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 문법을 벗어난 기표의 유희 속에 뒤죽박죽 얽히고설키는 비극
단 한 권의 시집으로 ‘2000년대 시’ ‘새로움’ ‘전위’ ‘모호함’ ‘비주류’를 대표하게 된 시인이 있다. 평단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시인 중 한 명인 황병승이다. 한글로 씌었으나 전혀 낯설게 다가오는 그의 언어는 독자들이 흔히 시에서 기대하는 소통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에 나타난 새로운 코드들은 많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가 최근 5쇄를 찍은 것은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을 거부하면서도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작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시를 이루고 있는 커다란 특징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그가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양파처럼 벗겨도 벗겨도 알맹이가 뭔지 모르겠는 시. 그런데 맵다. 코끝을 자극하고 눈 속을 파고들더니 기어이 재채기를 일으키고 눈물을 부른다. 이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혹은 방심하고 있었던 어떤 부분을 건드린다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등장에 입을 모아 ‘새롭다’ 내지는 ‘전위적이다’라는 표현을 했으리라.
그의 새 시집이 2년 만에 나왔다. ‘두번째’라는 것은 더 이상 ‘새롭다’는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법이다. 황병승을 이야기할 더 적절한 표현이 있어야 할 때이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이번 황병승 시집의 해설을 이렇게 시작한다. “황병승은 동시대 한국 시의 뇌관이다.” 그리고 그 뇌관의 특성은 해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진다. “한국 현대시의 진정성에 대한 이념과 그 지루한 표준성을 날려버릴 강력한 뇌관.” 또 다른 점화의 지점에서 그 뇌관이 다시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트랙과 들판의 별』이다.
‘열린 경험’과 ‘뒤죽박죽의 체험’으로서의 시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 시단에서 황병승의 첫 시집은 “괴물 신인의 괴팍한 등장이었다.” 이성복과 황지우의 첫 시집이 80년대 초반을, 장정일과 기형도의 시집이 80년대 후반을 뜨겁게 달군 역사적인 시집들이었다면, 풍요로웠지만 고요했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지나던 중 “매력적인 정체 불명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이해되기 이전에 먼저 빨아들이는 수사들, 비문(非文)의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씌어지는 문장들, 격렬한 분노와 황량한 슬픔이 뒤엉켜 있는 정서들”을 쏟아내었던 황병승의 첫 시집이 나타나 단숨에 기념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언어의 모험과 정체성의 실험이 같은 것이라고 믿는 전위의 척탄병”으로서 시의 “외연을 넓”히며 “‘시 아닌 것들’을 긁어 모아 ‘시’가 될 때까지 밀고 나가는 연금술의 길”을 걸었던 황병승의 시 세계를 일컬어, “한국시의 신개지(新開地)”라는 극찬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 신개지에서 펼쳐지는 두번째 이야기 『트랙과 들판의 별』에는 기존의 그의 시적 공간을 설명하는 개념이었던 하위문화, 분열된 주체, 퀴어, 잔혹극, 무국적성, 텍스트들의 콜라주 등의 요소들이 여전히 남아 웅성거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인은 시적 담화의 공간을 다시 개방하고 확장한다. 이러한 무한 확장은 표면적으로 형태상의 확대를, 내부적으로 이야기성의 폭발을 가져온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성의 경계를 더욱 과감하게 추월한다는 데에 있다.(이광호)
212페이지의 이번 시집은 보기에도 여느 시집들에 비해 그 두께가 상당하다. 그런데 편수는 40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시는 대부분 길었다. 그런데 더욱 길어졌다. 그는 이렇듯 시가 길어지는 이유를 “시도 되고 소설도 되는, 시도 안 되고 소설도 안 되는, 시와 소설의 모호한 경계에서의 밀고 당기는 재미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다운 설명이다. 이광호씨는 이것이 비단 시적인 것으로부터 서사적인 것으로의 이동이 아닌 ‘서정적인 것/서사적인 것,’ 혹은 ‘말하기/보여주기’의 문법적 구획으로부터의 도주라고 역설한다. 하여 이것을 시라고 부를 수 있는가, 혹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황병승의 시는 작품이 아니라 열린 경험이며, 감각의 사건이므로. 황병승을 읽는 일은 희극적인 비애, 냉소적인 공감을 자아내는 ‘뒤죽박죽’의 체험이므로.
