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벽두에 우리 문학의 평단을 젊게 하는 새 얼굴들이 약진하고 있다. 그 가운데 90년대 여성 문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 있어 심진경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이 책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는 그의 지난 5년간의 글들을 모은 첫 평론집이다.
1999년 『실천문학』에 「여성성, 육체, 여성적 시 쓰기」를 발표하면서 평단에 들어선 올해 서른여섯의 젊은 평론가 심진경은, 등단 이후 줄곧 ‘여성’과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를 자신의 글 중심에 세우고 여성 문학 비평의 최전선에서 평론 활동을 해왔다. 스스로 “진짜 여성 평론가”의 길을 지향한다는 그에게 ‘여성’은 단순히 생물학적이고 존재론적 차원의 개념이 아니다. 그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고정된 형식의 거부가 좋은 문학의 요건이듯이, 문학의 한가운데서 그것의 핵심을 규정하는 요소로서 ‘여성’을 바라본다. 다시 말해, “상징적 질서의 모순과 틈을 들여다봄으로써 지배 질서의 승인을 거부하고 그 질서 속에서는 포착될 수 없는 욕망과 언어를 드러내는 존재”가 바로 ‘여성’이라는 것이다.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는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한국 현대 문학을 해석하고 그것의 방향을 그려보고자 한 성과물이다.
모두 5부로 나뉜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문학적 · 사회문화적 기제들과 그를 통해 구성된 여성의 허상, 그것을 매개로 지탱되는 문학의 환영과 이데올로기 등을 짚어보고 있다. 때문에 심진경의 글 속에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문학의 자장 속에 크고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서구의 지식인들 이를 테면, 리타 펠스키, 캐럴린 스티드먼, 프랑코 모레티, 마리안 허시, 앤 카플란 등의 저서를 읽고 정리한 흔적이 드러난다. 공부하는 비평가로서 심진경의 부지런한 일면이기도 하다. 아직도 뜨거운 담론의 ‘과정’에 놓여 있는 ‘페미니즘 문학’의 발전과 한계를 함께 살피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여성 문학의 가능성과 “문학의 최대치”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 문학이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상상적 몸을 통과해야만 한다.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기에 이광수는 영채라는 여성의 벌거벗겨진 육체를 마주 대한 뒤에야 비로소 조선의 현실을 문학적으로 통과할 수 있게 되며, 염상섭 또한 신여성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모순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영채의 육체는 서둘러 가려지고 신여성의 내면은 조작된다. 관념적 계몽 혹은 직접적 현실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여성은, 아니 문학은 성급히 봉합된 것이다. 그 결과 문학은 문학 이하 혹은 문학 이상의 것이 되고 만다. 그 봉합의 실줄을 풀어버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문학의 핵심을 온전히 전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부재를, 그 고독한 구멍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_「책머리에」에서
제1부 한국 문학의 섹슈얼리티
문학 속의 소문난 여자들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
불륜의 서사, 여성문학과 섹슈얼리티
제2부 여성성, 육체, 글쓰기
여성성, 육체, 여성적 글쓰기_김정란과 김혜순의 시를 중심으로
여성의 성장과 근대성의 상징적 형식_오정희의 유년기 소설
억압적인, 아니 해방적인_1990년대 여성문학에 나타난 ‘몸’의 문제
제3부 모성의 상상력
모성적 육체의 상상력_노혜경과 김혜순의 시를 중심으로
오정희 초기소설에 나타난 모성성
모성의 서사와 1990년대 여성소설의 새로운 길찾기
제4부 문학의 환영(幻影)
궁핍의 글쓰기, 궁핍의 상상력_백민석과 배수아의 경우
경계에 선 남성성_김훈의 소설을 중심으로
나쁜 남자/여자(들)과 농담의 생태학_이만교와 정이현의 소설
환상의 기원, 기원의 환상_환상 문학에 대하여
제5부 2000년대 한국 문학의 풍경
망각, 소외, 죽음―김영하의 『검은 꽃』과 백민석의 『죽은 올빼미 농장』
소설의 매혹_최윤, 전경린, 김경욱의 소설
지금, 소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_정영문, 정찬, 정정희의 소설
상처의 결을 따라가는 소설의 탐색_조경란, 배수아, 이해경의 소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_전혜성, 공선옥, 은희경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