록 좋다. 날이미지시는 의미를 비운다. 비울 수 있을 때까지 비운다. 그러나 걱정 마라 언어의 밑바닥은 무의미가 아니라 존재이다. 내가 찾는 의미는 그곳에 있다. 그러니까 바닥까지 다 비운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존재를 통해서 말한다.

원천적으로 주관의 개입 없는 시 쓰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주관의 개입 없는 시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모든 시에서의 주관은 어디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날이미지시에도 주관이 개입한다. 그러나 그 주관은 현상에 충실한 현상의 의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날이미지시의 주관은 현상화된 주관이며 날이미지시는 주관까지도 현상화하는 시다.

날이미지시를 읽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존재의 편에 서라. 그리고 시 속의 현상을 몽상하라. 날이미지의 시 세계는 돈오의 세계가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환유로 시를 쓰고 있지 않다. 환유로 시를 쓰고 있지 않고 환유를 축으로 하는 언어 즉 환유적 언어 체계로 쓰고 있다. 환유를 중심으로 하는 언어의 변두리에는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끝없이 투명해지고자 하는 어떤 욕망으로 여기까지 왔다. 여기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것을 비우고자 하는 욕망과 연결되어 있음은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두두시도 물물전진을 곁에 두고 있으랴.

작가 소개

오규원 지음

본명은 규옥(圭沃). 1941년 경남 밀양 삼랑진에서 출생하였고,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1981)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1987) 『사랑의 감옥』(1991)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1995)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 『두두』(2008, 유고시집)과 『오규원 시 전집』(전2권, 2002) 등이 있다. 그리고 시선집 『한 잎의 여자』(1998), 시론집 『현실과 극기』(1976) 『언어와 삶』(1983) 『날이미지와 시』(2005) 등과 시 창작이론집 『현대시작법』(1990)이 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7년 2월 2일에 작고했다.

관련 보도

시인 오규원 5주기 낭독회_2012년 2월 2일 저녁 7시 30분 홍대 산울림소극장_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48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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