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백범학술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한양대 석좌교수, 한성대 이사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는 신용하 교수는 오랫동안 일본 제국주의 침략사의 실체를 밝히는 데 몰두해왔고,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힘써왔으며, 일본의 신군국주의 및 신팽창주의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내온 원로 사회학자이다. 그가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며 쓴 논문과 평론 중에서 그 정수만을 추려 묶은 『일제 식민지정책과 식민지근대화론 비판』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일제 강점기 동안 1인당 GDP와 소비 증가가 뚜렷이 나타나는 등 실질적인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이 처음 제기된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특히 최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의 발간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들이 부각되면서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오랫동안 이 문제를 천착해온 저자의 목소리는 더욱 주목할 만한 가치를 갖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네 가지 영역에서 근대화의 보편적인 사회과학적 기준을 거론하고, 각 영역에서 일본의 식민지정책이 한국의 근대화를 어떻게 저지시켰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정치적인 근대화는 독립한 국가 또는 정치체를 전제군주체제에서 입헌대의체제로 변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한국의 주권 자체를 말살하고, 헌법이 아닌 제령, 즉 총독의 명령으로 폭압적으로 통치하였으며, 민주공화체제로 수립된 상해 임시정부에 대해 탄압책을 강행하였다. 사회적인 근대화는 신분제사회로부터 시민권을 가진 시민들이 구성하는 시민사회로 변동 이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일본 식민지 통치는 한국인에게는 생명과 신체의 자유권, 언론·출판의 자유권 등 기본적 시민권마저 박탈하였으며, 민족 차별을 공공연하게 제도화하여 억압하였다. 문화적인 근대화는 특권층 중심의 귀족문화에서 일반 시민·민중 중심의 민족문화로 변동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동화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 언어, 한글, 한국민족문화, 한국역사, 한국문학·예술들을 말살하려고 획책하였다. 다시 말해 한국의 문화적 근대화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문화적 근대화를 저지, 탄압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근대화는 중세적 봉건적 경제 조직과 생산 방식으로부터 산업자본주의 공업화의 달성을 가리킨다. 일본은 강점기 동안 농업 부문에서는 구한말 반봉건 지주제도를 폐지 또는 개혁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반봉건 지주제도를 강화하였고, 공업 부문에서도 산업자본주의를 확립하지 못한 채 한국을 독점적 상품 시장으로 개편하는 정책을 폈다.
저자는 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일본의 식민지정책이 일제 강점기 동안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각 영역에서 한국의 근대화를 저해하고 저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원로 학자의 이러한 일관된 주장은 관련 분야의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역사적 진실에 대해 고민하는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여 줄 것이다.
■ 책머리에
이 책은 저자가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그동안 일본 제국주의와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 비판한 논문과 평론들을 뽑아 편집한 것이다.
한국 민족사에서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한국인들에게 가한 살인 만행, 착취와 고통은 붓과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이며, 한국의 근대화와 발전을 근원적으로 저지한 폐해는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오늘날 한국민족이 모두 큰 고통을 받고 발전의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는 남북분단도 캐어보면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강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자본이 대거 국내에 침투하여 연구비를 공급한 것과 관련되어,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1910~1945년의 식민지 강점기에 수행한 일제 식민지정책이 한국을 ‘근대화’시키고 ‘개발’시켜 주었다는 소위 ‘식민지근대화론’과 ‘개발론’이 머리를 들어 보급되고 있다.
‘일제 식민지근대화론’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며, 과거 일제 조선총독부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강점기에 선전하던 거짓된 ‘식민지정책 홍보’이다. 이 ‘허위’가 막강한 자본력을 붙여서 한국에 수출되고 일부 한국 연구자들까지 이에 가담하기 시작하니, 이것은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심각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3부로 나누어 편집하였다.
제1부는 주로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론’과 ‘식민주의사관’을 비판한 글을 모은 것이다. 제2부는 주로 일제의 ‘식민지정책’ 자체를 분석하고 비판한 글을 모은 것이다. 제3부는 몇 년 전에 문학과지성사의 스펙트럼 문고판인 『일제 식민지근대화론 비판』을 개고하여 수록한 것이다. 문고판의 주 논문 「‘식민지근대화론’ 재정립 시도에 대한 비판」의 내용 가운데 저자가 일제의 ‘한국어 말살정책’과 ‘한국문자(한글) 말살정책’을 구분하여 쓴 것을 어느 편집부원이 이를 통합하여 ‘한글(언어·문자) 말살정책’으로 자의로 고쳐버렸기 때문에 내용이 틀리게 되었다. 개정판을 내려고 기다리다가 이번에 ‘한국사회사연구총서’로서 책을 내게 된 계제에 틀린 것을 개정함과 동시에 제3부로 이 책에 포함시켰다.
이 책을 출판해주신 문학과지성사 여러분들과 이 책을 총서에 넣어주신 한국사회사학회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이 책이 일본 제국주의 및 일제 식민지정책의 내용과 본질을 이해하고 한국민족의 나갈 길을 모색하는 데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
제1부 일제 ‘식민지근대화론’과 식민주의사관 비판
제1장 역사 속의 현재, 현재 속의 역사 ; 광복 60주년에 성찰하는 ‘식민지근대화론’과 ‘연속성론’ 비판
제2장 일본제국주의 옹호론과 그 비판
제3장 일본교과서의 한국역사 왜곡 비판
제4장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족주의사관의 전개와 일제 식민주의사관의 비판
제5장 한국을 침략 수탈한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 통일을 방해하는 일본 신군국주의
제2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정책 비판
제6장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정책의 구조와 특징
제7장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실시와 토지약탈 및 농촌 사회경제의 변화
제8장 일제의 산미증식정책과 식량약탈
제9장 일제강점기 한국의 생산구조
제10장 일제의 한국민족 말살, ‘황국신민화’ 정책
제3부 일제 식민지근대화론 비판
제11장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론’ 비판
제12장 현대 한일관계와 우리의 대응
제13장 일제 잔재의 청산 문제
제14장 독도 영유권과 일본의 신팽창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