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를 찾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 열 살 소년의 진정한 여성상 찾기!
■ 사춘기에 접어든 남자 아이의 눈에 비친 여자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이든 아이든 우리는 누구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이건 말 그대로 나와 다른 어떤 것에 끌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호기심이 끝까지 깨지지 않기를, 그래서 막연한 동경을 늘 꿈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호기심이 벗겨졌을 때의 그 실망감 또한 어른만의 것은 아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여자’라고 하면 으레 동화 속의 예쁜 ‘공주’를 꿈꾸기도 한다.
『공주의 발』은 사춘기에 접어든 열 살 난 소년이 여성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지면서 실망감 대신 오히려 건강한 여성상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가 건강하게 펼쳐진다. 작가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섬세하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작품 곳곳에 녹여 놓았다.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논하지 않으면서도, 여자에 대한 어리석은 환상을 깨라고 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작품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를 흩트리지 않은 게 이 작품의 큰 미덕이다.
주인공 소년 이반은 웬만해선 기가 죽이 않는 아주 당차고 똘똘한 아이다. 그런 이반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생기고 만다. 엄마가 일을 하게 되면서 갑자기 모리세트 할머니네 맡겨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모리세트 할머니는 발 관리 센터를 하고 계신다. 갖가지 무시무시한 드릴과 가위들이 가득한 방에서 하루 종일 할머니와 지내와 한다는 건 열 살 소년에겐 가혹한 형벌이나 다름없다. 잠도 못 이루고 걱정하던 이반은 드디어 멋진 탈출구를 생각해 낸다. 발 관리 센터에서 공주를 만나면 되는 것이다! 보나마나 공주는 발이 예쁠 테니까! 그리고 공주를 만나면 자기는 멋진 왕자로 변신하면 되는 것이다.
‘수백 개, 수천 개의 발들…… 그 가운데에 분명히 공주의 발도 있으리라.
발 치료실은 궁전으로 변하고, 나는 멋진 왕자로 변신할 것이다.’
■ ‘공주’는 어떻게 알아볼 수가 있을까?
발 관리 센터에서 조수 노릇을 시작한 첫날, 이반은 공주를 만나겠다는 꿈을 이룰 수 없으리란 걸 깨닫는다. 딱하게도, 모리세트 할머니의 고객들은 거의가 할머니들인 데다, 차마 사람의 발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징그러운 발들도 많았으니까…… 그러나 발 관리사의 조수 일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또 무뚝뚝한 모리세트 할머니에겐 뭔가 수수께끼가 숨어 있는 듯하다.
하루 종일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이반은 젊은 날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저 따분하기만 할 줄 알았던 할머니에게도 못 이룬 꿈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사랑의 상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반은 새로운 눈으로 할머니를 보게 된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매력적인 여인인 것이다. 손님들을 대하는 솜씨도 뛰어나고, 눈치도 빠르고 자상하기까지 하고…… 이제야 이반은 ‘공주’를 바라보지 않고 ‘여성’을 바라볼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발이 뒤틀리기까지 모진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들까지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할머니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이반은 늘 같이 축구를 하고, 같이 있으면 여자 아이가 끼어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선머슴 같은 이렌에게서도 제법 성숙한 여인의 면모를 엿보게 된다. 엄마의 큰 구두를 신고 신나게 춤을 추다 발에 물집이 잡힌 이렌을 업고 할머니의 발 관리 센터를 찾은 이반은 이제 공주를 찾으러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진짜 공주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동화 속에, 그야말로 공주처럼 얌전히 앉아 있는 대신 바로 이반 옆에서 살아서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공주는 발이 예쁠거라 생각한 이반. 매주 수요일마다 이반은 모리세트 할머니(발관리사) 아래에서 조수를 해서 돈을 받는다. 그리고 혹시 발이 예쁜 공주를 만날 수 있는지 내심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발 관리센터의 손님은 거의 할머니이다. 할머니들 중에는 공주가 없었고, 메그라위 부인은 얼굴도 발도 예뻤지만 착하지 않았다. 이반은 실망한다. 어느 날, 이반은 이렌의 발에 생긴 물집때문에 발 관리센터에 데려갔다. 그런데! 이렌이 맨발로 축구하는 진짜 공주였다.
2010.2.12. 이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