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인간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참된 우정을 보여주는 솔개와 소년의 이야기!
■ 야생 지대의 마지막 요새,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넘 땅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우정
우리들의 삶은 어느 순간에 변화되는 것일까? 또한 그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기치 않았던 사소한 만남에서부터 인생의 획을 그을 만한 크나큰 사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무수한 사건과 사람들 가운데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만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석 같은 순간을 잡을 수 있는 내면의 진정성일 것이다.
『인도솔개』는 주인공 루크가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아빠와 가족을 따라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어느 산림 속으로 들어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를 만나 가치관과 삶이 변화되는 과정을 따뜻하고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우리나라에 이미 소개된 바 있는 작가 콜린 티엘은 자연과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사실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다루어 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가 인간과 자연 세계에 보내는 애정 어린 시선이 작품 곳곳에 잘 녹아 있다.
루크는 산림 경비대원인 아빠를 따라 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산림지대인 아넘 땅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아빠와 그곳의 원주민 울루왕구는 밀어꾼, 사냥꾼들로부터 야생 동물을 지키는 아넘 땅의 파수꾼들이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넘 땅은 야생 지대의 마지막 요새란다.” 아빠는 드넓은 자연 속에서 맛보는 쓸쓸함과 고요와 자유로움을 좋아하고 야생 동물도 좋아해서 문가딜라의 산림 경비대 초소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선뜻 받아들였지만, 하루아침에 환경이 바뀌어 버린 루크로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엄청난 변화였다. 여태껏 살아 왔던 오스트레일리아 중부의 맑은 하늘이 북부의 열대 계절풍으로 바뀌고, 번화한 도회지가 숲 속의 쓸쓸한 경비 초소로 바뀌고, 고작해야 손가락 크기밖에 안 되는 해로울 것 없는 도마뱀이 무시무시한 오 미터짜리 악어로 바뀌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넘 지역의 문가딜라, 이름조차 생소한 그곳에서 루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일생일대의 소중한 만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찾은 소년이 발견한 삶의 경이로움
아넘 땅에 발을 들여놓은 루크네 가족들이 처음 대면하게 된 것은 역류하는 강물과 사람들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살아 숨 쉬는 대자연이었다. 가족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대자연의 위용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아빠는 그곳에서 산림을 지키는 일로 들떠 있지만 엄마와 누나, 루크는 그곳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루크는 사실 그곳에서 처음 본 멋진 새 한 마리에 마음을 빼앗긴다. 깃털이 아름답고, 튼튼한 발톱과 갈고리 모양으로 휜 부리를 지닌 크고 땅딸막한 새는 등과 옆구리는 산뜻한 밤색이고, 머리와 가슴은 눈부시게 희었다. 도시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인도솔개의 모습에 루크는 넋을 잃고 만다. 그리고 루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또 한 마리의 솔개가 루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작고 볼품없이 버려진 솔개 새끼와의 만남, 세상에서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게 되는 둘의 아름다운 만남이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찐득한 습기와 무서운 기세로 퍼붓는 몇 번의 우기를 거치면서 문가딜라의 생활에 슬슬 적응해 나갈 무렵 아빠는 버려진 솔개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모두들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고 했지만 루크는 정성껏 보살펴 솔개를 살려낸다. 한집에 살면서 루크와 솔개는 때로는 먹이와 공부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우정보다 더 깊은 우정을 마음으로 나눈다.
주변의 의심에 찬 눈초리에도 불구하도 루크는 솔개가 자신을 깊이 믿어 준다는 데 완전한 신뢰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솔개를 향한 루크의 믿음이 빛을 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생일 선물로 받은 카메라를 들고 멋진 사진을 남기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만 것이다. 그제야 루크는 아빠가 골백번도 넘게 타이른 말을 떠올린다. “길가의 숲으로 엄지발가락 하나도 들여놓으면 안 된다. 절대로. 그랬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숲 속에 갇히게 돼. (…) 수색대가 한 달이 걸려도 널 못 찾을 거야. 어쩌면 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고.”
정말 그랬다. 루크는 어마어마한 숲에 갇혀 전혀 방향을 잡지 못했다. 무섭고도 두려운 밤을 지새운 루크의 눈에 띈 것은 하늘을 높게 선회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솔개였다. 루크는 솔개가 안내하는 대로 길을 걸어 드디어 집에 당도하게 된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솔개가 해낸 것이다. 또한 밀렵꾼들이 놓은 덧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솔개도 루크의 극진한 간호로 새로운 세상을 맞게 된다. 솔개가 숲 속에서 길 잃은 소년을 구했다는 말을 세상사람 누구도 믿지 않았지만 루크와 가족들은 솔개가 정말로 사람과 신의를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교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루크는 새로운 학교,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문가딜라에서 보낸 이 년의 시간은 루크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그 야생의 땅은 루크에게 더 이상 ‘끔찍한 곳, 따분한 곳, 미개한 곳’이 아니라 ‘참 때 묻지 않은 곳’이 되었다. 이 년 동안 루크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호수와 수련과 장다리물떼새와 까치기러기와 물수리와 꽃과 초목들의 보물 창고였던 그곳에서 인생의 가장 값진 보물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루크는 자신도 어쩌면 산림 경비대원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세상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부산일보 2007.10.20
■ 책꽂이
인도솔개(콜린 티엘)=오스트레일리아 삼림에서 새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참된 우정을 보여주는 솔개와 소년의 이야기. 초등 3~4학년 이상. 문학과지성사/김라합 옮김/8천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