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스바루(すばる) 문학상’ 수상작
일본의 유서 깊은 도시 교토에서
스위스인 유학생 ‘나’와 시각 장애를 지닌 일본 여성 교코가 나누는
강렬하고도 애틋한 사랑이야기
1996년에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스바루(すばる) 문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조페티의 『처음 온 손님(いちげんさん: (여관이나 요정 등에) 단골이 아닌 처음 온 손님을 의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작가는 일본어로 쓴 이 작품으로 일본 내에서 대중적인 관심뿐 아니라 평단의 인정을 고르게 받았다. 또한 이 소설은 일본 영화(「이치겐산Ichigensan」, 1999)로도 제작되었고, 우리나라의 가수(강수지, 「Moonlight Dream」)가 라스트신에서 노래를 불러 주목을 받기도 했다.
나보코프(러시아 태생 미국의 소설가), 콘래드(폴란드 태생 영국의 소설가), 베케트(아일랜드 태생 프랑스의 작가)나 쿤데라(체코 출생 프랑스의 소설가) 같은 대문호들이 이미 자신의 고향을 떠나, 자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작품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른바 이런 ‘월경(越境) 문학’의 출발은 정치적 문제에 연루된 작가의 행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 세계화 시대를 맞은 21세기의 월경 문학은 전통적인 문학의 장르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전 세계적인 보편 문학, 일반 문학의 테두리에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우리에게도 이창래, 수잔 최, 던 리 등 미국 등지에서 한글이 아닌 영어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 이들의 경우는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재외 교포 출신이거나 이민자 신분으로 자신들에게 더 익숙한 언어로 작품을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월경 작가의 차별성은 비단 이중 언어 구사자bilingual로서의 언어 능력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타국의 이방인으로서 체득하면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자국민과는 다른 시선으로 해석하고 문학적으로 재현해낸다는 점이 바로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작가인 데이비드 조페티 역시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모국어로 쓰는 사람의 작품보다 뛰어난 것이 탄생된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속단일지라도, (월경 작가인 경우) 남이 절대로 쓸 수 없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장르의 문학”을 창조해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인다. 스위스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일본 문화와 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다가, 대학 때 일본으로 건너와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작가 데이비드 조페티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월경 작가로 꼽힐 수 있겠다.
일본어로 글을 써서, 일본 내에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한 데이비드 조페티는 자신의 직접 경험이기도 한 내용을 소설로 형상화한 『처음 온 손님』으로 1996년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수상을 결정했다는 ‘스바루 문학상’의 심사위원이자 작가인 세토우치 자쿠초(瀨戶內寂聽)는 이렇게 평했다.
일본어가 능숙하고 품위 있는 문장을 구사한다. 질적으로도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다. 방랑벽이 있는 스위스인 유학생 ‘나’가 유목민처럼 흘러든 일본의 교토에서, 시각 장애를 지닌 아름다운 여성 교코를 우연히 만나 사랑이 싹튼다. [……] 두 사람의 성(性)과 더불어 연애묘사도 깔끔하고 산뜻하다. 주인공의 상냥한 인간성도 흐뭇하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소탈한 구성도, 인물 설정도 보통 솜씨가 아니다.
일본의 교토에 유학 온 ‘나’가 앞을 보지 못하는 ‘교코’라는 소녀와 대면 낭독 시간을 통해 사랑을 나누면서 외국인(가이진)에게 곱지 못한 시선을 던지는 다른 이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인정을 경험한다는 내용이 이 작품의 주요한 줄거리이다. 작가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대목이 많음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