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한무숙문학상 수상작, 초판 10년 만의 전면 개정판 발간!
김원일 장편소설 『아우라지 가는 길』이 초판을 찍은 지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1996년에 발간한 『아우라지로 가는 길』(전 2권; 각 276·297쪽)에서 178쪽을 덜어내 한 권짜리 『아우라지 가는 길』(395쪽)로 재출간한 것이다. 올해는 작가가 1996년 24세의 나이로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지 40년이 되는 해라서 그 의미를 더한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이 개정판 『아우라지 가는 길』은 “초판본 제목에서 한 글자를 뺐듯, 4할가량 가지를 쳐냈으나 줄거리는 손보지 않았다.” 주제 의식과 메시지 등은 고스란히 살려둔 채 군더더기를 ‘아깝다 싶을 만큼’ 과감히 쳐낸 것이다. 사건의 진행이 빨라진 만큼 읽는 재미가 커졌으며,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문장들은 더 오롯해졌다.
장편 『아우라지 가는 길』은 1998년 제3회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등단 이후 줄곧 김원일에 대한 평단의 비평에는 ‘분단 문학’ ‘실존과 역사’ ‘기억의 굴레’ ‘이데올로기’ 등의 수식어가 관용구처럼 따라붙었던 것이 사실인데, 그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1990년대의 세태를 직접적으로 그려내는 등 소재나 기법 면에서 변모된 모습을 보여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일견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조직폭력 세계’와 ‘정선 아우라지’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졌으며, 그 사이사이에 드라마 「모래시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에 대한 묘사가 1990년대의 세태를 눈앞으로 끌어온다.
자폐 청년 마시우의 주먹 세계 체류기
『아우라지 가는 길』은 자폐 청년인 ‘마시우’를 통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는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짧고 힘 있게 끊기며 이어지는 단문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러한 작가의 문체는 자폐아로 버림받아 헤매는 저 밑바닥 삶으로부터 마침내 오염된 모든 것을 일소하는 주인공 시우의 단순하면서도 빛나는 영혼을 여실히 드러낸다. 주인공 시우는 어쩔 수 없이 폭력과 암투, 인권 유린과 퇴폐적 일상으로 범벅된 뒷골목에 거주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정선 아우라지’를 그리며, 생태학자였지만 전교조 활동에 따른 좌절로 짧은 생을 마감했던 아버지의 말씀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여실한 삶의 모습들은, 혼자서는 고향을 찾아갈 수조차 없는 자폐 청년의 머릿속을 감돌아 풀려지면서 씁쓸한 자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이 ‘계몽소설’이라기보다 ‘세태 고발 소설’로 읽히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가 선과 악의 구분이 어려울 만큼 혼란한 세상이 되었으며, 그 오염된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의지조차 상실한 듯 보이는 우리의 양심을 향해 작가의 펜 끝이 겨누어져 있기 때문일 터이다.
■ 작품 속으로
정선 아우라지에서 자란 자폐증 청년 ‘마시우’는 고물장수의 꼬임에 빠져 고향을 떠난 뒤로, 지하의 슬리퍼 공장, 부랑아 수용소, ‘풍류 아저씨’와의 거지 생활, 멍텅구리배에 갇혀서의 노동, 항구에서의 조직폭력 생활 등을 거쳐 구리시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호텔 지하 업소의 폭력 사건이 있던 날 엉겁결에 달아났다가 국밥집을 하는 인희 엄마의 눈에 띄어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중 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에는 장애복지원에 감금되었다가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노경주’를 만나게 된다. 이후 식당으로 돌아갔던 시우는 조폭 생활을 할 때 만났던 ‘짱구 형’과 ‘키요’에 의해 다시 조직폭력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쏠리는 와중에도 시우는 늘 고향 아우라지를 그리며, 전교조 활동 등에 따른 좌절로 짧은 생을 마감했던 아버지가 생전에 들려주셨던 말씀들을 되뇌며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 일하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경주씨에게도 이런저런 도움을 받는다.
