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전설

대산세계문학총서 049

요르단 욥코프 지음 | 신윤곤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6년 9월 1일 | ISBN 9788932017235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96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국내에 최초로 번역 소개되는 불가리아 문학의 정수
불가리아인의 성서, 『발칸의 전설』

이반 바조프, 옐린 펠린과 더불어 불가리아 산문 문학의 3대 산맥으로 추앙받고 있는 요르단 욥코프의 대표작 『발칸의 전설』(1927년작)에는 이념과 관습,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사랑을 노래하는 총 열 개의 짧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모두 사라진 과거의 진솔한 아름다움을 몽상적인 필치로 그린 단편들로, 불가리아 문학에 전 인류적인 파토스를 주입하여 불가리아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계기를 마련한 작품들이다. 즉, 500여 년에 걸쳐 터키의 지배 아래 신음하던 불가리아를 배경으로, 불가리아의 백두대간이라 불리는 ‘스타라 플라니나(발칸)’에 흩어져 있던 전설과 민담을 채록하고 다시 작가의 상상력을 입혀 재탄생시킨 열 편의 ‘사랑 서사시’이다.

일반적으로 불가리아 하면 떠오르는 것은,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의 대성당이나 늘 정치적·이념적·민족적 분쟁의 전장으로 발칸의 화약고라는 식의 언론 보도 정도일 것이다. 그 정도로 불가리아의 문학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1990년 중앙일보사에서 발간한 『소련 동구권 현대문학전집』에 이반일로 페트로프의 『논카의 사랑』과 카멘 칼체프의 『미래를 향한 두 사람』이 실렸었으나, 불가리아 문학의 암흑기로 구분되는 50년대에 씌어진 이들 작품이 불가리아 문학의 대표 작품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들 작품은 당시의 다른 많은 문학 작품들의 관행처럼, 일어본을 우리말로 옮긴 중역본이었다. 1995년에 불가리아 문단의 원로 요르단 라디치코프의 『우리, 참새들』이 번역 출판되었으나, 이 작품 역시 아동을 위한 동화로 씌어진 것으로 불가리아 문학의 정수를 선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이번에 출간된 요르단 욥코프의 『발칸의 전설』은 제대로 된 불가리아 문학을 맛보는 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는 욥코프의 작가적 명성이 큰 몫을 차지한다. 욥코프는 불가리아 국가가 형성된 이후 근 1300여년 동안 ‘불가리아인에 영향을 준 100대 위인’에 뽑힐 만큼 불가리아인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가이고, 그만큼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 불가리아 출신 작가 중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에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낭만주의적 작품 경향에도 불구하고 불가리아가 사회주의 체재 하에 놓여 있던 시절에도 욥코프에 대한 불가리아인의 지지와 사랑은 한결같았고, 최근에는 대규모 욥코프 축제가 열릴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 대한 조명은 더욱 활발해져가고 있다.

『발칸의 전설』은 발칸의 광활하고 풍요로운 대자연과 민족 영웅과 범부 등의 등장인물을 그리면서 15~19세기 불가리아의 역사와 문화, 풍습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나’와 ‘또 다른 나,’ 처음과 끝, 남성과 여성, 빛과 어둠,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 인간과 역사,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만나 어우러지는 상생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또한 열 개의 작품이 한데 묶여 동일한 문체·동일한 파토스를 추구하는 이른바 ‘사이클 문학’으로서의 첫 선을 보이면서 불가리아 문학의 한 전범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전 산문에서 단순히 ‘억압받는 민족의 투쟁-불가리아적인 것’에 머물던 불가리아 문학을 ‘시공을 넘나드는 영원불변의 사랑과 가치-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것’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불가리아 언어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는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불가리아 문학사에서는 드물게 발간 즉시 “가슴으로 부른 열 편의 사랑 서사시”(츠베탄 민코프), “불가리아어의 남성적 강렬함과 여성적 섬세함 모두를 증명한 작품”(스토얀 포프바실레프), “불가리아 산문의 최고봉”(G. K) 등 평단으로부터 한목소리의 찬사를 들었다. 한편, 오스트리아 대학에서 선정한 ‘대학생들이 읽어야 할 20세기 문학작품 100선’에 들기도 했고, 이미 전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발칸의 전설』은 작품 제목 자체가 작품의 성격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기억과 예시가 전설 속에 각인될 때, 전설은 이미 살아 있는 유기체로 인간에게 독특한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다양한 세대를 하나의 총체로 묶고, 그들의 공통된 영혼을 지탱하는 언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집을 통해 욥코프는 500년 역사에 걸친, 이민족 터키의 압제마저도 채근하지 못했던 ‘불가리아인의 본질’을 일깨우고자 했다. 여기에서 비롯된, 발칸의 숲과 평원, 붉은 장미와 푸른 산봉우리, 계곡 속에 스민 불가리아인의 이야기는 시공을 넘나드는 불변의 가치, ‘사랑’으로 불타오르며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고 있다.

