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 사랑이 또 올 거 같니?
쿨~한 척하는 그녀들의 진짜 속사정
조선일보 화제의 연재소설 단행본으로 드디어 출간!
감각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쏟아내는
콜라처럼 톡 쏘고 날콩처럼 비릿한 인생의 맛
“사랑은 종종 그렇게 시작된다…
그가 내 곁에 온 순간 새로운 고독이 시작되는 그 지독한 아이러니.”
■ 신세기 연재소설의 새로운 전형(典型)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이래, 등장인물·문체·내용·형식 등 모든 면에서 ‘도발적이다, 발칙하다, 감각적이다, 치밀하다’는 상찬과 함께 문단과 독자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온 작가 정이현이 첫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문학과지성사, 2006)를 펴냈다. 그동안 정이현은, 등단작이자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 수상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표제작으로 삼은 첫번째 작품집으로 그해와 이듬해, ‘가장 좋은 젊은 소설’ ‘가장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등의 각종 순위에서 베스트에 랭크되며 집중조명을 받아왔다. 또 첫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 「트렁크」가 영상으로 재탄생(2005년 KBS-2TV ‘드라마시티’)되는가 하면, 이후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들로 이효석문학상(2004), 현대문학상(2006) 등 문단의 유서 깊은 문학상들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역량을 과시했다. 그리고 2005년 가을, 정이현은, 문단과 충무로, 여의도 각계에서 그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신문 일일연재소설’(조선일보 2005년 10월~2006년 4월, 총 129회 연재)이라는 파격적이고 모험적인 선택을 보여주었다.
최근 한국 문단의 새로운 활력소로 흔히 30대 젊은 작가들의 잇따른 장편소설 발표를 꼽는다. 그런데 이들의 경우가 대개 잡지나 일간지의 장편 공모 혹은 2~4회에 걸친 계간지 분재 형식인 데 반해, 내로라하는 문단의 중견 작가도 그 호흡과 체력 유지 면에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신문 연재소설의 형식을 택한 정이현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띄었다. 그동안 소설, 주요 신문과 잡지의 연재칼럼, 그리고 각종 문화제나 대학교 주최의 작가 초청 모임에서 “문학은 곧 독자와의 소통에서 그 존재 의의를 찾아야 한다”“개인적 삶의 정체성이 곧 문학의 가치로 환원돼야 한다”는 자신의 문학관을 줄곧 견지해왔고, 1994년 ‘나우누리’가 설립되면서부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벼락 같은 충격”을 즐겨 경험해왔다는 정이현이고 보면, 매일매일 독자와의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한 신문 연재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 써내고 그린 모든 것이 화제 +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소설 읽는 맛’
2005년 10월에 첫 연재를 시작하여 2006년 4월 말 총 129회로 마감하기까지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는, 연재 초기부터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 도입부를 장식하는 잠언 투의 강렬하고 감각적인 문장, 2 매 회 끊어 기가 가능한 산뜻한 구성, 3 건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 4 곳곳에 솔직 담백하게 표출된 21세기 도시 남녀의 다양한 삶의 가치관, 5 속도감 있는 전개, 6 적재적소에 포진한 젊은 도시인들의 생활코드(스타벅스, 맥도날드, 베스킨라빈스31, 퓨전중국요릿집, 베트남 쌀국수 등)과 이들이 연상시키는 7 시트콤 드라마적 감성, 더불어 이미 확고한 마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는 8 일러스트레이터 권신아씨의 섬세하면서도 개성 강한 삽화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정이현의 소설은 기존 소설에선 익히 볼 수 없었던 ‘도시적 삶의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그 자장 안에서 얽히고설킨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제 막 7년차 회사원을 건너온 서른한 살의 ‘오은수’는 오랜 직장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진 도시에 거주하는 미혼 여성들의 일과 연애, 친구와 가족, 그리고 결혼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이야기를 온몸으로 표출한다. 