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왜 이다지도 폭력이 난무하는가?
‘모방적 욕망’과 ‘희생양 메커니즘’ 등의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에 난무해 있는 폭력을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 르네 지라르Ren?Girard의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Celui par qui le scandale arrive』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모방적 욕망과 르네 지라르 철학’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의 모방이론 전반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이자 완결판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3년 전 국내에서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문학과지성사, 2004)와 짝을 이루는 책이기도 하며, 머리말을 통해 언급되고 있듯이 지라르의 “4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작업의 중간보고서”이기도 하다. 특히 그간 지라르의 견해들에 대해 제기되어온 이의들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담고 있는 제1부의 세 편의 글과 지라르에 정통한 마리아 스텔라 바르베리 교수(이탈리아 메시나 대학 정치학과)와의 대담을 담고 있는 제2부는 르네 지라르의 ‘모방적 욕망’ 이론에 대한 이해를 확고하게 한다.
우리의 욕망은 대상에서만 나오는 자연 발생적인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 대한 모방에서 생겨나는 ‘모방적 욕망’이라는 것이 르네 지라르의 출발점이다. 그의 이 모방이론은 ‘있는 것을 있는 대로 파악하는 리얼리즘’에 기초해 있는데, 이는 인간 욕망의 모방성과 폭력에 내재된 성스러움 혹은 성스러움에 내재된 폭력의 속성을 파헤치고, 이어서 신화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신화 해석에 이르렀던 지라르의 기존 저작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물론 이번에 출간된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에서는 이러한 모방이론이 신화와 성서에 나오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실례로 하여 훨씬 명료하고 공고화되어 있다.
폭력, 모방적 욕망, 그리고 희생양 메커니즘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 사건’과 모방적 욕망이론
르네 지라르는 “갈등과 폭력의 진짜 비밀은 바로 욕망하는 모방, 모방적 욕망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맹렬한 경쟁 관계라고 단언한다.” 2007년 4월 현재, 전 세계는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있었던 한국인 유학생 조승희씨의 대량 살상 사건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우리 주위에는 왜 이다지도 폭력이 많은 것일까?”로 시작되는 제1장 「폭력과 상호성」을 보면 폭력과 모방적 욕망이론에 대한 르네 지라르의 선견지명을 짚어볼 수 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 역시 우발적인 범행이라기보다는 모방에 의한 치밀한 사전 준비가 있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해지는 모든 위험 중에서 가장 무서운 위험은 알다시피 바로 우리 자신이다. 매일매일 우리들의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 사실은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는 것 같다.
냉전 종식과 함께 엄청난 재앙을 갖고 오는 전쟁의 위험이 줄어들면서 평화주의자들은 즐거워했겠지만, 그러나 파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사실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강한 믿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테러리즘이 전쟁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렇지만 테러가 마치 강대국들의 핵전쟁만큼이나 끔찍하게 될 것이란 것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는 미처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날에 와서야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폭력은 지금 불길이 번져나가거나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과정과 흡사한 확대 과정에 들어선 것 같다. 폭력이 마치 아주 오래되고 또 약간은 신비스러운 형태를 되찾은 양, 위대한 신화의 이미지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마치 강렬한 폭력들이 그 안에서 서로 만나서 한데 섞이는 커다란 회오리바람과 같다. 이제는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도 생겨났고, 미국에서는 학교 안에서 한 학생이 동급생을 대량 학살하는 그런 폭력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세계 전체에 걸쳐서 눈에 드러나는 폭력들이 있고, 테러는 끝도 경계도 없다. 특히 테러리즘은 민간인에 대해 진짜 살인 전쟁을 펼치고 있다. 이런 광경은 마치 지구의 모든 인류가 스스로 폭력과 만나기 위해 총진군하고 있는 형상을 연상시킨다. (본문 15~16쪽)
르네 지라르는 이러한 폭력과 테러리즘에 저항하는 방법으로써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한 구절, 즉 “앙갚음하지 마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5:38~40)를 예로 들며, 마치 예수가 ‘희생양’이 되었듯이 폭력의 상승 작용을 그 싹부터 막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우리가 언제나 폭력에 굴복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폭력이 우리를 악으로 밀어넣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최악의 폭력인,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이 집단적인 구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폭력에 대한 우리의 저항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가 가르치는 이런 행동만이 폭력의 상승 작용을 그 싹부터 막을 수 있다. 한 순간만 지나면 때는 이미 늦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굴복했을 때 다시 말해 한 번 더 모방을 따랐을 때의 결과인 엄청난 위기에 비하면, 분쟁의 대상물은 그것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제한된 것이고 또 유한한 것이다. 그래서 그 대상물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낫다.
