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분석 정신과 열린 사유, 대화적 상상력과 공감의 비평으로
한국 현대 문단을 이끌어온 평론가 김치수의 40년 문단 활동 결산!
“문학 자체가 스스로 문학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은
현실에 대한 문학의 자기반성에 해당합니다.”_김치수
김치수의 비평은 작가에게 보내는 격려이고 독자에게 건네는 위안의 메시지다.
그의 문체는 곁에 앉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그의 다감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른한 안식에 젖는 독자는, 그러나, 그가 텍스트의 세밀한 흐름들까지 속속들이 짚어나가는 것을 문득 깨닫고 놀라게 된다. 그의 섬세함은 작가에게 두려움을 자아내고 그의 자상함은 독자에게 글읽기의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__정과리, 『김치수 깊이 읽기』를 엮으며
2006년 2월 말로 27년간의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 교수직을 비롯한 35년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정년 퇴임하는 문학평론가 김치수의 평론집 『문학의 목소리』(문학과지성사, 2006)가 출간됐다. 이 책은 1966년 1월에 중앙일보 제1회 신춘문예 평론 부문 입상을 계기로 문단에 나온 저자의 40년 문단 생활을 정리하는 개인적 의미와 함께, 흔히 문단에서 4·19세대라 불리어왔던 문학적 세대의 족적을 헤아리는 문학사적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울대학교 불문과 재학 시절 김현, 김승옥, 최하림과 함께 한글세대 최초의 동인지 『산문시대』의 발간을 시작으로, 『68문학』 동인을 거쳐 1970년 다시 김현, 김병익, 김주연 등과 함께 계간지 『문학과지성』의 창간으로 이어지는 오랜 기간 동안의 평론 활동을 통해서 평론가 김치수는 한국 비평문학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겨왔다. 그의 문학 활동의 궤적 자체가 한국 현대 비평사의 그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이 책의 1부 「문학적 편력」이란 제목의 자서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평론가 김치수가 걸어온 비평적 이력은 흔히 4·19세대라 불리는 우리 문단사의 빛나는 한 세대의 자취를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이 세대는 기존의 전통적 가치가 갖는 완고한 보수성에 반기를 들고 한글을 무기로 한국 문학을 갱신해나간 새로운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동세대의 정신적 동질성을 밝히고 새로운 감수성의 근원을 구명하는 작업에 주력하였다. 이 고난스러운 비평적 싸움으로 오늘의 한국 문학이 자립적인 자신만의 전통과 향취를 갖게 되었다는 점은 여기서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문지”의 4·19세대 비평가들 중에 김치수가 처음으로 대학 사회에서 정년 퇴임을 맞는다. 4·19세대 비평 그룹의 핵심인 그의 퇴임은 한편으로는 4·19세대의 문학적 퇴장의 신호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4·19세대가 우리 세대에 새롭게 던지는 문학적 도전으로 읽힐 수 있다. 현재 한국 문학의 지형도는 이 4·19세대의 비평적 작업에 의해 그 큰 틀이 마련되었으며 아직도 여전히 그 자장(磁場)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4?9세대의 비평적 활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단지 하나의 문학사적 질문이 아니라 오늘의 문학에 묻는 절실한 비평적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2000년 『삶의 허상과 소설의 진실』을 내고 꼬박 만 5년 만에 상자한 이번 평론집은, 2부에 실은 7편의 글을 통해, 그동안 세계화 시대의 한국─한국 사회와 문화─다시 한국 문화와 문학(인문학)이라는 복잡하고 유기적인 관계에 놓인 한국 문학의 위상을 점검하고 또 그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학자 지식인으로서의 면밀한 분석과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다. 이 글들은 한 편 한 편이, 밖으로부터 오는 적과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적을 동시에 이겨내야 하는 1970년 당시의 엄혹한 상황에서 ‘문학’과 ‘지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계간지 『문학과지성』의 창간을 주도했던 저자의 문학적 실천/정신과 동일선상에서 읽히는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글들에서 비록 말로써 폭력에 대항하는 것은 참으로 힘겹고 때로 불가능하지만 문학이야말로 폭력이 부당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유일한 가치라는 저자의 엄중한 신념을 읽는다.