마치 ‘내방(內房)’에서나 나눔 직한 은밀한 욕망을 감추지 못하는 인물들의 대화가, 200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각종 이모티콘을 장착한 휴대폰 액정화면과 인터넷 메신저 화면 속을 숨가쁘게 그리고 자유롭게 유영한다. 15년 우정을 과시하는 단짝 은수와 유희, 재인의 각기 다른 직업관과 연애관, 결혼관에 독자들 특히 20, 30대 젊은 여성들은 일희일비하며 인터넷 댓글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때로는 전폭적인 지지를, 때로는 가차 없는 비난의 글을 쏟아냈다. 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열정과 도전으로 맞서는 다정한 연하남 태오, 개량형 옥수수 낱알처럼 모든 것이 반듯하지만 알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영수, 오랜 시간 소울메이트 같은 친구에서 이제 이성으로 다가서는 유준 등 독특한 개성의 남성 인물들 역시 주변에서 봄 직한 인물로 거듭나면서 동세대 남성 독자들을 『달콤』의 열독자 대열에 합류시켰다. 여기에 중장년층 남성 독자들의 은근한 호기심까지 이번 소설을 통해 정이현 소설 독자의 폭은 훨씬 더 확대되었다. 지금 바로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치면 확인되는, 무려 1,200여 개의 블로그와 카페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 한국 소설 시장의 새로운 활력소 + 21세기 새로운 여성 화자의 출현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의 출간에 즈음해서 이미 문단 안팎에선, 침체된 한국 문학과 소설 시장의 회복을 점치는 조심스런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한두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제외하곤 지금의 한국 소설 시장은 지명도 있는 기존 작가라 할지라도 초판 5천~1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신 최근 몇 년 새에 외국 문학, 특히 일본 소설이 한국 소설 시장을 잠식해들어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거침없이 변화하는 사회와 독자들의 취향을 생각해보건대, 동세대의 젊고 다양한 감각을 예리하게 간취하여 깔끔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거기에 문학적 호평까지 얻고 있는 정이현의 소설이 대중에게서 멀어진 한국 소설을 본연의 자리로 되돌리고 침체된 한국 소설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편 정이현 소설 속 주인공은 이전 세대 여성 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여성 화자의 모습과도 차별성을 보인다. 90년대 여성 소설이 전통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거나 부당한 차별에 앓는 여성의 저항과 제도 밖으로의 일탈을 주제화하고, 이를 섬세하고 처절한 내면의 고백이나 혹은 그러한 정조의 언어에 담아내는 데 치중했다면, 정이현의 ‘그녀들’은 그 남성 우위의 사회적 지배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폭압 아래 형성된 여성상과 여성성을 수용하는 듯하다가 이내 철저히 이용하는 영악함을 보여준다. 혹자가 말한 “적나라한 여성성”을 보여주되 그 속에 숨어 있는 정치 사회적 역학 관계를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으로 접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자조 섞인 냉소와 자기위무 대신 메마른 현실을 건조한 문체에 담아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 기인할 것이다.
여러 면에서 기존 소설과 차별지어지는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연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일본 고단샤와의 판권 계약 체결로 문단에 또 다른 이슈로 자리 잡았다. 이번 출간과 더불어 일본어판도 곧 소개될 예정이며, 전자책은 물론, 기타 드라마와 영화 등 2차 저작권 협의 역시 활발히 진행 중이다.
분명 젊은 작가 정이현은 이전 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시대에 대한 부채감에서 자유롭고 소위 민족과 사회라는 정치적 담론과도 거리를 둔 듯 보인다. 대신 그들 거대 담론에 묻혀 미처 조명받지 못했던 개인, 나와 너의 24시간을 채우고 있는 이미지(패션과 광고), 대화(수다와 기사, 인터넷 메신저, 휴대폰 문자), 관계(가족과 연인,부부) 등에 주파수를 맞춘다. 앞서 말한 ‘속도감 있는 전개’와 ‘가벼운 듯하지만 녹록지 않은 주제의식(생각할 거리)’ ‘간결하지만 머릿속에 꼭꼭 새겨두고픈 꽉 찬 문장’은 이 작가의 가장 든든한 연장이며, 작가 역시 그 연장들을 얄미울 정도로 잘 부린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른 척”해왔던, 누구든 볼 수는 있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는 개인의 욕망, 그 만화경 같은 세계가 작가 정이현의 이야기장(場)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를 펼쳐든 순간 우리는 아마도, 삐딱한 시선으로 조금 ‘까칠하게’ 까발려지는 사람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접하게 될 것이고 이어 “바로 내 이야기야”라고 무릎을 내려칠 것이다.
