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판타지!
■ 지구에 불시착한 미루, 인간을 관찰하다!
『화성에서 온 미루』의 가장 큰 미덕은 독특한 소재와 주제를 뛰어난 입담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화성에서 온 생물체 ‘미루’로 인해 폭로되는 한 가족의 치부, 나아가 일류만을 고집하는 아버지에 의해 이끌어지던 가족 질서의 붕괴 과정은 한국 동화에서는 보기 드문 블랙 코미디적 면모를 보여 준다.
주인공 근대는 전교 일등 하는 형을 둔 6학년 사내아이다.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아빠는 근대를 늘 ‘지지리도 못난 놈’이라고 부른다. 성격 좋은 근대도 때로는 아빠가 형과 자기를 비교하며 ‘형 반만이라도 닮아 보라’고 할 때면 아빠도 밉고 형도 미워진다. 공부만 잘했지,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형을 눈곱만큼도 닮고 싶지가 않은데 말이다. 가족 중에서 그래도 말이 통하는 건 취직 준비를 하는 백수 삼촌이다. 그런 근대에게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사십구 년 만에 부는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던 날 밤, 근대네 집 마당에 있던 감나무가 쩍 하고 갈라졌다. 그리고 근대 방에는 이상한 생물체가 나타났다. 팔이 무지 길고 종처럼 생긴 물체는 자기를 화성에서 온 미루라고 소개하며 아무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근대는 어른들도 있고 형도 있는데 공부도 못하는 자기를 찾아온 미루가 미심쩍었지만 지식보다는 정신과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에 미루를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간다. 자기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아니, 생명체를 만났으니까!
“우린 지식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아. 지식은 욕망으로부터 나오지. 그 욕망을 따르다 보면 파괴를 불로오게 돼. 그건 화성의 아픈 역사가 말해 주고 있어. 미루족은 정신과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해. 정신과 감정에 필요한 지식만 키워 나가지.”_본문 30쪽
온 가족이 미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미루와 근대에게 시련이 닥친다. 미루를 둘러싸고 모두들 딴생각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적이고 엄격한 아빠는 미루가 자기 상관과 결탁해 자신을 직장에서 쫓아내려 한다고 믿으면서 그 음모를 부수기 위해 미루를 감금하고, 미루의 우주선을 찾아 일확천금을 노리는 삼촌은 미루를 빼돌리기에 이른다. 아빠와 삼촌은 결국 자신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비극적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지만, 인간들의 내면과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어 깊은 인상을 심어 준다.
■ 인간의 과욕과 모순을 꼬집는 날카로운 풍자!
근대는 미루가 지구에 온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미루는 지구인이 오랜 옛날부터 화성에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를 알기 위해서 지구에 온 것이다. 단순한 탐험이나 호기심인지, 그 뒤에 교활한 목적을 숨기고 있는지 말이다. 미루는 화성에서 있었던 종족들 간의 아픈 역사를 들려주며 우주의 어떤 생명도 별 볼일 없는 건 없다는 걸 근대에게 힘주어 말한다.
우리에게 아직도 미지의 땅이자 탐험의 대상인 화성을 작가는 새로운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행성으로 탄생시켰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화성 이야기 안에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많은 종족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을 통해 과욕이 불러오는 참상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아빠, 삼촌, 엄마, 형, 근대를 통해 인간의 갖가지 모습을 본 미루는 결국은 근대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지구에 와 보기로 하며 근대와의 아름답고도 위험천만한 만남을 뒤로 한 채 자신의 별 화성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조금씩 어긋나 있던 마음을 되찾고 원래 자신들이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갈 준비를 해 간다.
지구에 불시착한 미루가 인간을 관찰하기 위해 한 일가족의 삶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이 이야기 안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와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최고를 추구하고 일류만을 인정하는 아빠, 아빠의 위엄에 눌려 지내지만 무언가 숨 쉴 만한 돌파구를 찾는 엄마, 늘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지만 디지털 카메라에 여학생들의 옷 갈아입는 모습을 몰래 담은 형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치열한 삶 안에 담겨 있는 인간의 내면을 솔직하고도 발랄하게 보여 준다.
미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들 간의 한바탕 소동 속에 미루가 근대에게 했던 말이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우주 생명은 있는 그대로 놓아 두는 게 가장 가치 있다는 거지. 억지로 만들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모든 생명은 스스로 가치를 찾아가는 힘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