■ 본문 줄거리

1. 「시빌」

터키의 관헌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악명 높은 산적 두목 ‘시빌(무스타파)’은 어느 날, 그의 산채가 터를 잡고 있는 ‘푸른 바위’ 봉우리 가까이 올라온 겁 없는 여인들 일행을 발견한다. 그중에 당당히 산적들 앞에 나서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라다’. 터키 식민 치하에서 유지 노릇을 하고 있는 초르바지야 ‘벨리코 케하야’의 귀한 딸이다. 시빌은 그녀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태에 온 마음을 사로잡히고, 라다 역시 시빌에게 강한 호감을 표한다. 순식간에 마을 전역에는 사랑에 빠진 시빌이 라다와의 결혼을 위해 터키군에게 항복한다는 소문이 돌고 이에 시빌의 부하들은 그의 휘하를 떠나 뿔뿔이 흩어진다. 어머니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을로 내려가는 시빌을 중무장한 채 마을 대로 여기저기에 잠복해 있는 터키 관헌과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2. 「암사슴」

초노 영감의 아들 스테판은 젊은 혈기와 거친 성격의 사냥꾼이다. 방앗간 집 딸 도이나를 좋아하는 그의 앞에 어느 날 암사슴 한 마리가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 모두의 비난과 우려 속에 스테판은 암사슴을 잡는 데 혈안이 된다. 그러나 결국 스테판과의 사랑을 원하는 도이나 덕분에 암사슴은 무사해지고 잠시 제구실을 못하던 방앗간 역시 평소대로 평온을 되찾는다.

3. 「가장 믿음직한 경호원」

일명 ‘딱따기 수도원’이라 불리우는 ‘스베타 트로이차(성 삼위일체) 수도원’에는 원장 암필로히 신부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는 ‘드라고타’가 있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독실한 신앙심과 근면, 성실함으로 똘똘 뭉쳐 고행 수행도 마다 하지 않는 고결한 인물이나 그의 본심은 다르다. 수 개월 전 타고난 미모로 인해 타타르인 술탄 하지 예민의 첩으로 시집 간 딤초 케하야의 여식 마르가를 어떻게든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한 음흉한 속셈이 있었던 것. 하여 마음에 두고서도 바보처럼 그녀를 늙은 하지 예민에게 빼앗긴 코산 녀석과는 달리, 일단 루칸 신부의 독경 사제로 들어가 신임을 얻고 후일을 도모하려는 게 드라고타의 본심이다.

4. 「보주라」

집시 여인 칼루다의 딸 보주라는 물건을 팔러 유지인 하지 벌코의 집을 드나들면서 그의 딸인 또래 가나일라에게 애정도 미움도 아닌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도전적인 보주라는 어느 날, 마을을 떠도는 소문으로 가나일라에게 정혼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바실초라는 술주정뱅이라는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막에서 우연히 만난 바실초를 만난 보주라는 겉으론 퉁명스럽게 대하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다. 두 번째로 숲의 연못가에서 우연히 만난 바실초와 보주라는 운명적인 관계로 진전하게 된다.

5. 「젊은이들의 머리」

1876년 터키 지배하 민심이 흉흉하고 불가리아 젊은이들의 동요 수상치 않던 시절, 루시 영감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집앞 포플러 아래 벤치에 앉아 마을의 동정을 살피고 있다. 그는 요새 들어 부쩍 아들 밀루시의 가게를 드나드는 청년들이 마음에 걸린다. 아니나다를까 터키의 폭압에 들고 일어선 불가리아의 청년들, 그들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듯 5월의 발칸에 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6. 「포스톨의 두 방앗간」

포스톨에는 언덕 위아래로 똑같은 방앗간이 둘 있다. 하나는 심술 사나운 버르반의 방앗간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고 다만 그의 젊은 아내 젠다의 부산한 움직임만 있을 따름이다. 대신 이반 영감과 현명한 아나 할멈 부부가 운영하는 방앗간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 두 방앗간 사이를 지나는 청년 마린은 염소를 돌보는 게 중요한 일이다. 어느 날 버르반의 방앗간 옆의 밀자루 위에 염소 한 마리가 나타나고 이를 쫓으려던 버르반은 맷돌에 크게 다치고 만다. 염소 탓을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린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염소를 죽이려 하는데 갑자기 등장한 젠다가 그를 말리고 유혹의 손길을 건넨다. 이를 알게된 아나 할멈은 마린에게 진심으로 충고하지만 이미 젠다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7. 「인제」

