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박자를 이기려면 세 박자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저주를 풀려면, 저주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정체된 삶의 감각을 일깨우는 리드미컬한 상상력!
고통의 심연에서 접속 시대의 풍경을 유려하게 형상화하는 윤이형의 첫 소설집
젊은 신인 작가의 첫 소설집을 만나는 것은 노련한 중견 작가의 기대작을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안정적으로 잘 씌어진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존의 틀을 깨는 신선함, 그리고 젊은 감성이 빚어낸 톡톡 튀는 새로운 상상력이 그 즐거움의 원천일 것이다. 물론 그 밑바탕에 갖춰진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성에 대한 능력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 또한 소설작법이라는 틀에 규정되거나 정형화되는 법은 없다. 그렇기에 그 즐거움은 우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과 어쩌면 같은 얘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을 모든 젊은 신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평론가 오창은 씨는 「2006년 신춘문예 당선작 집중분석-소설부문」이라는 글에서 ‘신춘문예에 통용되는 특별한 규칙’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글에서 그는 “최근 신춘문예 당선소설들은 완제품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이는 등용문을 통과하려는 예비작가들에게 패턴 학습을 구조적으로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이것은 젊은 신인 작가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새로움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와 같다. 그러면서 그는 신춘문예 당선 작품 중에서 이런 공식화 경향에서 벗어나 창조적 균열을 가한 작품의 모델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2005년 중앙 신인문학상 당선작인 윤이형의 「검은 불가사리」이다.
윤이형은 2005년 등단 후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 소설가로, 여러 문예지를 통해 만나왔던 익숙한 작가다. 또한 독자들은 문단이 이 소설가를 주목하고 있음을, 좋은 젊은 소설들을 소개하는 『2006 올해의 좋은 소설』 『2007 젊은 소설』에 각각 실린「피의일요일」과 「셋을 위한 왈츠」, 그리고 거기에 함께 수록된 평들을 통해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젊은 신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윤이형의 첫 소설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되었다. 이 소설집은 서두에서 밝힌 젊은 신인 작가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예의 그 새로운 즐거움을 가득 품고 있는 책으로, 독자들에게 신선한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유려하게 형상화되는 고통의 상상력
윤이형이 2005년 「검은 불가사리」로 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당시 심사를 맡았던 황광수, 박범신, 오정희 씨는 그 작품을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일종의 알레고리 소설로 보고, 화자의 눈 속에 파고든 별 모양의 불가사리와 그것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작은 병정들을 예술가적 자의식과 일상적 삶에 연관된 타자들로 설정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은 “이러한 설정을 통해 잃어버린 순수성을 되찾고 유지하려는 치열한 정신은 일상적 삶을 보장해주는 사람들과의 불화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하여 「검은 불가사리」를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하면서 그들은 “불안해 보일 만큼 기발한 착상을 짜임새 있게 엮어가며 역동성을 잃지 않은 작가적 역량이 돋보”인다고 당선평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윤이형의 첫 소설집은 그녀의 등단작인 「검은 불가사리」를 시작으로 지난 2년 동안 발표한 작품들이 묶였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윤이형은 첫 작품에서 보여준 작가적 역량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한국 젊은 소설에서의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게 될 것이다.
「셋을 위한 왈츠」 「피의일요일」 등 평단의 호평을 받은 대표작을 포함한 8편의 작품에서 윤이형은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상처 입은 현대인의 모습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탁월한 이미지 묘사와 견고한 문장이 어우러진 그녀의 작품은 소외된 삶이 만들어내는 작지만 힘 있는 리듬 속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문학평론가 우찬제 씨는 “윤이형의 소설은 고통을 찍는 카메라다”라는 말로 이번 소설의 해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카메라는 “고통의 현상을 피상적으로 찍는 범상한 카메라”가 아니라, “고통의 내면 깊숙한 자리에서, 고통의 심연을 찍는 내시경 카메라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것은 “윤이형의 언어로 된 카메라가 포착하고 있는 대상”이 “고통의 상관물들 이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윤이형이 소설에서 그리는 것은 별 모양의 불가사리가 눈 속에 파고드는 육체적 고통으로 형상화된 삶의 불안(「검은 불가사리」), 3에 대한 혐오로 드러나는 불행한 가족사와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자기 정체성의 훼절(「셋을 위한 왈츠」), 자신이 처한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채 그 고통에조차 무감각해진 가상 같은 현실(「피의일요일」), 타인의 입을 빌려 절규해야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들(「절규」), 타인과의 단절과 자신 안에 고립으로 인해 지독하게 다가오는 고독(「DJ 론리니스」) 등이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모습을 다양한 감각을 통해 형상화시키는 것은 윤이형의 소설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극심한 통증(촉각)으로(「검은 불가사리」 「피의일요일」), 삶처럼 흐르는 음악(청각)으로(「셋을 위한 왈츠」 「DJ 론리니스」), 눈 앞에 펼쳐지는 피상적(시각)인 현상으로(「안개의 섬」), 내가 모르는 냄새(후각)로(「판도라의 여름」), 그리고 이 모든 감각을 표현해내는 언어로(「말들이 내게로 걸어왔다」) 나타난다.
