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집

윤흥길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7년 2월 28일 | ISBN 9788932017594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32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30년 시간의 벽을 허무는 뜻깊은 기획’

문학과지성사는 창사 30주년을 맞은 지난 2006년을 시작으로 매년 한 권씩,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모델을 내놓으며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디지털 문화의 성장은 인쇄 활자와 책의 무력화 현상을 바라보는 우려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한 권의 문학책이 작가-출판사-서점-독자를 거쳐 모두에게서 잊혀지기까지의 순환 주기는 나날이 짧아져간다. 이런 현실에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나서도 독자와 비평가들의 꾸준한 애호와 평가를 이끄는 책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의 축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비록 인쇄된 활자는 때 묻고 바랬을망정, 그 문장과 행간에 깊이 박인 의미들은 온고지신의 자세로 독자의 눈을 빌려 새롭게 읽히고 해석되며 잔잔한 감동을 전달한다. 때문에 좋은 책이 온당한 대접을 받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새삼 중요해진다. 이번 문학과지성사의 ‘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출간은 지난 30년간 한국 문학의 첨병으로서 꾸준하고 의미 있는 기획과 작가와 작품 발굴, 출판에 힘써온 문학과지성사가 앞서 말한 스테디셀러에 대한 스스로의 요구를 실천에 옮기는 첫 사례가 될 것이다.

세월의 힘에 무력화되지 않고 더욱 웅숭깊은 문학의 향기를 확인하는 장으로 거듭날 이 기획은, 오래도록 변함없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저자의 꼼꼼한 수정과 새로운 본문 편집을 거쳐 특별 개정판으로 선보이고 있다.

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윤흥길의 『황혼의 집』(1976년 초판, 2007년 개정판 발행)

왜곡된 삶의 현실과 부조리를 형상화하는 윤흥길 문학의 힘
우리의 내면을 갉아먹고 있는 현실의 정체를 파악하여
오늘의 삶에 대한 인식을 가능케 한다

윤흥길의 중단편소설집 『황혼의 집』은 지난 2006년 홍성원의 『주말여행』 이후 이 기획의 두번째 권으로서 6,70년대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현실감 넘치는 문체 속에 실어 보이고 있는 작품집이다.
한국 중편 소설의 백미로 꼽히며 6?5 전쟁을 겪은 서민들의 삶을 다룬 「장마」, 「장마」와 함께 윤흥길 문학의 두 본령으로 꼽히는 「황혼의 집」 등 중단편 여덟 편을 수록한 이 작품집의 개정판 발간으로 그간 한국 문학이 쌓아온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유년기에 6?5 전쟁을 겪으며 성장하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본격적인 산업화의 진행 속에서 피폐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세대의 애환을 끊임없이 조명하는 작품들을 선보인 윤흥길 문학의 정수가 여기에 담겨진 것이다.

그는 삶 속에서 자신이 한 마리의 상처받은 동물임을 인식하고 그 동물로서 철저하게 그러나 살아가려 한다. 그것이 나를 괴롭힌다. _김현(문학평론가)

윤흥길의 「장마」는 분단 상황을 반근대적 세계관으로 해석하는 유형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_김윤식(문학평론가)

윤흥길 문학의 관심은 역사의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폭력인 그 역사에 치인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다. 역사의 탐구가 아니라 역사의 폭력성이 무더기무더기 만들어낸 고통과 슬픔의 증언이고자 하였던 것이다.
_정호웅(문학평론가)

■ 『황혼의 집』 수록 작품

「황혼의 집」
‘나’는 한 동네에 사는 경주와 친구 사이이다. 경주네 큰 언니는 빨치산인 남동생에게 자수의 길을 터주려고 하다가 강간당한 후 목을 매 자살을 했고 둘째언니는 가출을 했다. 혼자 남은 경주는 언제나 자기 엄마를 죽일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경주네 집에서는 황혼녘이 되면 언제나 경주 엄마의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경주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자 경주네 집에 놀러갔다가 경주 엄마가 먹인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고 만다. 이 일이 있은 후 경주네는 마을에서 자취를 감춘다.

「집」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함께 살고 있다. 처음으로 집을 갖게 되었지만 무허가 판잣집 철거반에 의해서 집이 헐리리라는 소문이 돈다. ‘나’는 이상한 기대감에 차서 그날을 기다리고, 아버지와 형은 집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과 아무 상관없이 집은 결국 헐리고 형은 치유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져 한밤중에 교회로 달려가 끝없이 종을 친다.

「장마」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외할머니는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전사하였다는 통지를 받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며 빨치산을 아들로 둔 친할머니와 급격히 사이가 나빠진다. 빨치산 대부분이 소탕되고 있는 때라서 가족들은 대부분 할머니의 아들, 곧 삼촌이 죽었을 것이라고 믿지만, 할머니는 점쟁이의 예언을 근거로 아이들의 생환을 굳게 믿고 아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예언한 날이 되어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구렁이 한 마리가 애들의 돌팔매에 쫓기어 집안으로 들어온다. 외할머니는 구렁이를 돌려보내고 할머니와 화해를 한다. 할머니는 일주일 후 숨을 거두고 긴 장마가 끝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나’는 어느 날 인간 노예 시장에 가게 되고 거기서 예쁜 젊은 여자 노예를 꼽추 장사꾼으로부터 사게 된다. 노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며칠 후 아내는 화를 내며 집을 나가버린다. ‘나’는 여자 노예와 함께 방탕한 삶을 살다가 결국 노예를 팔아야겠다고 결심하며 집을 나선다. 그때 ‘나’의 모습은 처음에 노예를 샀던 그 꼽추 장사꾼과 비슷하게 변해 있었다.