이 글들은 문학의 자율성과 스스로 변화를 꾀할 줄 아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문학의 변모,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과 괴리를 파악하고 그 극복의 길을 모색하는 문학의 역할 등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입장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또한 그는 60년대의 문학에 담긴 철학적 사유, 70년대 문학에서 확인되는 사회학적 상상력, 80년대 문학에서 볼 수 있는 도전적 서사성에 주목하는 한편, 90년대 문학을 ‘감각의 혁명’이라 명명하고 젊은 작가들의 자유분방하고 개성적인 변화를 주목하면서도 그 가운데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는 상상력의 창조적 사용이 아닌 소비적 남용과 모방을 지적함으로써 21세기 한국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 경계해야 할 작가들의 과제를 언급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텍스트를 꼼꼼히 읽는 것은 우리의 삶을 꼼꼼히 사는 것이다.” 김치수의 비평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이런 김치수의 문학관을 뒷받침하는 글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문구, 박완서, 황석영, 김주영, 윤흥길, 이어령, 정현종, 황동규, 최윤 등 우리 시대 문학의 거목들과 눈높이를 맞춘 13평의 꼼꼼한 작품 분석과 해석들이다. 평소 “문학은 철저하게 텍스트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텍스트를 떠난 문학은 공허한 논리이며 당위의 지배이다. 당위가 지배하는 사회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와 같은 토톨로지의 세계이며 의심하고 알아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사는 사회나 제도는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완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은 불완전한 것을 어떻게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의 허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문학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따져보는 것이 삶을 허황되게 살지 않는 방법이며, 동시에 문학을 문학으로 보고자 하는 태도이다”라고 목소리내왔던 그의 문학적 자의식을 실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작가론과 작품론으로 채워져 있다.
비평가 김치수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는 모임이 3월 17일 오후 4시, 이화여자대학교 LG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이번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된 비평집 『문학의 목소리』 이 외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마련된 정년기념논문집도 함께 발간되어 그의 퇴임을 기념하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분석과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특정 주제나 현상을 파악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주제와 현상의 보편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것만이 문학비평이나 문학 연구가 1차 독서가 아니라 2차, 3차 독서가 되는 길이며, 그럴 경우에만 문학비평과 문학 연구는 문학과 삶과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그 질문을 통해서 그것들의 일면을 밝힐 수 있다. 그것은 문학과 사회의 관계도 이처럼 문학의 소재에 의해서만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욕망의 구조나 폭력의 존재 양태를 통해서, 혹은 소외의 구조를 통해서 밝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정보화되고 영상 문화의 영향력이 막강해진다 하더라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곧 문학의 죽음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달라지는 것은 문학이 독점하고 있던 ‘이야기’의 세계가 다양해짐으로 인해서 이야기로서의 문학의 역할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화되는 반면에 문자라는 선조적 구조물로서의 독창성은 영상이라는 입체적 구조물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독자적인 역할과 기능을 할 것입니다. 디지털 문화 속에서 문학은 아날로그 문화로 남을 것입니다. 이 경우 문학비평은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 문화의 존재 이유와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제1부
문학적 편력
제2부
세계화 시대에서 한국 문화의 상황
생태주의 인문학을 위한 제언
욕망 이론의 새로운 수용-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오늘의 한국 문학과 세계화의 전망
삶의 허상과 소설의 진실
한국 소설의 당면 과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한국 소설의 얼굴
제3부
젊음과 늙음의 아름다운 의식-박완서의 『저문날의 삽화』
대립과 통합의 시학-이어령 교수의 시론을 중심으로
자연과의 융합-황동규의 『풍장』을 읽고
이야기의 복원 혹은 서사적 소설의 가능성-김주영의 『아라리 난장』
생명의 시―삶의 고통 혹은 즐거움-정현종의 『견딜 수 없네』를 읽고
농촌 소설을 넘어서-이문구론
사랑의 시, 귀향의 시-박경석의 시
시간 속에 묻힌 상처와 치유-윤흥길의 「기억 속의 들꽃」과 『소라단 가는 길』
이념과 사랑-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고향에서 부르는 행복의 노래-진동규 시집
떠도는 자들의 언어-최윤의 『첫 만남』
낯선 땅에서 자아 찾기-유국진의 시
새로운 시도로서의 글쓰기-김다은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