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 초월, 예측 불허, 그리고… 풍기 문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종횡무진 펼쳐지는 아찔한 상상력
예리한 통찰과 힘 있는 서사로 새로운 문학을 예견하는 작가 원종국의 첫 소설집 『용꿈』
1999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와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후, ‘작업’ 동인으로 활동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온 원종국의 첫 소설집 『용꿈』이 12월 8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진주신문 가을문예 당성작인 중편소설 「기둥」과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작인 단편소설 「용꿈」을 포함하여, 스물다섯 습작 시절에 초고가 씌어진 작품에서 올해 서른다섯에 씌어진 작품까지,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써온 작품 중 여덟 편이 이번 소설집에 실리게 되었다.
등단 7년.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원종국이라는 이름이 아직은 조금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 낯선 감정이 호기심으로 이어질 때, 원종국의 작품은 아주 특별하게 그들을 찾아간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호기심들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늘 같은 배경에서 반복되는 비슷한 이야기에 싫증난 독자에게, 노련함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루며 아슬아슬한 상상력으로 시종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용꿈』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
『용꿈』 제목은 고전적인데 표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뽀뽀하는 남녀의 그림은 애교로 치더라도 표지 위로 여자 속옷이 날아다니질 않나, 가만 보면 제목의 모양새도 예사롭지 않다. 또 표지 한쪽을 차지한 본문 발췌 글도 꽤나 직설적인데다, 뒤로 넘겨 뒤표지를 살펴보면 카피에서 시공 초월, 예측 불허도 모자라 아예 대놓고 풍기 문란이란다. 이쯤 되면 가볍게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길 만도 하다. 그런데……
시공 초월, 한다. 예측 불허, 맞다. 풍기 문란, 거짓말 아니다. 그런데 이 소설, 도무지 가볍지가 않다. SF액션섹시코미디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원종국의 소설은 그 발상과 형식의 독특함을 토대로, 깊이 있는 작가적 시선을 통해 바라본 근대의 세계관에 대한 회의와 비판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진수는 이것을 「생명과 기억의 존재론 혹은, 알레고리」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깊이 있는 사유가 원종국의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용꿈』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시간은 생명 조작이 가능해진 미래 사회, 혹은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한 지점 등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공간은 컴퓨터 게임 속 공룡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가상의 세계나 이념이 달라도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한 나라 등으로 그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소설 속 시간과 공간은 미래이자 현재이고 꿈이면서 현실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차원의 것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소설의 공간이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라는” 작가의 믿음처럼,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을 그리기 때문일 것이다.
글[詩]의 숲[林], 그 시작을 보다
어쩌다보니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 짝지어져Mix-and-match’ 한곳에 묶이게 되었지만, 각양각색의 점묘들이 어울려 내 색깔을 이룬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십여 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그들이 없었다면 나의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의 생은 훨씬 더 우울하거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의 변덕을 참아준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고집을 인내해낸 나에게, 감사한다!
_「작가의 말」에서
과연 이번 소설집에 한데 묶인 여덟 편의 소설은 시간과 공간은 물론 그 전개 방식에 있어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믹스언매치된 각양각색의 작품들은 그러나 하나의 화두로 모아져 그만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문학평론가 김진수는 “원종국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일관되고도 핵심적인 모티프 혹은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철학적-존재론적 지평의 근원에 놓여 있는 화두,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체의 자기동일성 혹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시작한다. 이 오래된 화두를 기발한 상상력과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그의 문학적 열정과 또한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역량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작가 원종국에 대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크지 않은 체구 뒤에 숨은 거대한 상상력에 한 번 놀라고, 사람 좋은 웃음 속에 감춘 날카로운 통찰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될 것이다. 이 한 권에서 원종국의 숨겨진 거대한 ‘글의 숲’의 단면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는 과장이 아니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원종국은 한때 원시림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었다. “글의 숲을 이뤄보겠다는 욕심과, 현실의 나로부터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영혼을 구가해보겠다는 모의가 결탁”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원종국이라는 본명으로 작품 활동을 한 지 3년. 지난날 이름에 담았던 그의 바람이 원종국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첫 소설집으로 그 첫발을 내딛었다. 이러한 행보 속에 단순히 이름에 기대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 그리고 결코 바람으로 그치지 않을 그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첫 소설집을 내게 되었다는 기쁨도 크지만, 이제 다른 이야기들을 새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이 더 크다”고 말하는 원종국이 이번 소설집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크게 일구어갈 숲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비인간성과 반생명성의 시대에 꾸는 너무도 인간적인 꿈
「용꿈」은 현대 사회를 그 내부에서부터 규정하고 있는 주체의 자기동일성 상실이 곧 정신의 황폐화/불모성과 반생명화/무생명성으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귀결의 과정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자리하는 셈이다.