「타임 레코더」
국어 담당 말석 교사 오석태는 재단 이사장이 교직원들의 근무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밀대 노릇을 하는 김씨와 함께 당직을 선다. 그날 밤 학교에 학생 아이들 둘이 도둑질을 하러 왔다 이들에게 잡히지만 경찰을 부르자는 김씨의 말을 무시하고 오석태는 아이들을 풀어준다. 그러나 잠시 후 또 하나의 도둑이 발견되고 오석태는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의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녀가 경찰만은 부르지 말아달라며 치마를 걷어 올리는 것에 심한 분노를 느끼며 김씨가 이를 이용할 것 같은 기색을 느끼고 경찰에 신고한다.

「제식훈련 변천약사」
‘나’와 이문택 등은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일급 정교사 강습을 받기 위해 제식훈련에 임한다. 그러나 강 교수는 부당에 가까울 정도로 훈련생들에게 심한 훈련을 시키고 이에 반발감을 느낀‘나’와 이문택 등은 낮술을 마시다 수업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이들은 강 교수에게 찾아가 사정을 봐달라고 빌다가 강 교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된다. 강 교수와 이문택은 술자리에서 제식훈련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 다른 사람과 싸움을 벌인다. 여기서 강 교수는 갑작스레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몰매」
시골 초등학교 교사인 김시철은 언제나 주머니에 사표를 넣어 다닌다. 그의 단골 다방은 형편없는 맛의 차와 커피를 내놓는 삼류 다방이고 그곳에 출몰하는 단골들 또한 다들 비슷한 처지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주방장이 오면서 이 다방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고 단골손님들은 주방장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미지의 주방장은 수배범일 것이라는 소문만 떠돌다 수수께끼 속에 자취를 감추고 만다.

「내일의 경이(驚異)」
‘나’는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내던 문명남이란 친구를 우연히 티브이 프로복싱경기에서 보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한 구석이 있었던 문명남은 한 권투 선수를 좇아다니며 그의 경기 때마다 링 근처까지 접근한다. 이길 것 같은 순간 직전에 항상 허점을 보이며 지고 마는 그 권투선수가 펀치 드렁크를 즐기고 있다고 확신하는 문명남은 그 선수를 지켜보는 것만이 삶의 보람이다. ‘나’는 잠시 재회했다가 다시 사라진 문명남을 찾다가 그 선수와 대화를 하게 되고 문명남이 말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 본문 속으로

이젠 주막집 유리창에 번득이던 저녁놀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신 이듬해 봄이 되자 불에 타죽은 줄 알았던 담쟁이덩굴이 한 해 동안의 긴 몸살에서 일어나 나를 놀라게 하였다. 벽돌집 전체가 무성한 잎에 싸여 온통 푸르게 보이던 어느 날, 나는 어머니의l성화에 못 이겨 오래도록 사사건건에 말썽을 부려온 왼쪽 충치를 뽑아버렸고, 그것을 지붕 위에 던졌다. 그 뒤로도 마을 아낙네들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으나 새삼스럽게 경주네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새 이빨을, 까치가 물어다줄 건강한 이빨을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와 아낙네들은 어느새 이웃에 새로 이사온 어떤 새댁의 나쁜 행실에 관해서 열심히들 수군거리고 있었다. ─「황혼의 집」 35쪽

계속해서 비는 내렸다. 어쩌다 한나절씩 빗발을 긋는 것으로 하늘은 잠시 선심을 쓰는 척했고, 그러면서도 찌무룩한 상태는 여전하여 낮게 뜬 그 철회색 구름으로 억누르는 손의 무게를 더한층 잡도리하는 것이었고, 그러다가도 갑자기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는 듯이 악의에 찬 빗줄기를 주룩주룩 흘리곤 했다. 아무 데나 손가락으로 그저 꾹 찌르기만 하면 대꾸라도 하는 양 선명한 물기가 배어나왔다. 토방이 그랬고 방바닥이 그랬고 벽이 그랬다. 세상이 온통 물바다요 수렁 속이었다. 쉬임 없이 붇는 물로 우물은 거의 구정물이나 마찬가지여서 팔팔 끓이지 않고는 한모금도 목을 넘길 수가 없고, 밤새 아궁이 밑바닥엔 물이 흥건히 괴어 불을 지필 적마다 어머니가 울상을 지으며 봇도랑을 푸듯 양재기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세상이 하도 빗소리 천지여서 심지어는 아버지가 뀌는 방귀마저도 그놈의 빗소리로 들릴 지경이라는 객쩍은 농담 끝에 어머니가 딱 한 차례 웃는 걸 본 적이 있다. ─「장마」 100쪽

목차

황혼의 집

장마
어른들을 위한 동화
타임 레코더
제식훈련 변천약사
몰매
내일의 경이(驚異)

신판 해설 발견의 형식, 비판의 형식·정호웅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윤흥길 지음

194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사범과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5년부터 2008년까지 한서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했다. 소설집 『황혼의 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꿈꾸는 자의 나성』 『쌀』 『낙원? 천사?』, 연작소설 『소라단 가는 길』, 장편소설 『완장』 『묵시의 바다』 『에미』 『옛날의 금잔디』 『산에는 눈 들에는 비』 『백치의 달』 『낫』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전 2권) 『문신』(전 5권 중 3권 발간), 산문집 『텁석부리 하나님』 『윤흥길의 전주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한국문학작가상(1977), 한국일보문학상(1983), 현대문학상(1983), 요산문학상(1995), 21세기문학상(2000), 대산문학상(2004), 현대불교문학상(2010) 등을 수상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전자책 정보

발행일 2012년 8월 28일 | 최종 업데이트 2012년 8월 28일

ISBN 978-89-320-1759-4 | 가격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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