북녘의 발칸을 호령하는 비적떼의 우두머리 인제의 포악함과 잔인함은 그 악명이 대단했다. 그런 그에게 가슴 한켠 아픈 상처가 있었으니 16년 전, 제루나 근처에서 만났던 여인 파우나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남자보다도 더한 용기와 여유로운 미소에 첫눈에 반한 인제는 파우나를 아내로 맞는다. 당시 젊었던 인제는, 삶에 인색하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선과 악을 구별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의 말발굽 뒤에는 오직 주검과 폐허만이 남았으며, 그의 이름은 공포와 전율, 그 자체였다. 마치 불길함을 예견이라도 하듯 갈까마귀떼가 시끄럽게 울던 어느 날, 파우나가 조금 꾸물댄다며 분노하던 인제는 비적 따위에게 자식은 필요없다며 강보에 싸인 자신의 아이를 내던지고 야타간 검으로 내리치고 만다. 그후 15년이 넘도록 피비린내 나는 악몽 속에서 파우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이의 뇌리에서 인제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인제의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8. 「양치기의 비애」

발칸의 푸른 뾰족 봉우리와 울창한 라즈보이나 숲에는 양치기 스테판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어머니의 반대로 사랑하는 옐레나와 결혼하지 못하고 더군다나 그 옐레나가 자신의 의형제인 사람과 결혼한 것을 알고 큰 실의에 빠졌다. 스테판은 이후 집에 돌아가지도 않고 밖을 떠돌며 양치기 일에만 몰입했다. 그제야 잘못을 깨달은 스테판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애원하지만 스테판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억센 하이두틴(터키 압제 아래 불라리아 인들을 돌봐주던 이)들마저 스테판과 그의 어머니의 관계를 회복시켜보려 하지만

9. 「흑사병이 돌 적에」

마을에 흑사병이 돌고 기근에 닥쳐올것이란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은 유지 하지 드라간을 찾아가 의논한다. 그러나 이 흉흉한 소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하지 드라간은 외동딸 티하의 결혼 잔치를 준비한다. 마을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티하의 결혼 잔치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드디어 잔칫날, 마을에 흑사병을 안은 사내가 나타난다. 그는 다름 아닌 키하가 3년 넘도록 목을 매고 기다려온 벨리츠코였다.

10. 「달맞이꽃 고원에서」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크라이날리야는 한때 하이두틴으로 명성을 날렸었다. 그에게는 귀엽지만 한편 귀찮게 구는 조카 스토얀이 있다. 하이두틴 시절 자신이 사용했던 칼과 장총 등을 스토얀이 호시탐탐 탐을 내었기 때문이다. 내심 주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그 옛날 혈기왕성했던 자신의 하이두틴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제루나의 부호 보질 케하야의 딸 쿠르타와의 가슴 아픈 사랑을 되새기게 했으며, 이어지는 하이두틴 내부의 분열과 죽음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결국 크라이날리야(디미터르)는 달맞이꽃 동산의 너도밤나무 아래를 찾아 집을 나선다.

작가 소개

요르단 욥코프 지음

Yordan Yovkov(1880~1937)
불가리아 산문 문학의 3대 고전 작가로 손꼽히는 요르단 욥코프는 불가리아 산골 마을 제라브나에서 태어났다. 소파아에서 김나지움과 예비사관학교를 졸업(1900, 1902)한 후,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소피아 대학교에 입학(1904)하였으나 부친의 사망으로 중도 포기, 1912년까지 교편 생활을 하였다.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에 장교로 참전하였으며, 루마니아 주재 불가리아 대사관(1920~1927)과 외무성의 직원(1927~1937)으로 일했다. 1937년 10월 15일 병사하였다.
1910년대 말 「동향인Zemlyatsi」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발표, “불가리아 전쟁 단편문학의 창시자”라는 평을 받았으며, 1920년대 “불가리아의 성서”라는 『발칸의 전설Staoplaninski legendi』을 출간, “살아 있는 고전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1930년대에는 『그들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Ako mozhexa da govoryat』과 같은 장편과 더불어 불가리아 희곡의 지평을 넓힌 희곡 「알베나Albena」 「보랴나Boryana」 등을 발표하였다.
요르단 욥코프는 “슬픔에 잠긴 현인”의 시각에서 주인공들의 극적인 정신적 반전과 그 비극적 장엄함, 그 속에 숨겨진 사랑과 선(善), 그리고 아름다움을 드러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불가리아인’을 지배적인 화두로 삼았던 기존의 불가리아 문단에서 그는 최초로 ‘나’와 ‘너’를 하나로 하는 ‘우리 인간’에 천착한 작품을 발표, 불가리아 산문 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가이다.

신윤곤 옮김

신윤곤은 1961년 전주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했다. 불가리아 소피아 대학교(Sofia University St. Kliment Ohridsky)에서 불가리아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논문 「요르단 욥코프의 『발칸의 전설』 연구: 텍스트 및 구조 읽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욥코프 공간의 상징성」 「보고밀교와 불가리아 문학」 「G. 라이체프식 <이중인격> 모티프의 형상화-정체불명의 사나이」 등이, 역서로 M. 고리키의 『고백』과 『이탈리아 이야기』, N. 체르니셰프스키의 『현실에 대한 예술의 미학적 관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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