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적 시각에서 정리해본 독일 정신사 250년”
“고통스러운 관조로부터 사고의 자유스러운 광야로” _G.E.레싱
■ 이 책의 기획 의도
문학평론가 김주연(66·숙명여대 독문과 교수)은 1966년 「카프카 시론」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비평 활동을 전개한 이래,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4?9세대 비평 그룹의 핵심 일원으로 쉼없는 활동을 보여왔다. 인문주의자의 차가운 지성, 예리하고 치밀한 언어, 그리고 단호한 발언으로 한국 문학의 현장을 이끌고 문학비평가로서 일가를 이룬 그가 이번에 18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독일 정신사, 나아가 인류 정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사상가와 문예이론가 12명을 꼼꼼하게 탐문하고 비평·정리한 연구 논문집 『독일 비평사』(문학과지성사, 2006)를 출간했다. 이 책은 그가 2006년 8월말로 30년 넘게 재직해온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직의 정년 퇴임을 기념함과 동시에, 또 하나의 오랜 직분이었던 독일 문학 연구가로서 할애했던 시간의 집적물로 기획되었다. 이로써 4?9 정신의 설렘을 직접 수혜하고 감각적으로 체득한 세대이자, 무엇보다도 『문학과지성(‘문지’)』의 창간을 이끌었던 주역(김현,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가운데 일인인 김주연은, 올 초 이화여대 불문과 김치수 교수에 이어 두번째로 대학 사회에서 정년 퇴임을 맞는 주인공이 됐다.
그동안 ‘관념적 이상주의’로 평가되는 독일 정신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과 연구는 꽤 오래전부터 비교적 활발하게 행해져왔고 또 그만큼의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정신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당위성에 비추어 볼 때 보완되어야 할 요소 ―이를테면 벤야민과 아도르노에 대한 지나친 경사 등―가 여전히 남아 있는 현실에서, 독일 정신사의 주요 인물의 삶과 이론, 그리고 학문적 업적을 한자리에서 접하고 정리해보자는 독문학자 김주연의 오랜 열망이 이 연구서 『독일 비평사』로 이어졌다 하겠다.
■ 본문의 구성과 내용
본격적인 본문의 시작으로 보이는 「18세기 문학비평」을 포함하여 총 13편으로 나뉜 각 편의 글은 (1) 사상가에 대한 김주연의 연구 논문, (2) 사상가·문예이론가의 주요 저서나 논문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번역한 글, (3) 해당 인물의 자세한 연보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책의 말미에는 본문과 각주에서 언급되는 주요 인물들의 색인이 첨부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큰 미덕은 각 편 이론가의 글을 번역 소개하는 데 있어, 김주연의 젊은 선생 시절 대학원 강의에서 만난 독문학도들이 발벗고 나섰다는 데 있을 것이다. 오직 동학의 사제로 만난 인연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여한 12명의 현직 독문과(고려대, 서울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등) 교수들의 분투가 이 책이 보다 꼼꼼하고 체계적인 완성도를 이루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크게 각 사상가나 문예이론가를 출생 연도순으로 소개하고 있는 본문은, 맨처음에 근대 독일 문학의 형성기로 간주되는 18세기를 조명하고 있다. 「18세기 문학비평」에서는, 계몽주의 극작가이자 문학이론가로서 독일 문학이론의 형성기의 첫번째 주자로 일컬어지는 ‘레싱’, “성서 또한 詩일 따름이며, 詩 또한 성서”라는 말로 집약되는 18세기 최초의 독일 순수 문학이론가이자, 독일 문학의 민족적 자각과 그 이론적 체계화의 작업을 다진 장본인 ‘헤르더’, 계몽주의에 의해 팽배된 세속주의 내지 현실주의의 와중에서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도덕성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던 ‘실러’, “낭만적 문학만이 서사시처럼 전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며, 시대의 상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문학은 낭만적이며, 또는 낭만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슐레겔’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괴테, 니체, 프로이트, 루카치, 벤야민, 아도르노와 그들에 비해 낯선 쉐러, 딜타이, 가다머까지 유구한 독일 정신사의 흐름을 쫓아가는 즐거움이 기다린다.