“접속 시대의 풍경과 질료를 십분 활용하되, 그것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심연을 탐문하려는 소중한 눈을 지닌 작가”, 윤이형. “요란스러운 포즈로서의 고통이 아닌 진정성 있는 고통의 상상력을 유려하게 형상화한 윤이형의 소설”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각별함이 만들어낸 특별한 디자인
양장에 아담한 판형으로 제작된 이 소설집은 디자인적으로도 몇 가지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먼저 소설가이자 화가인 이제하 선생이 직접 쓴 제자(題字)이다. 이제하 선생은 윤이형의 아버지이다. 2005년 중앙 신인문학상 시상식 당시, 이제하 선생이 그곳에 참석하면서 부녀지간이라는 것이 알려져,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란 에피소드는 아직도 가끔씩 이야기된다.
한편 『나의 지중해식 인사』(열린책들)로 잘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 씨의 그림 또한 시선을 끈다. 이강훈 씨는 작가와의 친분으로 표지 일러스트를 자청하여 모든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등 이번 책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아버지인 이제하 선생의 제자와 친분이 있는 이강훈 씨의 일러스트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윤이형의 첫 소설집은 작품뿐만 아니라 미적인 완성도도 더했다. 이는 작가와의 각별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 작품의 줄거리
「검은 불가사리」
환각의 상태에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살해한 한 여자가 재판 판결에 참고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는 내용의 이 소설은, 그녀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날 견딜 수 없이 몰려드는 눈의 통증을 느낀 뒤, 여자는 자신의 눈동자에 별 모양의 불가사리가 자리를 잡은 것을 본다. 그 이후부터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게 된다. 누군가로부터 배달된 상자에서 밀랍 병정들이 나와 그녀의 눈에서 불가사리를 떼어내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불가사리에게 동정심을 느껴 자신을 도와주려하는 밀랍 병정들에 맞서 싸우게 되고, 그 불가사리를 떼어버리라고 충고하는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죽어간다.
「셋을 위한 왈츠」
슬럼프에 빠진 주인공은 주변의 권유로 음악치료사를 찾아간다. 음악치료사는 그에게 왈츠를 권하지만 그는 숫자 3을 싫어한다며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음악치료사는 더욱 강력하게 그에게 쇼팽의 왈츠를 권하고 그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의 상처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간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고로 잃고 할머니와 형과 누나와 함께 살아온 주인공은 누나와 형도 똑같이 사고로 잃게 된다. 각자의 상처를 간직한 누나와 형 사이에서 언제나 셋이 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여자 친구와도 아이나 태어나 셋이 되는 것이 두려워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왈츠의 선율 속에 과거의 기억을 하나하나 짚어가던 주인공은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면서 셋을 향해 나아간다.
「피의일요일」
접속자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조종되는 게임 캐릭터들의 이야기이다. ‘나’는 자신들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음을, 때문에 뒤로 돌아서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함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접속이 끊기고 어둠 속에 있을 때만 들리는 그 목소리는 게임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잊혀진다. 결국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주변 적들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뒤로 돌아섰다가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되고, 그 모습을 목격한 ‘나’는 과거의 기억이 편린처럼 떠오른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어떠한 자각과 행동도 취하지 않고 매번 일어나는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반응만 반복한다.
「절규」
‘혜안’과 ‘나’는 극장에서 우연히 만나 예기치 않은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인터넷에 「절규」라는 카페는 개설하고, 의뢰인의 요구대로 길거리에서 절규를 해주는 일을 함께 시작한다. 상처를 치유하기보다 위안을 주기 위해 만든 그 사이트에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게 되고 자신의 상처를 대신 소리쳐줄 것을 의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의뢰인과 사귀게 된 ‘나’는 레즈비언이었던 ‘혜안’이 사랑한 그녀의 사촌과 자신이 닮았다는 것을 사진으로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둘은 서로의 길을 가게 된다.