우리는 복수를 포기하는 것이 상대방의 머리에 ‘타고 있는 숯불’을 쌓아놓는 것, 즉 상대방을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바울의 말과 비교해보면 앞의 「마태복음」 구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42쪽)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vs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이 책의 전작인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는 「누가복음」의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10:18)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지라르는 이 표현을 ‘오늘날의 세계에서 사탄이 창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또한 이번 책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는 마리아 스텔라 바르베리 교수가 르네 지라르를 지칭한 표현인 ‘Celui par qui le scadale arrive,’ 즉 ‘그를 통해 스캔들이 온 자’에서 ‘예전에는 스캔들인 줄 몰랐는데 르네 지라르를 통해서 그것이 비로소 스캔들인 줄을 알게 되었다’는 바르베리 교수의 원뜻을 살려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로 의역한 것이다.
두 책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많아서,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와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의 본문에는 이른바 ‘사탄’과 ‘스캔들’론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 등장한다.
지금의 인간이 되었을 초기의 미래 인간 피조물이 모방의 어느 단계를 지남으로써 동물적으로 폭력을 피하던 메커니즘이 붕괴되는 순간부터 인간 사회에 모방 갈등이 분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은 희생양 메커니즘, 신, 희생 제의 등을 만들어내어 인간 사회의 폭력을 진정시키고 그 폭력에게 문명화라는 긍정적인 방향의 길을 터줌으로써 재빨리 그 해독제를 만들어내었다.
우리 욕망은 모방적이기 때문에 서로 닮아서, 함께 만나면 서로에게 전염도 잘 되고 서로에게 피해만 주는 대결 구조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우리 욕망은 스캔들이 된다. 증폭되고 집중된 스캔들은 그 사회를 위기에 빠뜨리는데 이 위기가 점점 더 격화되어서 절정에 이르면 집단 전체의 폭력이 한 사람의 희생양에게로 집중되는 ‘고정농양’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폭력은 진정되고, 와해되었던 집단의 질서는 되살아난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124쪽)
사탄은 당연히 소멸하지 않습니다. 그는 떨어져서 땅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전의 사탄은 초월적인 천상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지금은 이제 더 이상 질서의 원천이 아니고 대신 무질서의 원천일 뿐입니다. 사탄이 죽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 반대로, 땅에 추락했기 때문에 사탄은 인간과 훨씬 더 가까워졌습니다. [……]
바울이 의미하는 것이 아마 그런 것일 겁니다. 그리스도는 사탄의 벽을 건너뛴 유일한 인간입니다. 그는 희생양 시스템, 즉 사탄의 원칙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습니다. 예수의 부활 이후로 그전에는 없던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다리가 하나 생겨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한발을 딛고 있다는 것과 함께 사탄의 성벽을 없앴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러므로 이 세상에 뿌리박고서 인간이 지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사탄의 질서 속에다가 무질서를 놓아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88~90쪽)
르네 지라르는 “예수를 모방하는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오래전부터 모방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는 우리 스스로가 독창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이웃에 대한 모방에 근거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에 대해 ‘개종(改宗)’이라 부른다. 이에 대해 김진식 교수(울산대 프랑스학과)는 「옮긴이 해설」을 통해 “상투적인 통념 속에서는 나는 남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고 있었지만, 자신도 타인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나와 타인은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은 사람들간의 차이점보다는 유사성을 깨닫게 하여 상호 소통을 열어줄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진단한다.