이것은 나의 도시에 사는, 나의 은수에 관한 이야기다. 당신의 도시에 사는, 당신의 인물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당연하다. 나는 요즘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2005년 늦여름부터 2006년 초여름까지 은수와 함께 지냈다. 누군가와 헤어져야 할 때 억지로라도 태연을 가장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맨송맨송한 얼굴로 보내기 힘들다. 덕분에 여러 가지를 버틸 수 있었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내 이름이 아니라 오은수의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_『달콤한 나의 도시』 中 「작가의 말」에서
■ 작품 줄거리
1부 성년의 날
옛 애인의 결혼식 날, 사람들은 뭘 할까?
1975년 5월 25일 오후 2시,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 귀퉁이의 산부인과에서 첫울음을 터뜨린 ‘나, 오은수’는 2005년 현재 사회생활 7년차(이쯤되면 외부 업체 프리젠테이션에 어린 여직원 두 명을 배경 삼아 데려가자는 부장의 질척한 요구쯤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의 미혼 여성이다. 기업체 사보와 홍보 브로슈어 편집 대행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성실한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어느 날 헤어진 지 6개월이 된 옛 애인 고릴라가 보내온 청첩장을 받았다. 드디어 그의 결혼식 날, 예상했던 분노나 질투, 눈물은커녕 평소와 다름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어른이 된 건가? 우울한 하루를 보상받는 데는 15년간 변치 않는 우정을 자랑하는 재인, 유희와의 수다가 최고다. 그러나 “발 딛고 선 땅바닥이 흔들리는, 진저리나도록 현실적인 날벼락”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친구 재인의 깜짝 결혼 발표. 누구의 위로라도 필요했던 바로 그날 우연히 뉴페이스 ‘윤태오’를 만난다.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7살 연하남 태오는, 여자가 앉을 의자와 화장실을 고려해서 술집을 고를 줄 아는, 나이 어린 남자애치곤 사려 깊고 또 귀여운 친구다. 회사도, 친구도, 남자도 모두가 내게 상처를 입힌 바로 그 순간, 태오와의 ‘원나잇 스탠드’가 찾아온 것이다. 꿈꿔본 적이 없는 미래가 끔찍한 속도로 달려드는 것만 같다.
“후회하지는 않으련다. 혼자 금 밖에 남겨진 자의 절박함과 외로움으로 잠깐 이성을 잃었었다는 핑계는 대지 않겠다. 저지르는 일마다 하나하나 의미를 붙이고, 자책감에 부르르 몸을 떨고, 실수였다며 깊이 반성하고, 자기발전의 주춧돌로 삼고. 그런 것들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라면, 미안하지만 어른 따위는 영원히 되고 싶지 않다. 성년의 날을 통과했다고 해서 꼭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미성년으로 남고 싶다. 책임과 의무, 그런 둔중한 무게의 단어들로부터 슬쩍 비켜나 있는 커다란 아이, 자발적 미성년.” (본문 43쪽 )
2부 선택의 시대
지구에는 모두 몇 개의 도시가 있을까?
매일매일이 똑같은 그런 지리한 일상. 거기에는 회의 주제가 아닌 회의 주재자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한 편집회의도 한몫 한다. 안이사의 제안대로 각자 구태의연한 의견을 내놓는 자리, 스물다섯 살짜리 후배 이민정의 거침없는 발언이 있은 후, “언제나 조용히 묻어가는 생”이고픈 직장 7년차 나 오은수는 비굴한 길을 택한다. 바로 그날, 안이사의 주선으로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흔하디 흔한 이름, 개량 옥수수 낱알처럼 가지런하고 반듯한” 주인공 김영수를 소개받는다. 나답지 않게, 토요일 오후 2시에 호텔 커피숍에서 김영수를, 그리고 같은 날 6시 대학로에서 태오를 만나는 스릴 만점의 더블데이트도 즐긴다. 그 사이 유희는 잘나가는 중견기업 과장 자리를 박차고 뮤지컬배우에 도전한다고 알려왔다. 한편 내게 또 한 남자가 있으니, 동성 친구보다 더 허물없이 연애담을 늘어놓을 수 있는 친구, (남)유준이다. 그마저도 넌지시 내게 프러포즈를 해온다.
