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의 작가, 나사니엘 호손의 또 다른 역작
1852년 출간 이후 국내 최초 번역된 『블라이드데일 로맨스』!
19세기의 대표적 미국 소설 『주홍 글자』를 쓴 나사니엘 호손은 국내에서도 그의 명성과 작품의 의의가 널리 알려져 있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 호손은 1804년 출생하여 1864년 작고할 때까지 『일곱 박공의 집The House of Seven Gables』 『블라이드데일 로맨스The Blithedale Romance』 『대리석 목신The Marble Faun』 등의 장편 소설과 여러 단편 소설을 썼으며, 이들 작품은 모두 『주홍 글자』 못지않은 역량을 담은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주홍 글자』는 70여 종이 번역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들은 그 중요성에 비하여 소개가 되지 못하여왔다.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는 일찍이 서술자의 문제에 남달리 관심을 표명한 호손이 이전에 즐겨 사용했던 삼인칭 전지적 시점으로부터 탈피하여 일인칭 서술자를 과감히 등장시켜 기교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 작품이다. 위에 언급된 호손의 주요 소설 네 편 중 유일하게 일인칭으로 서술된 이 작품은 호손의 기교가로서의 일면을 확실하게 조명해줌으로써 호손의 작품 세계에서도 그의 형식 미학을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못한 전 세계의 중요한 문학 작품들을 선정, 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이번 나사니엘 호손 작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의 발간은 국내 ‘세계 문학’의 지평을 한층 넓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사회주의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모인 한 무리의 남녀들이 엮어내는
‘수수께끼 같고 모호하고 다층적이고 교묘한 로맨스!’
나사니엘 호손은 『주홍 글자』에서 청교도의 숨 막히는 엄격함을 묘사하며 그 치부를 드러내보였다. 그리고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에서는 청교도적 박애주의자와 초절주의(超絶主義, transcendentalism, 19세기에 미국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이상주의적 관념론에 의한 사상개혁운동의 입장)를 표방하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는 실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썼다고 ‘저자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그러나 어디까지나 허구라고 강조한다-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 ‘커버데일’을 통해 철저히 객관적으로 그리고 모든 사실에 대해서 애매하고 모호한 입장으로 일관하며 수수께끼를 던지듯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처음에 ‘블라이드데일’은 참여한 사람들에게 원대한 꿈을 이루어줄 이상향으로 보이지만 점차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 꿈은 좌절되고 만다. 블라이드데일과 같은 실험 공동체에 대해서 커버데일은 “백일몽이지만 엄연한 하나의 사실”이라고 결론짓는다.
이 소설은 철저히 관찰자의 시점에서 서술되며 그가 듣고 본 것만이 드러나, 사실 외의 추측 가능한 사실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스스로 상상해가도록 한다. 이로써 마지막 한 문장이 결국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의 역할을 하는 소설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는 호손의 형식 미학이 완벽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라이드데일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은 호손이 아니라 커버데일의 마음에서 반사되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호손이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에서 작업하는 형식은 호손의 전지적 관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커버데일의 극히 제한적인 관점에 의존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서술자로서의 커버데일은 사실상 이 책의 ‘의미와 형식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서술자로서의 성격에 대한 이해는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의 이해를 위한 관건이자 그 형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능하게 해준다.〔……〕이 소설은 호손이 소설 형식 미학의 대가인 헨리 제임스 못지않게 이미 서술의 주체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갖고 고뇌한 흔적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문학적 의의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서술자와 작가의 관계, 거기에서 파생되는 진술의 모호성과 서술자의 신뢰성 문제 등에 주목하는 이 소설은 호손의 기교가로서의 일면을 새롭고 확실하게 조명해줄 것이다. ─「옮긴이 해설」 중에서
■ 줄거리
19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부근, 일군의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사회주의 공동체를 만들고 ‘블라이드데일’이라고 이름 짓는다. 행복의 골짜기라는 뜻처럼, 처음 이 공동체 생활은 밝고도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고무적으로 펼쳐진다. 고지식하며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박애주의자 홀링스워스, 아름답고 지적이고 정열적인 페미니스트 제노비아, 신비로운 베일에 가려진 듯 모호한 성격의 소녀 프리실라, 그리고 공동체를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관찰하는 시인 커버데일이 있다.
이들 네 명 모두는 블라이드데일 공동체에 참여한 근본적인 이유가 사회주의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은 이들의 모임이 출발에서부터 비극적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블라이드데일 공동체가 출범한지 얼마 안 되어 커버데일은 심한 열병을 앓고 이때 홀링스워스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면서 그와 진한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시간이 감에 따라 제노비아와 홀링스워스 또한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고 프리실라와 홀링스워스도 가까운 사이로 발전한다. 이때 블라이드데일의 언저리에 종종 출몰하던 늙고 추한 무디 영감과 프리실라, 제노비아와의 관계도 드러난다.
그러나 점차로 커버데일은 홀링스워스가 프리실라와 제노비아 둘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않는다는 점, 본인의 이상만을 위해서 남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그에게 실망하고 그의 사업에 동참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와 깨끗이 결별하고 블라이드데일을 떠난다.
