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모든 전쟁에 대항하는 깊이 있고 감동적인 찬가!
전쟁은 인류의 역사에서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 버렸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 모르고 있는 전쟁들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불러오는 참담함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한 민족의 역사를, 개개인의 삶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고야 마는 이 전쟁은 왜 계속되는 것일까?
『병사와 소녀』는 전쟁의 전면보다는 이면을, 즉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실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그림책이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가슴 아프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전장에서 자기들의 적이라 불리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에게 왜 총구를 겨누고 있어야 하는지 그 타당한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그저 자기가 속한 나라에, 명령에 복종할 뿐이다. 전쟁의 당위성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자기들의 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끊임없이 폭발이 일어나는 전쟁터. 방금 전 전투에서 간신히 목숨을 구한 병사는 살았다고 안심할 수 없다. 언제 또다시 죽음의 공포가 몰려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자기편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병사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병사는 총성을 들었고 총알을 보았다. 그는 몇 초 안에 자신의 생이 마감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총알은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소녀가 나타났다. 손에는 꽃을 들고. 그 소녀는 자신을 병사의 ‘죽음’이라고 소개한다.
‘죽음’이라고 하기엔 소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천사들의 머리카락, 발랄한 눈빛, 부드러운 미소가 퍼져 나오는 입술…… 병사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소녀는 병사를 과거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이제 병사는 동료와 적들이 죽어 가는 참혹한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실체들을 생생하게 보게 된다.
병사가 처음 가 보게 된 곳은 전쟁을 지휘하는 사단 사령부. 그 곳에서는 많은 장교들이 병사들의 목숨을 놓고 주도권을 다투고 있다. 멋들어진 회의실에서는 정치인들이 평화 협상을 하고 있다. 그 평화 협상은 어느 지점을 국경으로 해야 각자 자기 나라에 경제적 이득을 줄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들은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또 다른 곳에서는 무기를 팔 방도를 궁리하고 돈 얘기가 오고간다. 결국 전쟁은 몇몇 강한 집단이 실리를 얻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실체들은 참으로 추악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생명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다들든 말든 개개인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뒤로한 채 자신들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배불리면 그만인 것이다.
전쟁의 뒷모습을 보여 준 소녀는 이제 병사를 처음에 만났던 곳으로 이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병사는 아까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총알을 보고 뛰어올라 죽음을 뒤로 연기한다. 그에게 주어진 나머지 삶을 값지게 산 어느 날 많은 손자들을 거느린 할아버지가 된 그 앞에 다시 소녀가 나타난다. 이제는 정말 소녀를 따라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전쟁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감동을 전해 주는 이 그림책의 또 하나의 백미는 단연 그림이다. 색지 위에 색을 입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찢어 붙인 후 다시 여백을 칠한 그림은 전쟁의 참혹함과 병사의 참담함을 조용하면서도 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전체적인 모노톤의 그림에 피와 죽음을 상징하는 빨간색을 사용해 강한 대비와 함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누군가를 향해 날아가는 총알을 점진적으로 배치해 죽음의 순간을 눈앞에 둔 병사의 절박한 심정을 긴장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소녀의 손에 이끌리어 전쟁의 추한 이면을 보며 강한 배신감에 휩싸인 병사에게 소녀가 했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아저씨를 속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