“윤태오, 남유준, 김영수. 객관식 선다형 문제를 받아든 것처럼 나는 세 개의 이름들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마음 가는 것과는 별개로, 이 세 개의 보기들에는 각각 잉여와 결핍이 담겨 있다. 나는 몇 번째 답안에 동그라미를 치게 될까. 그것은 정답일까, 오답일까. […] 그래. 반드시 지금 선택할 필요는 없다. 가상의 시뮬레이션 게임 안에서는 다트를 몇 번이고 다시 던질 수 있지 않은가. 보증금을 빼어 마녀의 심장과 교환할 그 순간까지 나는 선택을 유예할 것이다. 결정하지 않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밤, 세상에서 가장 우유부단한 인간 오은수가 내린 중차대한 결정이다.” (본문 115~116쪽)
3부 위태로운 거리
서울은 과잉의 도시다.
첫인상에만 급급하여 망쳐버린 지난날에 대한 회한과 신중함으로 보름만에 김영수를 다시 만났다. 만난 지 20일째, 장미꽃을 챙기는 태오와의 데이트도 마다할 수 없다.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원룸 건물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태오는 기다렸다는 듯 허름한 배낭 하나만을 들고 집에 쳐들어온다. 그사이 유희는 이혼남의 신분으로 돌아온 옛 애인 용가리와 재회하고, 재인은 우울하고 걱정스런 얼굴로 웨딩촬영을 마친다. 순식간에 변화하는 주위에 휘둘리는 가운데 맞은 크리스마스 이브. 태오와 함께 영화관에 들렀다가 초로의 낯선 사내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지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목격한다. 2005년 세밑, 유준의 오피스텔에 모인 유희, 재인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에 귀기울이며 뒤돌아보지 않고 2005년을 보내주기로 결심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 인간의 힘으로 이해 못할 인간의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틀만 지나면 나는 서른두 살이 된다. 고작 서른둘이다. 얼마나 더 살아야,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생의 불가사의에 대해 의연하게 찡긋 윙크해줄 수 있을까? (본문 146쪽)
그러나 도시의 방과 방 사이, 집과 집 사이는 다닥다닥 붙어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불편하다며 늘 투덜거리곤 한다. 타인과 가까이 있어 더 외로운 느낌을 아느냐고 강변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언제나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줄 나만의 사람, 여기 내가 있음을 알아봐주고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갈구한다. 사랑은 종종 그렇게 시작된다. 그가 내 곁에 온 순간 새로운 고독이 시작되는 그 지독한 아이러니도 모르고서 말이다. (본문 180쪽)
4부 치명적인 것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명제는 참일까? 물론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나는 그래서 더 힘이 든다. 안이사의 퇴사와 그의 스카우트설이 사내에 떠돌면서 머릿속이 극도로 복잡해진 가운데 동거남 태오에 대한 불안과 불만, 엄마의 휴대폰에 남아 있는 낯선 남자의 메시지, 슬픈 얼굴의 신부 재인의 결혼식 날, 뒤풀이 자리에서 주책없이 구는 유희-용가리 커플, 이 모두가 나(은수)의 서른두 해째 삶을 뒤흔들고 있다. 급기야 K건설회사 사보 사건으로 후배 이미정 대신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기까지 한다. 나름대로 태오에게 인생의 쓴맛을 상기시키고자 한마디 건넸건만 태오는 끝내 짐을 싸서 내 방문을 나선다. 만년 자유로운 영혼, 백수를 자처했던 친구 유준은 난데없는 입사 원서를 들고 내 앞에 나타나고, 재인의 신혼집에서 담배 연기 속에 유희와 함께 수다를 떨다가 재인 시부모의 갑작스런 방문까지, 모든 게 엉망이다. 불현듯 반듯한 생활맨, 김영수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람은 왜 선(線)을 넘는가. 끊임없이 선을 의식하고 살기 때문이다. 선을 밟으면 안 된다는 억압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소한 충동이 고장 난 신호등처럼 깜빡인다. (본문 205쪽)
나 역시 그렇다. 스무 살엔,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 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말들은 잘한다. 각자의 등에 저마다 무거운 소금가마니 하나씩을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걸어가는 주제에 말이다.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 (본문 227쪽)
5부 연인들의 비밀
서투른 창녀의 윙크처럼 커서가 깜빡인다
엄마의 갑작스런 방문에 마음속은 온통 걱정뿐인데 입밖으로 나오는 말은 죄다 날이 선다. 안이사의 불명예 퇴사가 결정된 가운데 결국나 또한 사표를 작성한다. 태오와는 동거 이전처럼 바깥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지만 예전처럼 돌아가기란 좀체 쉽지 않다. 한편 가뭄에 콩 나듯 이어지는 김영수와의 데이트 도중, 날아온 축구공에 그만 김영수가 실신하고 만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를 부랴부랴 응급실로 옮기고 수속을 밟기 위해 지갑을 뒤져 주민등록증을 살폈을 뿐인데, 이 남자,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싸늘하게 돌아서는 게 아닌가. 이 남자, 수상하다. 계속된 만남이지만 육체적 접촉에선 좀체 진전을 보이지 않는 것도, 가족이나 친구에 대해 함구하는 것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결국 재인의 이혼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여자의 서울 탈출!
