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의 시인’으로, ‘거듭남의 미학’으로 평가받아온 시인 황동규의 열세번째 시집 『꽃의 고요』출간!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출간 이후 3년만이다. 새 시집에 담긴 작품은 예술의 진경을 타개하려는 시인의 고투와 유한한 생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정신의 모험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체감할 수 있게 한다. 정갈하고 담백하게 읽히는 그의 시편 내부에는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고뇌의 시간이 온축되어 있다.
1975년에 출간된 『삼남에 내리는 눈』 이후, 그의 시집 출간은 약간의 편차를 제외하고는 3년 주기의 규칙성을 유지하고 있다. 뚜렷한 변화의 족적을 남기려는 시인의 창조 정신이 각 시집마다 선명하게 각인된다. 예를 들어, 『외계인』(1997)은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극서정시의 특징적 단면들이 동양적 사유와 결합되면서 서정의 영역을 확대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2000)는 극서정시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다면적 접근, 외로움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지적인 탐색을 통하여 “홀로움”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는 이 “홀로움”의 측면을 더욱 정제된 형태로 구조화하여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을 심화하는 한편, 석가와 예수, 원효를 등장시켜 선문답 같은 형식으로 생의 비의(秘義)를 탐색하는 시편을 시도하여 전인미답의 새로운 영역을 선보였다. 이것은 일반적 상식으로 고착되어 있는 예수와 불타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작업으로, 예수의 언행을 불타에게 전이시키고 불타의 언행을 다시 예수에게 전이시킴으로써 두 측면의 친근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이 양식이 계승되면서 그 전과는 다른 특징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요컨대 그의 시의 행보는 그 이전의 성과를 계승하면서 그것을 발전시키고 거기다 새로운 요소를 담아 넣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각각의 개별 시집은 그 이전의 시집과 계승과 극복, 지속과 갱신이라는 두 가지 관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시집은 계승의 측면은 많이 약화되고 창신(創新)의 측면이 전면에 드러나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집은 황동규 시의 전개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의 축을 형성할 것으로 판단된다.
의미는 왔다가 간다.
이번 시집을 만든 지난 3년여는 『유마경』을 읽고가 아니라,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엮은 기간이었다. 자아를 긍정해서 자아를 긍정하는 타인을 만나는 선(禪), 타인을 긍정해서 자아를 비우는 『유마경』, 이 속사정은 내가 때늦게 유마를 만났기 때문에 체득하게 된 것이다. ‘때늦게’가 아니었다면 저 무한 반복의 『유마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인가?
이제 ‘유마의 병상(病床)’을 떠난다. 혹시 다음 시집은 예컨대 지금 읽다 던지고 읽다 던지곤 하는 들뢰즈를 제대로 읽도록 하는 마음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 되지나 않을지.
―황동규, 「시인의 말」 전문
■ 시집 속에서
자꾸 졸아든다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다음은 그대 한발 앞서 간 영포.
차츰 살림 줄이는 솔밭들을 거치니
해송 줄기들이 성겨지고
바다가 몸째 드러난다.
이젠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영포 다음은 마이너스 포(浦).
서녘 하늘에 해 문득 진해지고
해송들 사이로 바다가 두근거릴 때
밀물 드는 개펄에 나가 낯선 게들과 놀며
우리 처음 만나기 전 그대를 만나리.
―「영포(零浦), 그 다음은?」 전문
사진은 계속 웃고 있더구나, 이 드러낸 채.
그동안 지탱해준 내장 더 애먹이지 말고
예순 몇 해 같이 살아준 몸의 진 더 빼지 말고
슬쩍 내뺐구나! 생각을 이 한 곳으로 몰며
아들 또래들이 정신없이 고스톱 치며 살아 있는 방을 건너
빈소를 나왔다.
이팝나무가 문등(門燈)을 뒤로하고 앞을 막았다
온 가지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을 수 없을 만큼 하얀 밥풀을 가득 달고.
‘이것 더 먹고 가라!’
이거였니,
감각들이 온몸에서 썰물처럼 빠질 때
네 마지막으로 느끼고 본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동체(胴體) 부듯 욕정이 치밀었다.
나무 앞에서 멈칫하는 사이
너는 환한 어둑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전문
일고 지는 바람 따라 청매(靑梅) 꽃잎이
눈처럼 내리다 말다 했다.
바람이 바뀌면
돌들이 드러나 생각에 잠겨 있는
흙담으로 쏠리기도 했다.
‘꽃 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
꽃잎을 어깨로 맞고 있던 불타의 말에 예수가 답했다.
‘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꽃이 울며 지기를 바라시는가,
왁자지껄 웃으며 지길 바라시는가?’