「DJ 론리니스」
DJ 스카이하이라는 닉네임으로 디제잉 학원을 운영하는 ‘나’에게 ‘강빛나’라는 수강생이 찾아온다. 디제이가 되고 싶다는 그녀에게 디제잉의 이런저런 기술을 가르치면서 ‘나’는 그녀의 고독을 이해하게 되고 애틋한 마음을 갖지만,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학원을 그만둔다. 그녀가 떠난 뒤 의욕을 잃었던 ‘나’는 어느 날 그녀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달려 나간다. ‘나’를 만나러 오던 그녀는 사고로 크게 다치고 결국 심장이 멈추고 만다. 그러나 다시 작게 뛰기 시작한 그녀의 심장 소리를 들은 ‘나’에 의해 그녀를 덮었던 하얀 천은 거둬지고,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이 ‘DJ 론리니스’라고 말한다.
「말들이 내게로 걸어왔다」
언어 감각이 탁월해서 쌍둥이 동생과 늘 비교되었던 ‘나’는 자라는 동안 심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결국 쌍둥이 동생은 시인이 되었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알기 힘든 언어를 구사하는 엔지니어가 되었다. 어느 날 동생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아이의 지능으로 떨어지게 되자, 그녀의 주위에서 극찬하던 사람들과 남편마저 등을 돌리고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과거의 어느 날, 동생에게 키스를 가르쳐주며 자신이 기도했던 것이 이루어진 것만 같이 생각된 ‘나’는 동생에게 아이에게 하듯 처음부터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안개의 섬」
게임 회사에서 괴물 캐릭터를 만들어 히트를 친 ‘나’는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이다. 같은 회사 기획팀에 근무하는 연하의 남편을 둔 그녀는 대학원에서 예술철학을 전공하는 등 지적인 면을 갖추고 있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남편에게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예쁘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 목표이다. 아름다운 캐릭터의 모습으로 자신이 마련한 사이버 공간에서 우아하게 홍차를 마시던 그녀는, 어느 날 그곳에서 나무를 발견하고 그와 채팅을 시작한다. 그 채팅으로 인해 고민하던 일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그녀는 그것이 자신에게 관심도 없는 줄만 알았던 남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판도라의 여름」
주인공은 마음을 현상할 수 있는 판도라스 박스를 개발하고 남편에게 실험을 하던 중 의문의 여성이 인화되어 나오자, 다른 이성에 대해 반응할 수 없도록 하는 수술을 감행하여, 남편을 식물인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사진작가였던 남편의 마음속 여인의 존재를 밝혀내기 위해 낯선 마을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 의해 고통의 모습마저 상업적으로 빼앗겨버린 사람들의 처참해진 상황을 목격한다.
■ 작가의 말
당신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미궁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속에서 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미노타우로스로 살아왔다. 당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내 미궁에도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가 있고 햇빛과 거미줄과 낮잠과 내가 잡아먹은 사람들의 뼈가 있다. 자세한 사정은 설명할 수 없지만 어느 날 미궁 안에서 나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 당혹스러웠고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미 생긴 생명을 어떻게 할 수 없어 낳기로 했다.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 내 아이들이다.
꼭 나처럼 소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이 아이들의 어금니와 송곳니가 신경 쓰인다. 온전치 못한 팔다리는 둘째치고라도, 이 아이들을 품고 있을 때 먹은 마음이 별로 아름답지 못해서다. 내게 글쓰기는 이 좁은 미궁을 뚫고 나가고 싶다는 시리고 쇳내 나고 개인적인 열망이었을 뿐, 결코 타인을 위한 위안이나 아름다움의 추구 같은 거창한 것을 의미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간다고 내가 현명해지거나 나은 인간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단지 어리석고 준비되지 않은 엄마를 만난 죄 때문에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내 첫번째 아이들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주고 싶다. 이 아이들의 뒤틀린 몸과 얼굴에 새겨진 것들이 내게 길이 되어주길 바란다.
첫 창작집이 나오기까지 가까이 혹은 멀리 내게 머물러준 사람들, 실마리를 던져주고 포기하지 말라고 해준 친구들, 그리고 지금은 내 곁에 없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신들이 있어서 겨우 꿈을 꿀 수 있었다. 나보다 열심히 살지만 자꾸만 외롭고 자꾸만 행복하지 않은 당신들을 위한 이야기를 언젠가는 쓰고 싶다.
2007년 가을, 윤이형
검은 불가사리
셋을 위한 왈츠
피의일요일
절규
DJ 론리니스
말들이 내게로 걸어왔다
안개의 섬
판도라의 여름
해설_눈의 작란(作亂), 그 고통의 탈주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