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관한 학문과 그 이론적 질서를 위하여
흔히 ‘문예학’으로 일컬어지는 ‘문학에 대한 학문’의 위기를 극복하고 문학의 이론적 질서를 바로잡고자 쓴 김태환 교수(덕성여대·문학평론가)의 문학 이론서 『문학의 질서―현대 문학이론의 문제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문학이론의 위상과 기능, 텍스트의 구조, 시적 언어의 특성, 서사적 형식, 장르의 유형론, 소설의 진화, 문학과 사회적 환경 등의 주제를 다룬 10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0년 이후 각종 문예지 등에 발표했던 ‘현대 문학이론의 문제들’을 주제로 한 논문 7편과 미발표 원고 3편을 한 권으로 간추려 엮은 것. 그러나 “큰 폭의 수정과 보완을 거쳤”으므로 현재 저자가 가지고 있는 입장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김태환 교수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학의 위기’는 “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데서 오는 위기일 뿐만 아니라 학문의 중심을 이루는 전문적 이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데서 오는 위기이기도 하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문예학자들은 “문제에 대해 한탄하고 있기보다는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문학은 오랫동안 학문의 대상으로서 연구되어왔고 대학에서도 주요 전공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 ‘문학을 연구하는 학문’에 대한 명칭조차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문학비평, 문예학이라는 용어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문학에 대한 학문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으로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고 “한국어의 문맥에서 비평은 학문적 연구보다 현장비평의 의미에 더 가깝”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문예학이 ‘문학에 관한 학문’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에 가장 적절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독일어의 ‘Literaturwissenschaft(문학의 학문)’에 대한 번역어 정도로밖에는 인식되지 못하고 있어서 아주 한정된 범위에서 사용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각각의 글들 속에 표명된 주요 이론적 관심사에 따라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이론’에서는 이론 자체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이루어진다. 즉 문학이론의 가능성과 의미에 관한 메타이론적 고찰이 제시되고, 이 과정에서 문학에 접근하는 저자의 이론적 입장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제2부 ‘개념과 모델’은 시와 소설을 실제로 분석하고 기술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개념과 모델을 개발하고 가다듬는 작업을 수행한다. 또한 그러한 도구들이 어떻게 비문학적 담론과 텍스트에까지 확대 적용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제3부는 문학사적 과정과 문학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소설이 시대에 따라 형식과 내용에 있어 어떤 변화를 겪으며 진화해왔는지, 그리고 문학에 대해 근대 시장 사회라는 환경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가 중점적인 논의 대상이 되고 있다. 10편의 각 논문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책 전체를 읽는 독자는 10편의 글들이 일관된 이론적 관점과 문제의식을 통해 현대 문학이론의 제 문제들을 해소하는 데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나는 문학에 대한 학문이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단순히 언어적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분야의 학문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징후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개별적 대상, 예를 들어 특정 작가나 작품들에 대한 연구와 일반적 수준의 이론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문학에 대한 개별적 연구가 기본적으로 작품에 대한 해석과 의미 부여를 기초로 하는 것이라면, 이론은 해석과 의미 부여의 관점과 방법을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는 이론 없는 해석(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이론에 대한 충분한 자각이 없는 해석)이, 다른 편에는 구체적 연구와 잘 관련지어지기 어려운 추상적 논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 오랫동안 문학을 다루는 학문의 현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사정을 보면 전공으로서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문학이론이 어떤 것인지도 분명히 정의되어 있지도 않고, 문학의 전문 연구자가 되기 위한 전제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이론적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도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이후부터는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문학의 주변화 과정 속에서 대학의 문학 관련 학과들(특히 서양어문학과들)은 문화학, 지역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문학에 관한 학문은 제대로 된 이름도 가져보지도 못한 채 소멸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학문적 이론의 기초가 취약했던 분야에서 단순한 대상의 전환 내지 확장이 과연 어떤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문학의 주변화가 문학에 대한 학문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제 뭔가 다른 대상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모든 비관적 인식의 배후에는 대상의 차원과 학문의 차원에 대한 혼동이 작용하고 있다. 신화학은 신화가 소멸한 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탄생했다. 고생물학은 멸종한 생물에 대한 학문이다. 요컨대 대상의 소멸은 학문의 소멸과는 별개의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물론 문학은 온갖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지만―설사 문학이 고사(枯死)해버렸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문학에 대한 학문까지 소멸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학에 대한 학문은 그것이 더 이상 어떤 흥미로운, 혹은 의미심장한 인식도 생산해낼 수 없을 때 소멸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학에 대한 학문의 소멸 여부는 문학작품의 창조자나 독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탐구하는 학자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머리말」에서
시장은 어떤 예술 외적인 강제 없이 예술가와 감상자가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이며, 그 때문에 예술가의 영향력이 진정으로 발휘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강제로 읽히는 문학작품보다 독자들이 스스로 찾아보는 문학작품이 더 큰 영향력을 지닌다. 궁극적으로 시장에서 설득력을 지니는 예술이 결국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예술을 위한 시장 외적 지원, 이를테면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에 대한 다양한 국가적 지원이나 민간 차원의 지원이 상당한 정도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차원에서 작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예술은 시장 외부에서 최후의 의지처를 찾을 수도 없고,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안락한 지원의 혜택 속에서 예술은 특정한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예속될 수도 있고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타성 속에서 타자와의 긴장에 넘치는 교류를 잃어버린 박물관 속의 예술로 전락해버릴 위험도 크다. 예컨대 공산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야만적이고 살인적인 시장 경쟁’의 정글을 벗어나 국가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표현의 자유를 지불해야 했고, 그것은 예술 자체의 실종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시장의 원리를 떠나서 예술은 존재할 수도 발전할 수도 없다. 그것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예술에게 주어진 기본 조건이다. 그리고 이는 생각만큼 저주스러운 조건은 아니다. 예술을 후원하는 국가 권력이나 다른 집단(이를테면 대기업)보다는 시장이 다양한 예술에 대해 훨씬 더 공정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대조일지 모르지만, 시장에 의해 문학작품의 정전이 형성되어가는 사회는 국가가 문학작품의 정전을 정하는 사회보다는 훨씬 더 예술에 대해 열려 있고 예술의 자유로운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인 것이다. 시장과 상업화에서 예술의 파괴만을 보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예술의 미래는 시장의 발전에 달려 있다. ─제10장 「예술과 근대 자본주의 정신」에서
머리말
제1부 이론
제1장 비평과 이론
제2장 문학이론과 구조주의
제3장 하이퍼텍스트와 비평
제2부 개념과 모델
제4장 은유와 환유
제5장 서사성과 담화
―그레마스의 기호학
제6장 저력의 담론
제7장 환상성의 구조
제3부 진화와 환경
제8장 서사시에서 모더니즘으로
―루카치, 바흐친, 쿤데라, 모레티의 소설사적 구상
제9장 근대적 사회와 반근대적 이야기
―코엘료의 경우
제10장 예술과 근대 자본주의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