남겨지는 자보다야 떠나는 자가 우월한 법이라고, 그렇게 주장하련다. 사무실, 내 책상 서랍 속에는 가지고 나올 만한 변변한 물건이 없었다. 꼬질꼬질 때가 끼고 군데군데 커피 얼룩이 묻어 있는 키보드를 손바닥으로 쓸어보았다. 2년여 동안 꼬리뼈가 저리도록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었던 초라한 의자와도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본문 291쪽)
6부 돌이킬 수 없는
“오늘, 뭐 했어?”
익숙지 않게 반복되는 백수의 24시간이다. 재인의 충고에 새로운 직장의 면접을 보러 가지만 30대 중견 여성으로서의 자신감 대신 쓰디쓴 열패감만을 안고 돌아선다. 애써 마음을 접은 태오는 새로운 영화 프로모션에 참여한다 하고, 정작 내가 몸달아 하는 김영수는 도통 결혼 얘기를 꺼내려 하지 않아 내 조바심을 부채질한다. 그러나 대형사고는 다른 곳에서 터졌으니, 갑작스런 엄마의 가출이다. 아빠도 오빠도 사건 수습에는 죄다 한심하다. 이때 침착하게 엄마의 소재지를 파악하는 김영수를 보며 나는 그를 두고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품는다.
어쩌면 우리들은 사랑에 대해 저마다 한 가지씩의 개인적 불문율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싶다. 문제는, 자신의 규칙을 타인에게 적용하려 들 때 발생한다. 자신의 편협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대고 단죄하는 일이 가능할까. 사랑에 대한 나의 은밀한 윤리감각이 타인의 윤리감각과 충돌할 때, 그것을 굳이 이해시키고 이해받을 필요가 있을까. (본문 330쪽)
7부 그림자 도시
관광호텔의 룸은 낡고 을씨년스러웠다.
엄마의 귀환. 여전히 엄마 아빠 두 분의 관계는 타협 없는 평행선이다. 자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저돌성으로 나는 김영수에게 프러포즈한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러 그에게서 뜨뜻미지근한 동의를 얻는다. 상견례 자리에서 드디어 결정적인 한마디, ‘결혼 결심의 이유’를 들으려는 찰나 뜻하지 않은 상황의 발생으로 그마저 무산되고 만다.
