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는 민중의 웃음과 지혜
생생한 표현, 예리한 풍자로 집대성한 러시아 문학의 영혼이자 자긍심
이솝, 라 퐁텐 등 잘 알려진 작가 이외에 일찍이 유럽에서 주목한 러시아의 세계적 우화 작가 이반 끄르일로프의 『끄르일로프 우화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되었다.
마음으로부터의 통쾌한 웃음을 자아내는 우화는 이미 고대 그리스를 비롯해 중국, 인도에서도 알려져 있었고 민중의 지혜를 전승하며 널리 읽혔는데 이는 끄르일로프의 우화들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에는 외국의 우화를 번역하는 데 그쳤던 끄르일로프는 30년 동안 한직에 머무르면서 우화를 창조하고 정리하였으며, 그의 우화 속에 드러나는 생생한 표현과 예리한 풍자는 19세기 초 전(全) 러시아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러시아 민중에 그 뿌리를 두고, 날카롭고 적절한 유머가 녹아 있는 속담과 격언들 속에서 성장한 끄르일로프의 우화들은 18세기 러시아의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하여 이후 그리보예도프, 뿌쉬낀, 고골을 비롯한 러시아 작가들이 지향한 사실주의 문학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끄르일로프의 우화들 속에는 잘 알려진 여타의 우화들과 마찬가지로 동물들과 사람들이 등장한다. 교활한 여우, 탐욕스런 늑대, 우둔한 곰 등 러시아 동화 속에 자주 등장했던 이들 동물들은 대부분 탐욕스럽고 위험한 맹수들로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을 약탈하고 박해하여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관리들, 재판관들, 정치인들을 풍자한다. 동물들을 통해 끄르일로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동물들의 자연적 특징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들이 비유하는 전형적인 인간의 특색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능숙한 작가적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 사람들을 등장시킨 대표적인 우화로는 「두 남자」 「농부와 일꾼」 등이 있는데 이들 우화는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들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어 민중 계몽에 일익을 담당했던 끄르일로프 우화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끄르일로프는 또한 평생 황제와 부패한 관리들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러시아의 사회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우화도 많이 창작했다. 그의 마지막 우화 작품인 「고관대작」에는 이러한 끄르일로프의 비판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며, 1825년 입헌 군주제를 주창하며 일어난 제까브리스트 난을 우화 속에 담아내기도 하였고(「면도칼」 「검」), 농노제를 옹호하며 민중들을 압살한 러시아의 전제 정치를 비판하는 우화(「물고기들의 춤」 「얼룩양들」 「고양이와 꾀꼬리」)를 쓰기도 하였다.
이 『끄르일로프 우화집』은 그의 우화집 9권 전체를 번역한 것으로 모두 198편의 우화를 싣고 있다. 번역의 대본으로는 1843년 뻬쩨르부르끄에서 출판된 『9권으로 된 끄르일로프 우화집』을 한 권으로 엮은 1956년 모스끄바 예술문학사 판 『끄르일로프 우화집』을 사용했으며 러시아 문학 전문 연구자가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하였다. 일반 독자들은 물론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는 물론, 최초로 작품들이 발표된 지면 및 작품 연보를 수록하였고 찾아보기를 실어 방대한 양의 이 우화집을 읽고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이 『끄르일로프 우화집』의 발간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적인 우화들이나 전통적인 우리 우화들과 비교해가며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적 문학 유산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