_해설 「생명과 기억의 존재론, 혹은 알레고리」에서
표제작 「용꿈」은 이 소설집의 작품 중 가장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작품이다. 문제의 풍기 문란과도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원종국이 이 소설집에서 담아내고 있는 인간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정치-사회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김진수는 해설에서 이 작품에 나타나는 ‘용꿈’을 “비인간적이고도 반생명적인 현대 문명사회 혹은 정보 사회가 상실한 인간적인 것과 생명에 대한 간절한 희구이자 향수를 상징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작품 안에서 년이 스타크래프트 게임 캐릭터 중 용처럼 생긴 저그족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그족은 스스로 알을 품어서 전사를 길러내는 유일한 생명체다. 위악(僞惡)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철없는 10대지만 그들이 진정 꿈꾸고 있는 것은 인간다운 것이다. 반면 ‘용꿈’은 놈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그것은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결국 ‘용꿈’을 통해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알레고리적 기법은 근대적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믹스언매치’ 연작을 통해 드러나는 유전자 조작에 대한 문제는 미래 사회가 아닌 지금 우리 주변에서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이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황우석 사태’가 벌어진 지 1년이 지났고, 최근 영국에서는 배아 상태에서 유전자 검사를 마친 맞춤형 아기가 태어나 생명윤리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유전자 조작과 인간복제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끊임없는 변화와 또 그로 인한 혼란으로 정신없이 또 한해가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해에는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이 연말의 설렘을 부추긴다. 반성 없는 발전은 없는 법. 희망을 만나기 위해서 준비되어야 할 것이 있다. 이를 테면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시선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적인 온기도 잊어선 안 되겠다.
여기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용꿈』이 있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 작품의 줄거리
「믹스언매치」
달리는 키스 캠벨 복제사의 대리점 직원이자 그 회사를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복제인간이다. 달리의 부모는 많은 나이에 어렵게 하나 얻은 귀한 아들이 미국 유학 중에 갱들의 총에 맞아 죽자, 전 재산을 털어 죽은 아들의 유전자로 달리를 태어나게 했다. 그러나 달리는 죽은 형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다. 형은 수학에 천재였던 반면 달리는 수학공식 외우는 것 보다는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이런 달리에 대한 부모의 불만은 점점 커져가고 그것은 죽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형의 복제인간이지만 결코 형이 될 수 없었던 달리가 기댈 곳은 여자친구인 유리뿐이다. 그녀는 죽은 강아지를 은행나무로 복제시켜달라고 대리점을 찾아왔다가 처음 달리와 만났다. 갓난아이 때 버려져 동성연애자의 집에 입양된 유리는 환각 증세를 보이는 유전병으로 인해, 종종 자신이 빠져 지내는 컴퓨터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곤 한다. 선택된 생명과 버려진 생명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룬 소설.
「욕망의 수수께끼,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초창기 키스 캠벨 복제사의 인간복제에 난자를 제공했던 임미란은 그 후유증으로 조기폐경이 되어 아이를 갖지 못했다.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은 이혼으로 이어졌고, 입양한 아이마저 사고로 잃자 임미란은 죄책감에 빠져 정신까지 이상해지기 이른다. 그러던 중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그녀에게 달리가 찾아온다. 자신을 인권위원회에서 나왔다고 속인 달리는 그녀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면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다가 그녀의 지난 세월에 마음 아파한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기 전, 인간복제 반대 시위대 속에서 만났던 자신의 대리모 김박민주씨를 떠올리며, 그 둘의 불행이 마치 자신 때문인 것 같아 괴로워한다.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한 복제인간의 모습과 인간복제 이면에 숨겨진 상처받은 자들이 이야기.