그림자는 빛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세상의 모든 실체들이 저마다 하나씩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듯이,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실체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림자가 없는 것은, 그림자뿐이다. 그렇다면 바로 저기, 그림자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 서울은 어쩌면 거대한 그림자 그 자체인 것은 아닐까. 내가 이 그림자 도시 귀퉁이에 빛 없이 숨어 사는 한 뼘 그림자인 것처럼. (본문 373쪽)
8부 거의 모든 사랑의 법칙
일은 차근차근 준비되어갔다
사생활 전부 비밀 속에 감춰둔 김영수에게 이제 슬슬 화가 난다. 그러던 어느 날, 급기야 김영수는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밝혀진 것은, 김영수가 김영수가 아니라는 기막힌 사연. 믿기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김영수가 보낸 농구경기 관람 티켓을 우체통에서 집어든다. 농구경기장. 얼굴을 바로 보지도 않은 채 그의 고백을 듣는다. 그동안 나는 살아가는 일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확고부동한 ‘선(線)’이라는 것이 있다. 선을 밟는 행위는 반칙이다. 선을 밟거나 선을 넘다가 걸리면 찍 소리도 못하고 금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가야 한다. 그런데 때론 정말 궁금하다. 그것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본문 403~404쪽)
9부 정거장, 서울, 2006
2006년 6월 5일까지, 많다면 많고, 많지 않다면 많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본격적인 별거에 들어갔고, 안이사는 계획대로 우거지 전문 식당를 개업했다. 책자의 편집과 제작을 도맡아 처리하며 장난스럽지만 내 이름이 담긴 명함도 하나 공짜로 얻었다. 이제 ‘백수’라는 말 대신 ‘자체 임시 휴업’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한다.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본문 440쪽)
막 30대에 접어든 평범한 여자. 그녀의 이름에서 풍겨오는 은수라는 이미지도 무난하고 얌전하고 비교적 차분한 느낌이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매우 열정적인 사랑, 사람들에게 주어진 한번뿐인 인생의 기회에서 그녀가 진정 갈구해왔던 것은 자신의 가슴을 타게 만드는 삶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어느덧 노처녀대열에 올라섰고 생생하고 매끈해보이는 젊음의 탄력과 매력은 상실한 듯 하고, 그녀의 친구들 역시 비슷비슷, 그럭저럭의 연애와 결혼과 시련을 겪으며 씁쓸한 그녀들의 도시속에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은수는 출판사에서 편집업무를 맡은지 어언 7년이 넘어선 무르익은 사회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괄목할 만한 사회적 상승이나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위치에 올라서지는 않았다. 물흐르면 따라 흐르는 물줄기처럼 그저 착실히 묵묵히 그녀의 역할을 맡아왔고 남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수렴하는 방향을 택해온 것이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흔히들 표현하는, 묻혀지내오던 삶.
그래서인지 그녀는 사회적으로도, 연애와 결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 자신에 있어서도 어느 하나 시원한 구석이 없다.
푸릇푸릇하고 정열적이며 사랑스러운 남자, 그녀의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 연하남_태오와 지극히 평범함과 성실함이 무료함으로 다가오는 남자.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만하면 제격인 남자_영수
은수는 그녀 나름의 현실과 이상속에서 이 두남자를 두고 방황과 번뇌로 헤맨다.
그녀의 방황은 선택과, 진정함과, 현실과 이상과, 공허함의 방황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두 남자중 어느 한명도 그녀의 사람으로 가질 수 없게 되지만
그녀는 지금처럼 계속 살아갈 것이다. 30대의 한 여성으로서 그녀가 위치한 도시속에서 살아가야할 것이다.
평범하고 평범한 일상속에서 내면이 진정 갈구하는 그 뜨거운 무언가, 그러한 삶, 이라는 관념에 대해 왜 자유의지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진정성과 최상의 무언가는 내면에 존재할 것 같은데 왜 찾아내기가 어려운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도 전해오고 평범함속의 덤덤함, 익숙함도 느꼈다.
평범함.. 이라.. 달콤한 나의 도시” 에서 나에게 던져준 하나의 낱말이다.
평범한 삶도 있고 놀라운 삶도 있다.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가는 판단하지 않는다. 답은 없을 것 같으니까…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 속에서 항상 무언가를 골라야 할지 진땀을 빼고 있을 것이다.주인공의 말처럼,
남자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ㅎ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보지도 않는 소설칸을 돌아다니다가
달콤한나의도시를 보게 되었는데요 옆표지에 있는 글씨체가 맘에 들더라구요;;
앞표지도 보니 왠지 끌리고 해서,, 저번에 엄마한테 받은 문화상품권 만원권으로
책을 샀어요 ㅎㅎ 음~ 다 읽고났더니 왠지 오은수란 사람,, 저랑 조금 닮았다?
라고 생각했어요,, 전남자지만요 ㅋㅋ 아직 고등학생이라 가끔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약간씩은 있었지만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앞으로 기대할께요!!
너무 부담은 가지지 마시구요 ㅇㅅ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