그런데 인류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폭력을 막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밖에 없다’는 모순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처럼 나쁜 폭력을 덜 나쁜 폭력으로 막는 것을 지라르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라 부른다. 요컨대 우리는 언제나 ‘폭력’과 ‘모방적 욕망’과 ‘희생양,’ 그리고 ‘희생양 메커니즘’이 혼재되어 있는 현재의 역사를 살고 있는 셈인데, 지라르가 전제하는 희생양 메커니즘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메커니즘이 폭력이라는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본질적 폭력과는 다른 양태를 띠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스러움’이라는 차별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차이는 미량의 병원균을 주사하는 것이 큰 병을 이겨낼 항체를 형성해주듯이, 차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김진식 교수의 설명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지나친 것을 꺼리는 태도가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적어도 인류의 선조들은 이분법적인 판단이 아닌 관계 속에서 판단을 내리는 가변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르네 지라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모방은 나쁘고, 희생양 메커니즘도 나쁘다’는 그야말로 선험적이고 이분법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올바른 지향점은 모든 것은 양분되어 있다는 이원론적인 사유체계가 아니라, 모든 개체는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이고 단지 겉으로만 또는 일시적으로만 여럿으로 분화되어 있다고 보는 다원론(같은 말이지만 일원론)의 태도를 견지할 때에만 진정으로 유효한 대안과 해법과 유효한 설명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 해설: 리얼리즘과 일원론을 통한 르네 지라르의 이해」, 206~07쪽)
르네 지라르의 독창적인 이론의 궤적
문학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욕망 구조의 분석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폭력성 그리고 성서의 새로운 해석에 이르기까지 르네 지라르 사상의 궤적은 보기 드물게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문학 텍스트에서 단순한 문학성을 찾는 문학 연구에만 만족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얻은 결론을 이용하여 인간의 또 다른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 결국 인문학이 걸어가야 할 행로까지 보여주었다.
인간 욕망의 발생 원인을 단순히 그 대상물에서만 찾는 대부분의 기존 사상에 비해 인간들 사이의 모방에서 찾는 지라르의 이론은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 것이다. 하여 서구 인문학계에서는 지라르가 ‘기본적 인류학’이라 부르는 것에 기초하여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새로운 길을 모색한 지 오래이다. 또한 지라르 특유의 관점을 신화나 민담 등의 구비 문학에 적용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2004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하여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영화 「Passion of Christ」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이제 성서의 기록과 기독교적인 전통이 단지 기독교도들이나 신자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의 암시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다양한 사상의 궤적을 밟아온 르네 지라르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와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에서 시도한 신화 및 성서 해석의 방법도 성서의 새로 읽기, 다시 읽기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서 지라르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독교 기록에 대한 연구는 많은 종교학자들과 성직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희생양』과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에 나타나 있듯이 기독교의 기록을 폭력이 등장하는 다른 기록과 같은 위상에 두고 접근하는 지라르의 입장을 살펴보건대, 그가 ‘기독교를 인문학에 도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기독교는 인문학의 옆이나 위나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에 있다. 지라르의 이런 사상은 지금껏 여러 사상들이 귀중하게 취급하던 모든 인위적인 절충안들을 무산시켜버리는 ‘거대 담론’과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르네 지라르는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에 실린 ‘마리아 스텔라 바르베리 교수와의 대담’에서 자신의 추후 연구 방향에 대해 “(1)근원적 역사의 시각에서 모든 연구 결과를 한데 집대성하고, (2)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서 더 깊이 들어가 보며, (3)생물학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의 관계를 해명하고 싶다”(『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182쪽 참조)고 밝힌 바 있다.
머리말
제1부 상대주의의 극복
제1장 폭력과 상호성
제2장 선량한 원시인과 타인
제3장 모방이론과 신학
제2부 신화의 이면
제4장 마리아 스텔라 바르베리와의 대담
옮긴이 해설―리얼리즘과 일원론을 통한 르네 지라르의 이해/김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