「슬픈 아열대」
유리의 환각 증세가 더욱 심해질 무렵, 유리의 엄마와 이모 사이에 커다란 문제가 생긴다. 유리를 입양해 키워왔던 엄마와 이모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 그런데 유리의 엄마에게 다른 이성의 애인이 생긴 것이다.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이모를 위로해주던 유리는 이모의 품에서 자신이 위로받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온 엄마가 임신을 했다고 털어놓으며 둘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결국 이모가 엄마의 옆구리를 칼로 찌르는 사태가 발생, 엄마, 이모와 함께 병원으로 향한 유리는 그곳 3D비전을 통해 복제인간이 자신의 노부모를 의식불명 상태로 만드는 패륜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접한다. 화면에 보이는 남자가 자신의 남자친구임을 느꼈는지 유리는 화면에 다가가 손을 뻗다가 그만 발작 증세를 일으킨다.
「소멸의 흔적」
인사동에서 우연히 죽은 아내의 모습을 본 ‘나’는 그녀를 쫓다가 결혼 전 이 년 동안 살았던 옛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문을 열고 나오는 지난날 자신의 모습을 본다.
입 구 자 모양으로 된 그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와 개 한 마리가 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그 증상이 점점 심해지던 어느 날,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 구더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 원인을 찾다가 마당 한 구석에서 도둑고양이가 오래전에 죽어 말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흐르는 작가만의 독특한 시간 흐름을 보여주는 소설.
「용꿈」
놈은 아빠가 버리고 떠난 서재에서 1962년도 발행된 완판본 춘향전을 발견한다. 놈이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놈의 아빠는 동생을 데리고 할아버지 집으로 가버렸다. 놈의 엄마는 자신과 놈이 살아남는 길은 놈의 아빠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이라 믿으며 선거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지만, 놈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모아둔 용돈과 춘향전을 들고 가출한 뒤 PC방에서 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년을 만나, 년이 살고 있는 옥탑방에서 밤마다 춘향전의 사랑가 내용을 따라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놈의 아빠는 낙선을 하고, 아빠의 낙선과 스타크래프트 게임 장면이 어우러진 용꿈을 꾸다 늦잠을 잔 놈은 옥탑방에 올라온 년의 엄마와 마주친다. 가방도 버려둔 채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놈은 그날 저녁에 년의 품을 잊지 못하고 다시 옥탑방으로 찾아가지만, 년은 오히려 놈을 도둑 취급하며 경찰에게 넘긴다.
「K 지하상가 사람들」
어느 날 고백수라는 한 남자가 실종된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후, 태풍 귀뚜라미가 몰려오는 바람에 K 지하상가에는 물난리가 난다. 내부에 있는 고가의 물건들이 물에 휩쓸려가는 등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고백수는 자신이 깊은 잠에 들면 홍수가 난다고 얘기하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는 실제로 겪은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다. 고백수가 실종되기 전날 마지막으로 함께 한 사람은 K 지하상가의 경비원들. 그래서 소설은 이 K 지하상가 사람들을 중심으로 고백수의 행방에 대한 탐문 수사의 녹취록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엇갈리는 증언들과 K 지하상가의 두 경비원과 사장의 얽힌 관계, 그리고 노숙자인 줄만 알았던 고백수의 가정사까지 예기치 못하게 밝혀진다.
「연」
정여교를 중심으로 각각 체제가 다른 정전과 여전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출입관리소의 허가를 받으면 어디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정전에서 첫사랑의 여인과 이별을 하고 상처를 잊기 위해 여전으로 이주를 결심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전에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났던 신혼부부의 부인을 다시 만나 지난 얘기를 하며 하룻밤을 보낸 뒤, 이주를 포기하고 다시 정전으로 돌아온다. 눈 내리는 서정적인 밤을 배경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인연을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과 관련지어 놀라운 상상력의 진폭을 보여주는 소설.
「기둥」
명당을 자랑하는 화자의 집은 오래되어 주저앉아가는 중이다. 마을의 유명한 목수들이 그 집의 기둥을 바로 세우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하지만 그들의 기술로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작업이라, 할 수 없이 과거에 그 집의 종이었던 김 영감님의 도움을 받게 된다. 기둥을 똑바로 세운 김 영감님은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집은 태풍으로 인해 그동안의 보람도 없이 주저앉고 만다. 그 다음 해, 집은 의병활동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문화재로 복원된다. 하지만 화자는 대체 사람들이 세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쓴웃음을 짓는다.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의 자본주의적 가치관의 충돌과 대립을 ‘소’를 매개로 하여, 역사와 시대에 대한 작가의 깊은 내면의식을 보여주는 작품.
