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이래 40년간 지속적인 평론 활동을 해옴으로써 우리 평단을 이끈 문학평론가 김주연의 열한번째 비평집이 발행되었다. 『디지털 욕망과 문학의 현혹』 이후 지난 5년 동안의 비평을 모은 이 비평집은 2000년을 전후하여 우리 문단의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던 ‘근대의 종언과 근대문학의 소멸’에 관한 논의 이후의 우리 문학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다. 디지털 문화가 이미 일상 속에 정착되고 TV와 영화 등 영상 매체의 위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오늘날, 이 비평집은 급박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문학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전망하면서도 디지털 문화에 편승하거나 이로부터 고립되는 것 이상의 과제가 문학에 주어졌음을 상기시킨다.
제1부는 2000년 이후 문단의 흐름을 정리하는 이론 비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0년대 이후 젊은 평단의 지형도를 정리하고 페미니즘의 새로운 양상들을 추적하며 인터넷 시대 문학 작품들의 흐름을 짚어나가는 현장성이 돋보인다. 제2부는 김주영, 김원일, 김용만, 이승우 등 소설가들의 신작에 대한 비평과 함께 그들에 대한 작품론·작가론이 이어지며 제3부에서는 황동규, 정현종, 마종기 등의 우리 시단의 거목들에 대한 작품론·작가론뿐만 아니라 고찬규, 강문정 등 신예 시인들의 작품론들을 아우르며 우리 시단을 폭넓게 조명하고 있다.
인터넷과 영상 매체의 위력으로 인해 위축될지 모를 문학의 미래를 우려하면서도 2000년 이후 우리 문학의 새로운 모습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각각의 작품론·작가론을 통해 문학의 연면한 맥을 재확인하는 이 비평집은 앞으로 다가올 ‘문학의 새로운 국면들’에 대한 기대를 결코 늦추지 않고 있다.
[책 속에서]
평단의 분위기가 자못 스피디하다. 세상의 관심과 세상의 미디어가 너무 빨리 변한다. 그 한 모퉁이에서 글을 써온 지 40년, 그 세월은 종이, 그리고 펜과의 경주였다. PC와 클릭으로 이어지는 마당은 단순한 매체 아닌 세상 자체의 갱신이므로 펜을 버리고 달려가는 일은 숨가쁠 수밖에 없다. 비평의 산지는 현장이므로 문헌의 시체공시장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대체 2000년을 전후하여 뜨겁게, 황당하게 달아올랐던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행로를 바라보면서 쓴 글들이 모아졌다. 구체적인 시인/작가론을 통해 본 문학의 새로운 모습은, 그러나 오히려 연면한 맥으로 이어져 있음은 어인 일인가. 사람과 테마는 바뀌지만, 마음이 스산하지는 않다. 세상은 거듭 새로워지기 마련 아닌가.
─「책머리에」에서
근대 논의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든 느낌을 주는 한국문학이 과연 문학의 전통을 거두어들이고 영상매체 쪽으로 권위를 넘길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매체와 더불어 오히려 새로운 시너지의 힘을 더욱 발휘할 것인지 숨고르기의 긴박이 조용히 흐르는 시간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문학의 새로운 문제의식이다. 근대문학이 소설 양식과 같은 형식을 통해 이성적 인간상의 구현과 시민사회 형성에 기여해왔다면, 욕망의 무절제한 질주에 의해 인간의 사물화·정치화를 촉진하고 섹스와 폭력 등의 인격 파탄, 병적 내면성의 극단화 등의 폐해를 유발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근대의 근본 문제와 더불어 우리 문학은 진지하게 앓아야 한다. 디지털 문화로의 편승이나 이로부터의 고립 이상의 과제를 보아야 한다.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에서
[목차]
제1부
근대 논의 이후의 문학
탈근대 명제 속의 근대_1990년대 이후 젊은 평단 지형 읽기 1
메타 비평의 유혹과 에고들의 매개_1990년대 이후 젊은 평단 지형 읽기 2
페넬로페는 천사인가_1990년대 이후 젊은 평단 지형 읽기 3
페미니즘의 새로운 양상_배수아, 천운영, 정이현의 소설들
인터넷 대중과 문학적 실천_새로운 소설 징후들을 보면서
글로벌과 문학의 동요
엽기의 문학, 문단의 엽기성
열정과 엄격의 행복한 모순_김환태론
왜 어린이 문학인가
제2부
서사와 서정의 섬세한, 혹은 웅장한 통합_김주영의『객주』다시 읽기
육체의 소멸과 죽음의 상상력_김원일의 『슬픈 시간의 기억』
상한 심령의 동반자_김용만 소설 『늰 내 각시더』
포박된 인생과 그 변신_이승우론
광야에서 살기, 혹은 죽기_이승우의 『심인 광고』
제3부
현대시의 새로운 깊이와 도전_제1회 미당문학상을 보면서
시의 홍수와 에스프리_제2회 미당문학상을 보면서
다양성 속 성숙의 맛_제3회 미당문학상을 보면서
자기 확인과 자기 부인_황동규 시의 종교적 전망
따뜻한 사랑이 오는 곳_마종기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결핍의 열정_고은 시집 『두고 온 시』
바라봄의 시학_김형영 시집 『낮은 수평선』
신발 벗고 가볍게 날기_박형준 시집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생명의 허무와 감격_김길나 시집 『둥근 밀떡에서 뜨는 해』
시 그리기_진동규 시집 『구시포 노랑 모시조개』
아, 아름다운 생명아_고찬규 시집 『숲을 떠메고 간 새들의 푸른 어깨』
불면의 은혜_강문정 시집 『양철 가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