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시체들이 꾸는 꿈
– 편혜영의 괴기적 상상력이 펼쳐 보이는 창백한 디스토피아
현재의 실재와도 미래의 전망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폐허의 풍경
_손정수, 문학평론가
한국 소설의 특별한 ‘또 다른 시작’
_이광호, 문학평론가
편혜영의 소설들은 불편하지만 새롭다. 꾸준히 전개되는 엽기적 내러티브들이 가져오는 피로감에 붙들려 그것들이 표상하는 ‘저편의 세계’를 탐험하는 일은, 그동안 반문명의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윤성희나 천운영의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낯선 체험이 된다. 일견 이것은 한국 소설 안에서 그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든 새로운 장의 출발로 보이기도 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다음과 같이 편혜영의 소설을 평하였다.
“만약 이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하드고어적 이미지들 속에서 기이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현대 소설 미학의 낯선 차원을 만나는 두근거리는 모험이 될 것이다. 이는 근대 이후의 소설적 상상력의 어떤 ‘끝’에 해당한다. 이런 ‘끝’은 젊은 작가 편혜영에게는 하나의 눈부신 문학적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소설의 특별한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저 다자이 오사무의 말랑말랑한 낭만이 남아있는 “인간 실격”이라는 지칭은 편혜영의 소설에 와서 그로테스크한 ‘인간 실격’으로 화한다. 다자이 오사무가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인간 실격자로 전락한 심성 여린 젊은이의 내면을 그렸다면 편혜영 소설에서 보여지는 실격된 인간들은 좀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소설에서 인간은 역병이 도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추락하는 개구리이고, 단백질 부족으로 죽어가는 실험용 쥐와 다를 바 없고, 구더기로 가득한 방에 홀로 누워 생과 죽음의 구별도 하지 못하며, 외진 방갈로 한구석에서 괴물의 존재를 믿으며 썩어간다. 이런 존재를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간은 ‘세계’에 속할 때 인간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할 때 ‘세계’ 밖 저편 어딘가로 사라진다. 우리가 인간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설명 가능한 ‘세계’이다. 편혜영의 소설에서 ‘세계’는 안개에 가려진 듯 모호하고 존재만이 엽기적인 행동을 통해 부각된다. 그리고 이 모호한 세계에서 존재는 주체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세계로부터 주체로 호명받지 못했으므로 그들에게는 당연히 세계에 대한 주체적 욕망을 지닐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불구성 속에 내재해 있는 세계와의 불화라는 삶의 조건들은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조건이기 전에 그들이 세계로부터 부여받은 조건이며, 따라서 그들이 놓인 존재미달의 상태란 곧 세계가 그들에게 강요한 ‘존재박탈’의 상태이다.”
_박혜경-문명의 심연을 응시하는 반문명적 사유
편혜영의 『아오이가든』은 이러한 ‘존재박탈’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실종사건이 벌어지고 미확인 시체가 발견되는 일들로 시작하는 이들 소설에서 일상의 평온한 질서는 깨어지고 그 뒷면의 끔찍하고 부조리한 세계가 드러난다. 대중적인 장르 안에서 이러한 사건들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된다. 불길한 사건들의 출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버티고 서 있는 이편의 세계는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편혜영의 소설에서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이러한 일들의 무대가 되는 ‘세계’가 우리가 모르는 저편의 세계가 아닌가 의문을 갖도록 한다. 이렇듯 불안정한 세계에서 인간은 동물과 벌레와 물질의 단계로 퇴보하며, 결핍과 장애에 처하고, 어떠한 희망이나 신뢰도 갖지 못한다. 이러한 편혜영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문명 세계 전체를 부정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지옥도에서 인간실격자의 입을 빌어 조용한 고백이 이루어진다.
“산 사람이 사람인 것처럼 죽은 사람도 사람이야. 자기가 살아 있다거나 죽었다고 느끼는 건 어느 한 순간이야. 그냥 평범하게 살아 있거나 죽어 있다가, 어느 날 불현듯 아, 내가 살았구나, 아, 참, 내가 죽었지, 이런 생각이 든다구. 그 순간을 제외한다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똑같이 살고 있는 거야.”
-「문득,」에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를 허물며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실격된 인간들도 살고 있다는 것,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의 뒷면에도 삶이 있다는 것일지 모른다. 사람들이 꺼리는 것, 공포스러운 것, 더러운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얼굴을 돌리고 싶은 극단적인 야만의 사건을 견디고 나면 그것들도 하나의 ‘삶’으로 승화된다.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들 속에서 기이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편혜영이 보여준 그 살풍경한 세계들과 조금 친해질 수 있다.
1. 저수지
2. 아오이가든
3. 맨홀
4. 문득,
5. 누가 올 아메리칸 걸을 죽였나
6. 만국 박람회
7. 서쪽 숲
8. 마술 피리
9. 시체들
해설|시체들의 괴담, 하드고어 원더 랜드_이광호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