▨ 작가의 말
한때 원시림(元詩林)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적이 있다. 글[詩]의 숲[林]을 이뤄보겠다는 욕심과, 현실의 나로부터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영혼을 구가해보겠다는 모의가 결탁한 때문이었으리라. 손바닥만 한 종이에 ‘詩林園’이라 적어 내 첫 자취방 문 위에 현판 삼아 달아놓은 적도 있었다. 도무지, 원시림이라니! 다니던 직장을 나와 최저생계비도 보장 못할 은행 잔고로 배수진을 친 뒤에 글 써서 숲을 이뤄보겠다는 꿈을 꾸던 그 시절이, 그러나 행복했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때때로 그리운 것만은 사실이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 중에도 원시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작품이 여섯이고 나머지 두 편만이 본명으로 발표된 작품이다. 그러므로 첫번째 인사는 그 시절의 원시림에게 보내야 하리라.
소설을 묶으며 여덟 편을 헤아려보니 제일 이른 것은 스물다섯에 초고가 씌어졌고, 제일 늦은 것은 서른다섯인 올해 씌어졌다. 어쩌다보니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 짝지어져Mix-and-match’ 한곳에 묶이게 되었지만, 각양각색의 점묘들이 어울려 내 색깔을 이룬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십여 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그들이 없었다면 나의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의 생은 훨씬 더 우울하거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의 변덕을 참아준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고집을 인내해낸 나에게, 감사한다!
그런데 사실, 여기 실린 여덟 편을 돌이켜보면 ‘변방의 늙은이가 키운 말[塞翁之馬]’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여덟 마리 말들이 내게 좌절과 용기, 번민과 기쁨을 모두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묶였다 하여 그들의 행마가 끝난 것도 아닐 것이다. 작가의 본분은 이름을 남기는 게 아니고 작품을 남겨야 하는 것이므로, 모쪼록 나 역시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나는 소설의 공간이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라는 믿음 같은 걸 가지고 있다. 하여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특별한 무기들’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의 가능성을 찾아 색다른 공간을 헤매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미래 사회나 가상공간으로서의 ‘마실’도 잦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한 번은 미래로, 그 다음 번엔 현재나 과거로, 한 번은 가상공간으로, 그 다음 번엔 현실의 공간으로…… 지그재그로 날아다니며 소설을 구상하는 재미가 나쁘지 않았다. 「믹스언매치」 연작이 육 년 만에야 끝난 건,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다른 작품들이 씌어진 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곰곰 생각해보면, 그 공간들은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들이 결코 아니었다. 거기에 인간들이 존재하고 있는 한……
인간의 진화 속도가 과학 기술과 사회의 발전 속도를 끝내 따라잡지 못할 것이므로 인간은 점점 더 나약하고 외로운 존재로 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로 인한 현상을 ‘문화지체’라고 부르기보다는 ‘인간지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소설의 진화 속도가 인간의 욕망 속도를 끝내 따라잡지 못할 것이므로 소설은 점점 더 쓸쓸한 존재로 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로 인한 현상들은 ‘소설지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 있는 한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에 대해 쓸 것이다. 항간에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떠돈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맹랑한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글을 쓰는 선후배 동료들이 많고 많다. 문학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들에게 애초부터 위기가 찾아올 리 없다는 사실 역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흡수했음을 인정한다. 특별히 창작문학회 선배들과 작업 동인 여러분께, 그리고 내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두루두루 감사드린다.
이즈음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글 쓰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주는 부모님과 가족들,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 기쁨을 나눠드린다. 변변찮은 작품을 좋은 책으로 묶어준 문지 식구들께도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첫 소설집을 내게 되었다는 기쁨도 크지만, 이제 다른 이야기들을 새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이 더 크다.
2006년 가을
원종국
믹스언매치
욕망의 수수께끼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슬픈 아열대
소멸의 흔적
용꿈
K 지하상가 사람들
연
기둥
해설_생명과 기억의 존재론, 혹은 알레고리·김진수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