여기에는 질풍노도기와 낭만주의 및 고전주의를 거쳐 독일 민족 고유의 신비주의와 기독교 문화를 통합시켜간 18세기 후반~19세기 초 독일의 정신적 유산의 집대성 그 자체이자 거대한 사회·역사 비평이기도 한 괴테의 예술관과 종교관이, 거의 모든 서양의 전통을 그 근본에서부터 부정하고 비판함으로써 문학의 운명과 그 구체적 형태를 상징화시킨 니체에 대한 재해석이 담겨 있다. 또 니체, 마르크스와 함께 독일 근대 사상의 3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프로이트를 해석함에 있어 그의 정신분석이론을 문학비평적 시각에서 살피고 그 다양한 활용의 가능성을 끌어내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근 이십여 년 동안 한국에서 유난히 활발하게 연구돼온 동유럽의 마르크시스트이며 문예이론가인 루카치편에서는 윤리와 역사, 경제 문제에 천착했던 그의 초·중기의 연구가 종국에는 문학을 포함한 미학의 영역으로 치달아가는 과정을 살피면서 그의 총체성에 근거한 예술적 발상을 집중조명하고 있다. 한편에선 창작의 현장에서 이론의 관념성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창작 실험을 통해 전위성, 저항성, 독창성을 전면에 세웠던 브레히트의 당대 비평이 갖는 본질적 요소를 묻고 있다. 20세기 전반 지성계의 다양한 배경과 그 방향적 엇갈림 한복판에 서 있었던 벤야민도 빠트릴 수 없는 인기인이다. 저자는 단선적 비평이 갖는 한계를 떨치고 대립과 갈등의 복합적 양상이 바람직한 것으로 요구되는 차원에서 벤야민을 그 전형으로 평가하고, “섬광의 언어/상징의 언어”가 지니는 폭발성이 사회적 실천의 논리성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예로서 오늘에도 벤야민의 문학비평이 갖는 ‘현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맨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 이는 아도르노이다. 저자는 벤야민, 마르쿠제와 함께 철학 부재 시대의 철학을 밀고 나온 아도르노를 살피면서, 이른바 탈공업사회의 예술과 문화의 운명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또 정열적으로 몸 바쳐 이론적 탐색을 거듭해온, 1960년대 이후 서양 문학예술의 이론 분야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더불어 철학과 형이상학이란 용어 뒤에 학문이라는 용어가 뒤따르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19세기 독일 문학비평의 경향을 주도한 대표적 인물로 쉐러가 등장한다. 그는 프랑스에 비해 독일 정신사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실증적 현실주의의 중요성을 인식시킨 인물로, 그 중요성에 비해 그동안의 평가가 정당치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쉐러보다 조금 앞선 딜타이는 ‘삶의 철학’으로 불리는 그만의 독특한 철학을 펼친 인물로 유명하다. 19세기 말의 자연과학주의적 세계관과 자연주의 문예관 및 심리주의에 비판적 접근을 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켜간 딜타이는, 경험에 입각한 삶의 진실을 발견코자 했던 그의 사상적 업적이 인문학 전반에 끼친 영향의 진폭을 가늠해볼 때, 19세기의 마지막 혹은 20세기 최초의 문학비평가라는 타이틀이 적합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밖에도 비교적 최근에 작고한 인물로 세계 최고의 철학자이자 동시에 문학예술에 막강한 이론적 영향력을 행사한 가다머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는 스피노자 등 낭만주의 이전의 이론가들로부터 슐라이어마허, 딜타이 등을 해석학적 시각에서 비판, 수용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학적 방법론을 확립해간 인물이다. 저자는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인 자리로 문학 작품의 해석을 유도하는 가다머 해석학의 올바른 이해야말로 오늘의 문학비평을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쇄신시킬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책머리에 저자가 고백했듯이, “무엇보다 루카치가 즐겨 쓰는 삶의 총체성이 붕괴된 현실, 인문학의 문맹화 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되어가는 세계에서 부서진 전통의 파편 조각들을 줍는 심정으로” 씌어진 한 편 한 편의 심혈을 기울인 연구 논문이 이 책 『독일 비평사』에 묶였다 하겠다.
■ 「책머리에」에서
형이상학의 특성은, 그 전통에 낯선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고, 그 이해의 첩경은 학문과 독서의 숙련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산자, 혹은 전달자 쪽의 노력도 이제는 함께 고려되어야 하며, 특히 외국어가 매개된 상황에서 그 정당성은 더 미루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이미 많이 소개된 몇몇 이론가들, 아직은 생소한 또 다른 이론가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이 책은 이런 요구와 관점에서 기획·집필되었으며, 무엇보다 문학비평적 시각에서 독일 정신사를 정리해본다는 의도가 반영되었기를 희망한다.
■ 차례
책머리에·5
어두움과 빛으로, 그 몸부림으로서의 비평·9
18세기 문학 비평·16
헤르더(1744~1803)/괴테(1749~1832)/슐레겔(1772~1829)/딜타이(1833~1911)/쉐러(1841~1886)/니체(1844~1900)/프로이트(1856~1939)/루카치(1885~1971)/벤야민(1892~1940)/브레히트(1898~1956)/가다머(1900~2002)/아도르노(1903~1969)
각 편 번역자 소개·559
주요 인명 색인·563
■ 각 편 번역자 소개
헤르더 편: 강명구(숙명여대 강사)
괴테 편: 송전(한남대 독문과 교수)
슐레겔 편: 장미영(이화여대 독문과 교수)
딜타이 편: 김서정(중앙대 겸임교수, 아동문학가)
쉐러 편: 이선희(숙명여대 독문과 강사)
니체 편: 장영은(숙명여대 독문과 교수)
프로이트 편: 신혜양(숙명여대 독문과 교수)
루카치 편: 이기식(고려대 독문과 교수)
벤야민 편: 김영옥(이화여대 독문과 교수)
브레히트 편: 김용민(연세대 독문과 교수)
가다머 편: 김태환(덕성여대 교양학부 교수)
아도르노 편: 김유동(경상대 독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