나는 경주씨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경주씨 말은 뜻도 모른 채 내 머릿속에 남을 것이다. 아버지 말도 그랬다. 식물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는 어려운 말을 많이 썼다. “안 듣는 체해도 시우 쟨 이 말을 죄 기억하게 될 겁니다. 짐승과 심지어 식물까지 사람 말을 알아듣는데 하물며…… 시우는 다만 자신의 의사 표시를 제대로 못할 뿐이죠.” 정말 아버지는 내게 많은 말을 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도 했다. 그 말들은 그 뒤 간단없이 떠올랐다. 누가 새를 말하면, 아버지가 말한 새가 떠올랐다. 꽃을 보면, 그 꽃을 두고 말한 아버지가 떠올랐다. 할머니도, 엄마도, 시애의 말도 그랬다. 내가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 말이 그랬다. 특히 아우라지에 살았던 적이 자주 떠올랐다. 머릿속은 늘 그 시절로 꽉 차 있다. 그 많은 말을 내 입으로 말하라면, 나는 말할 수 없다. 머릿속에만 있을 뿐, 말로 옮길 수가 없다. (148쪽)
조직 내에서 ‘마두’로 불리는 시우는, 그러나 고향 아우라지로 돌아갈 수 없다. ‘동생공사(同生共死)’를 외치며 조직의 단합을 꾀하는 ‘쌍침 형님’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조직에게는 늘 ‘쥐떼’라 불리는 강변파가 눈엣가시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들 쥐떼에게 당한 기억 때문에 쌍침은 늘 보복의 기회를 노리고, 마침내 쥐떼를 치던 날 시우는 전처럼 엉겁결에 달아나다가 그들에게 걸려 폭행을 당한 뒤 차 트렁크에 갇히고 만다. 그렇게 중상을 당한 채로 빗물을 마셔가며 연명하는 동안에도 시우는 고향 아우라지를 떠올린다.
후드득. 떨어져 부딪치는 물방울 소리가 들린다. 마치 오동나무에 떨어지는 소낙비 소리 같다. 아우라지 집 뒤란에 벽오동나무에 후박나무가 있었다. 후박나무와 오동나무는 잎이 크고 넓다. 그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북소리 같았다. 여름이면 그 그늘이 좋았다. 오동나무 아래 평상을 내놓았다. 시애와 나는 평상에서 놀았다. 시애는 소꿉놀이를 좋아했다. 자기는 엄마, 나는 아버지라 불렀다. 비가 오는 날, 나는 평상에 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두꺼비가 울었다. 두꺼비가 두려웠다. 나는 부엌 뒷문에 숨어서 두꺼비를 보았다. 두꺼비가 오동나무 밑에 버티고 있었다. 그놈은 작지만 험상궂게 생겼다. 두꺼비는 독을 뿜는다고 했다. “두꺼비와 싸워 이기는 짐승은 없어. 어느 짐승도 두꺼비를 잡아먹지 못해.” 할머니가 말했다.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는다던데요.” 시애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새끼 밴 두꺼비 암놈은 스스로 뱀에게 잡아먹히지. 날 잡아잡슈 하며, 뱀에게 대든단다. 그럼 뱀이 두꺼비를 낼름 먹어치우지. 그러면 뱀은 어미 두꺼비가 품은 독으로 죽게 돼. 그러면 두꺼비 배 속에 있던 새끼들이 뱀 뱃속에서 내장을 파먹으며 자란단다. 죽은 뱀 몸에서 통통하게 살찐 새끼들이 살아 나와.” 할머니 이야기는 무서웠다. 쌍침 형님은 두꺼비를 닮았다. (229~30쪽)
칠 일 만에 경주씨에게 발견되어 살아난 시우는 병원을 거쳐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조직이 잠시의 안정기에 접어든 틈을 타, 그리고 때마침 찾아온 추석을 맞아 꿈에도 그리던 고향 아우라지에 다녀올 기회를 얻는다. 치매 증세를 보이는 할머니와 네 것 내 것 없이 살아가고 있는 고향 사람들은 자신의 일처럼 시우를 반기지만, 지하업소에서 생활하다 시우를 따라나섰던 예리는 에이즈에 걸린 자신의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아우라지 강에 투신자살을 하고 만다. 경찰의 조사가 끝나자마자 급한 호출로 시우와 짱구는 다시 조직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원래 강변파에 있다가 조직으로 들어오게 된 ‘도수’와의 알력다툼 때문에 ‘쌍침’ 쪽은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으로 혈안이 된 나날을 맞는다. 그러나 마침내 도수 쪽을 치기로 작정한 바로 전날 밤, 도수 쪽의 선제공격으로 쌍침은 죽고 조직은 와해되고 만다.