홀링스워스는 그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블라이드데일 외의 공동체를 꿈꾸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제노비아의 재산을 필요로 한다는 혐의를 받는다. 그리고 이런 혐의와 별개로 홀링스워스는 프리실라를 택한다. 자존심 강한 제노비아는 충격 속에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블라이드데일 공동체는 그것으로 막을 내린다.
■ 본문 속으로
‘블라이드데일’이라는 이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인디언들은 그들의 거주 지역에 기름지고 꿀이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명칭을 자주 붙이고 만족스러워했는데, 만약 그 지역에도 그런 이름이 있었다면 우린 그 이름을 그대로 다시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의 인디언 이름은 거칠고 잘 연결도 안 되는 데다가 너무 길어서 소리 내 부르려면 입 안 가득히 딱딱하게 굳은 진흙과 부서지기 쉬운 조약돌을 동시에 채워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용기를 내, ‘유토피아’라는 말을 작은 목소리로 제안해보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반대를 했고, 제안자인 나는 마치 빈정거릴 의도라도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것처럼 심하게 매도당했다. 일부는 우리 공동체를 정신적으로 황무지 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점의 푸른 초목지라는 의미로 ‘오아시스’라고 부르자는 안에 찬성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열두 달이 지난 후에 그 이름을 재고한다는 단서를 달아야 한다고 우겼다. 그것이 ‘오아시스’건 ‘사하라’건 간에 그때쯤에는 어떻게든 결정이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더 좋은 어떤 명칭을 만들어내는 일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블라이드데일’이라는 명칭이 충분히 좋으니 계속 그렇게 부르기로 합의했다.(pp.50~51)
“홀링스워스 선생, 선생이 생각해낸 계획 이외에 다른 계획들도 있다는 생각은 맹세코 해보지 않았나요?” 나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화를 낸 것이 기뻤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그의 가혹하리만치 똘똘 뭉친 완고한 태도와 불굴의 의지에 저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계획들 아래 우리는 세상을 개선하기 원하고 세상의 이익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선생은 친구를 버릴 작정인가요? 그가 친구로서의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선생의 관점이 아니라 그 자신의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나의 계획에 찬성하시오. 아니면 반대를 하든지! 당신에게 제3의 선택은 없소.”
“그렇다면 이것을 제 결론으로 받아들이시죠. 선생의 계획은 현명한 처사가 아닙니다. 더구나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시려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편견 없는 양심의 소리에 대해 떳떳한 것 같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에게 협력하겠소?”
“아뇨!”
난 그 이후 이때의 ‘아뇨’라는 말 한마디를 하는 데 들였던 노력의 천분의 일 만큼이라도 들여 그 단어를 다시 입 밖에 내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다.(pp.170~71)
“그분을 험담하지 마세요! 감히 홀링스워스 같은 분을 평가하려 들지 말아요! 이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지 그분의 잘못이 아니에요. 이젠 그 사실을 알겠어요! 그분은 저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잖아요? 내가 그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어요? 그분을 만나기 오래전부터 망가진 비참하고 멍들고 두들겨 맞은 마음뿐이죠! 그리고 악인과 절망적으로 얽혀버린 인생이죠! 그분이 나를 버린 것은 잘한 일이에요. 무척 고맙게도 그분은 잘 해냈어요! 그렇지만 그분이 나를 신뢰하고 조금만 견뎌주었더라면 이 모든 어려움에서 그분을 구해낼 수 있었을 텐데.(……)”어디든 아무 상관없어요. 이곳이 진저리나요. 박애주의자와 진보를 갖고 노는 것에 죽도록 신물이 나요. 숱한 거짓 인생들 사이에서 하나의 진실한 체제를 세우려고 노력했는데 이렇게 헛수고가 되어버렸네요. 나는 손을 떼겠어요. 그러면 블라이드데일에서는 세탁을 관리할 다른 여자를 찾아야 하겠네요. 커버데일 씨도 다음에 아플 때는 죽을 끓여줄 다른 간병인을 찾아야 할 거구요. 정말 바보 같은 꿈이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유쾌한 여름날을 안겨주었고, 그 동안만이라도 밝은 희망을 주었죠. 그 꿈은 더 이상 아무 도움도 안 돼요. 헛된 꿈이 깨졌다고 눈물 흘리는 것도 이제는 다 부질없어요. 우리 악수해요. 그럼, 안녕!”(pp.277~80)
저자 서문
제1장 무디 노인
제2장 블라이드데일
제3장 몽상가들
제4장 만찬
제5장 잠자리에 들기 전
제6장 열병을 앓는 커버데일
제7장 회복기
제8장 현대식 아르카디아
제9장 홀링스워스, 제노비아, 프리실라
제10장 도시에서 온 손님
제11장 숲길
제12장 커버데일의 비밀 장소
제13장 제노비아가 들려준 이야기
제14장 엘리엇의 연단
제15장 위기
제16장 작별 인사
제17장 호텔
제18장 하숙집
제19장 제노비아의 응접실
제20장 그들이 떠난 자리
제21장 무디 노인의 고백
제22장 펀틀로이
제23장 마을 회관
제24장 가장무도회
제25장 다시 모인 세 사람
제26장 제노비아와 커버데일
제27장 깊은 밤
제28장 블라이드데일의 초원
제29장 마일스 커버데일의 고백
옮긴이 해설
작가 연보
기획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