‘노래하며 질 수도….’
‘그렇지 않아도 막 노래하고 있는 참인데.’
말없이 귀 기울이던 불타가 중얼거렸다.
‘음, 후렴이 아닌데!’ ―「꽃의 고요」 전문
투명해진다. 하늘이 탁 트이고 딱지 앉았던 벌레 구멍 터지고
남은 살 자잘히 바스러지고 잎맥만 선명히 남은 이파리
늦가을 바람을 그대로 관통시킨다.
비로소 앞뒤 바람 가리지 않게 되었다.
산책길에 언제부터인가 팽개쳐 있는 돌
문득 눈에 밟혀 길섶 잇몸에 박아준다.
덮을 풀 한 포기 마른 나뭇잎 한 장 없이
한데 잠든 돌 꿈을 꾼 아침
혹시 딴 데로 옮겨줄까 다가가니
그는 하얀 서리를 입고 앉아 있었다.
괜찮다고,
하루 한 차례 볕도 든다고, 이처럼
마음 한가운데가 밑도 끝도 없이 내려앉는 절기엔
화사한 옷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앞의 햇볕 가리지 말아달라고.*
그 돌이 디오게네스를 기억하고 있었던가?
―「그 돌」 전문
■ 시인이 쓰는 산문
“앞이 확 트였다. 그 길 끝에 꽃들이 환히 피어 고개를 갸웃대며 기다리고 있었다.” 은퇴하고 나서 일 년여를 ‘빌빌거리며’ 살다가 지난 이 년 동안 디카로 꽃을 찍는 일에 ‘미쳐’ 온몸에 생기가 도는 국어학자 이 교수가 동트기 전 어둠 속으로 차를 몰고 사진 여행을 나설 때의 느낌을 전한 말이다. 가는 동안 꽃들이 어디론가 달아나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달린다. 이틀 동안 천 장 가까이 찍고도 저녁 무렵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끄는 꽃무리를 발견하면 저녁 광선으로는 좋은 사진이 안 나오니 그 근처에서 하루 더 묵고 다음날 찍어가지고 온다. 찍은 사진들을 어서 컴퓨터 화면으로 보고 싶어 때로는 딱지를 떼며 과속으로 달려온다.
시 쓰는 일도 이와 같다. 다른 게 있다면 마음에 드는 꽃을 아예 만나지 못하고 풍경만 담아가지고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딱지 떼기는 마찬가지이다.
■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황동규의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 개정판 1994) /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 개정판 1994)
몰운대行(1991, 개정판 1994) / 미시령 큰바람(1993) / 풍장(양장본, 1995)
외계인(1997) /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2000) /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2003)
시인의 말
제1부 참을 수 없을 만큼 | 절하고 싶었다 | 영포(零浦), 그 다음은? | 이런 풍경 | 향(香) | 철골은, 관음은? | 연필화(鉛筆畵) | 겨울, 서귀포 ‘소라의 성’에서 | 서귀(西歸)를 뜨며 | 슈베르트를 깨뜨리다 | 쓸쓸하고 더딘 저녁 | 밤술 | 홀로움 | 2003년 봄 편지 | 먼지 칸타타 | 화성시 남쪽 가을 바다 | 사라지는 마을 | 삼척 추암(湫岩) 노인들 | 만항재 | 허공의 불타 | 겨울비 | 천사와 새 | 연어 꿈 | 사방의 굴레 | 가을 아침 | 실어증은 침묵의 한 극치이니 | 비인(庇仁) 5층 탑 | 그날, 정림사지 5층 석탑 | 누구였더라? | 바다 앞의 발
제2부 시간 속에 시간이 비친다 | 꽃의 고요 | 고통일까 환희일까? | 인간의 빛 | 미운 오리 새끼 | 십자가 | 벼랑에서 | 요한 계시록 | 지옥의 불길 | 흔들리는 별 | 보통 법신(普通法身)
제3부 늦겨울 비탈 | 겨울 저녁, 서산에서 | 여수 구항(舊港)에서 | 죽로차 | 허물 | 정선 화암에서 | 다시 몰운대에서 | 다대포 앞바다 해거름 | 그 돌 | 마지막 가난 | 당진 장고항 앞바다 | 더딘 슬픔 | 부활 | 막비 | 외로움/홀로움 | 호프 ‘통 속으로’ | 안개 속으로 |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에서 | 훼방동이! | 카잔차키스의 무덤에서 | 그럼 어때! | 마지막 지평선 | 비문(飛蚊) | 시여 터져라 | 봄비 | 손 털기 전 | 델피 신탁(神託)
해설: 황홀하고 서늘한 삶의 춤_이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