그 사이 본격적으로 장애자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계획하고 있던 경주씨는 이기적인 도시를 떠나 장애자들을 보살필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되고, 한동안 숨어 지내던 짱구와 함께 시우의 고향 아우라지를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녀의 진심어린 설득에 마을 사람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꿇어앉은 경주씨가 말이 없다. 방 안에 침묵이 감돈다. 한참 뒤, 경주씨가 말을 시작한다.
“너무 아름다운 고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로 들어와 맑고 깨끗한 이 자연을 오염되지 않게 보전하고 싶어요. 사실 장애인들은 의외로 마음이 자연만큼 맑고 깨끗합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욕심이 없으므로 천사나 부처를 닮았습니다. 시우씨한테서도 저는 그런 점을 보았습니다. 남을 미워할 줄도, 속일 줄도, 심지어 돈의 가치조차 모릅니다. 시우씨가 자연인인만큼, 그 장애인들도 자연인들입니다. 이 좋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보호하며 그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게 제 소원입니다. 저 역시 도시를 떠나 농촌에 살고 싶구요. 어릴 적부터 고향이 산골이었으면 하고 바랐거든요.”
경주씨가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친다. 그제야 나도 뭔가 한마디해야겠다고 큰 숨을 내쉰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말이 잘될 것 같지가 않다. 말이 터진다.
“겨, 경주씨 말 맞아요. 나 자, 장애아 선생 할래요. 함께 살아요.”
방 안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본다. 놀란 표정이다. 어느 사이 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폐차 트렁크에 갇힌 나를 경주씨가 구해주었다.
“제가 여기로 오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있죠. 바로 시우씨가 여기에 산다는 겁니다.” 경주씨가 말한다. 눈물 흐르는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경주씨 말에 방 안 사람이 더욱 놀라워한다. (389~90쪽)
■ 뒤표지 ‘발문’
김원일의 소설은 언제나 정성스레 먹을 갈아 붓으로 한자 한자 써내려가는 그런 소설들이다. 그래서 중심을 끌고 가는 획에는 일관된 힘이 있고 획과 획을 잇는 붓흘림에는 부드러운 멋이 넘친다. 『아우라지 가는 길』은 그런 김원일 소설의 특성이 특히 짧고 힘있게 끊기며 이어지는 단문의 문체를 통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 문체는 자폐아로 버림받아 헤매는 저 밑바닥 삶으로부터 마침내 오염된 모든 것을 함께 이끌며 드높이 상승하는 주인공 시우의 단순하면서도 빛나는 영혼 그 자체다. __이인성(소설가)
『아우라지 가는 길』의 주인공 시우에게 고향 아우라지에 대한 추억은 진통제와도 같다. 햇살 하나 들지 않는 지하 공장에서 굶주리며 일을 할 때, 혹은 멍텅구리배에 갇혀 하루종일 뱃멀미에 시달리거나, 조직 폭력배의 새끼로 폭력의 현장에 있을 때에도 그는 끊임없이 아우라지의 기억을 되새김질한다. 시종일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삶을 강요받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그의 순수한 영혼은 모든 이의 가슴속으로 깊이 파고들 것이다. __신경숙(소설가)
■ 작가의 말
개정판 발간에 부쳐
초판이 나온 지 꼭 10년 만에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 착하고 순진한 자폐 청년 ‘마시우’를 통해 오늘의 장애인 문제와 순수한 자연을 연결시켜보았다. 주인공이 고향을 떠나 겪어야 했던 고단한 삶은 오늘날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조직폭력 세계의 하수인이었던 주인공을 그가 자란 자연의 세계로 되돌려놓는 것은, 그의 고향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야말로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가 떠나온 원초적인 고향이기 때문이다.
초판본 제목에서 한 글자를 뺐듯, 4할가량 가지를 쳐냈으나 줄거리는 손보지 않았다.
2006년 가을, 김원일
1. 그늘 속의 사람들
2. 사랑은, 나누는 기쁨
3. 강을 따라 오르면
4. 지하조직 식구들
5. 휘발유와 폐유
6. 칼을 갈다
7. 살아남기
8. 강은 산을 껴안고
9. 죽은 자와 산 자
10. 아우라지의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