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상 수상 작가 잔니 로다리의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빨간 모자 이야기’
이탈리아의 대표적 동화 작가 잔니 로다리(1920~1980)는 동화를 ‘시로 만든 장난감’으로 생각했다. 그는 입으로 구전되어 오던 동화의 리듬과 음을 되살리는 재미있는 시를 쓰며 언어의 잠재력을 탐구하고 단어들이 지닌 자유롭고 조합 가능한 힘을 끌어냈다. 특히 “나중에 일어나게 될 일”과 “만일 ~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창조적인 글쓰기를 제시하기도 했다. 잔니 로다리가 사망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그의 글은 그 혁신적인 힘을 지금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잔니 로다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림 형제의 ‘빨간 모자 이야기’에 기발하고도 번뜩이는 상상력을 가미해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 그림책은 빨간 모자 이야기에 기본 토대를 두고, 아이들로 하여금 그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재미있는 설정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의 창조적이고도 혁신적인 글쓰기를 잘 보여 주는 그림책이다.
할아버지가 들려 주는 빨간 모자 이야기는 시작부터 이상하다. ‘옛날 옛적에 노란 모자가 살고 있었단다’로 시작하니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가 가만 있을 리 없다. 곧바로 ‘아니에요, 빨간 모자예요!’ 하고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잘못됐다는 것을 똑똑하게 알려 준다. 할아버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 나름의 창조적인 ‘빨간 모자 이야기’를 들려 주고, 이에 질세라 아이는 할아버지가 잘못 이야기할 때마다 잘못된 내용을 또박또박 일러 준다.
이렇듯 엎치락뒤치락 이어지는 할아버지와 아이의 대화가 지루하기는커녕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간결하고도 명확한 대화가 흡인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을 덮고 나면 모두 아는 이야기로 이렇게 재미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탄생시킬 수 있는 작가의 재치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그림책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그림이다. 단순히 보는 즐거움을 넘어 이야기의 함축된 의미를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러를 입힌 종이를 오려 붙인 콜라주 기법과 붓의 터치가 그대로 살아나도록 그린 그림을 조화시켜 생동감을 더했고, 강한 색의 대비와 과감한 컬러를 사용해 간결하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