‘기표의 놀이’가 가지는 주술적인 힘
그럼에도 여전히 황병승의 시가 의심스럽다면, 이번 시집 제2부에 수록된 「문친킨」이 그 답이 되어줄 것이다. ‘문친킨’은 ‘스위트 워러’라는 여성이 “줄 줄 줄 써버리는 시.” 무슨 뜻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을 굳이 해석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그저 여성 시인이 만든 말이다. ‘문친킨’의 세계는 기표와 기의,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규범 문법의 구조를 벗어난 기표의 유희 속에 있다.
따라서 이 시는 황병승 시인에 대해 “기표의 놀이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세계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을 해내고 있다”고 했던 평론가 권혁웅씨의 평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광호씨는 더 나아가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그 기표의 놀이가 가지는 힘, 혹은 그 기표의 존재성, 혹은 그 담화의 사건성 자체”라고 설파한다. 존재하는 말, 그 말이 발화된 사건에 독자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유희를 넘어 어떤 주술의 차원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표의 놀이’라는 이 포스트모던한 언어의 차원은, 동시에 시적 언어의 원시적 에너지, 혹은 마법적인 신비를 보유한다”는 말로 황병승 시가 가진 힘을 확인시켜준다.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 중 하나”라고 답했다는 황병승 시인. 그의 놀이 속으로 뛰어들어 가보자. 그의 시 속에서 열린 경험과 뒤죽박죽 체험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언어의 강력한 주술에 걸려 “문친킨 문친킨”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시집 소개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은 어른이 되지 못한(되기를 거부한?) 아이들의 방황과 반항,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기이한 동화의 세계인데, 왜 기이하냐면 순진한 아이들의 세계가 아닌 기성의 세계(어른의 세계)에 대항하는 도착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기 때문이다. 지어내거나 문화적인 텍스트 속에 들어 있는, 혹은 실재하는 이야기들이 콜라주 기법에 의해 뒤섞이는 시의 이미지들은 이러한 이야기의 병치에 의해 위력을 발휘하는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시집에서 풍겨나는 이 유니크한 양식과 기이한 이야기들은 결국 현실 세계 전체에 대한 거대한 비판의 아이러니로 작용한다.
■ 시인이 쓰는 산문(뒤표지 글)
구름은 입술을 원했고 새들은 그것을 도왔다.
시인의 말
제1부
첨에 관한 아홉소ihopeso 씨(氏)의 에세이
내 이름은 빨강 마리오는 여름
그녀의 얼굴은 싸움터이다
눈보라 속을 날아서(상)
눈보라 속을 날아서(하)
멜랑콜리호두파이
같이 과자 먹었지
그리고 계속되는 밤
마음으로만 굿바이
물고기의 노래
동물은 열두 가지
헬싱키
어린이날기념좌절어린이독주회
엽차의 시간
멀고 춥고 무섭다
아빠
썸 비치some bitch들의 노래
칙쇼(畜生)의 봄
트랙과 들판의 별
제2부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
회전목마가 돌아간다 Sick Fuck Sick Fuck
사산(死産)된 두 마음
모모
게이 찰스 존재
웨이트리스
곰뱀매거진18호
9 갈고리 잭
조금만 더
코코로지CocoRosie의 유령
이 저녁의 모든 것은 어긋났고 우리들은 그 모든 것의 멤버
저녁의 양(羊)과 올 더 세임all the same
미러볼
뽀삐
섬망(譫妄)의 서머summer
배우는 울고 마차는 굴러 간다
고양이와 자라는 소년
문친킨
부카케bukake, 춤의 밤
스위트피
잔디는 더 파래지려고 한다
해설|숭고한 뒤죽박죽 캠프·이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