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고백이 판을 치는 세상,
비루하고 힘없는 이들의 ‘황홀한’ 우화(憂話)
황혼녘의 이야기판에 뛰어든
활달한 이야기꾼의 신명기!
1999년 월간 『현대문학』에 신인추천으로 등단한 젊은 작가 이기호의 첫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나왔다. 지난 5년 간 여러 잡지에 발표해온 여덟 편의 작품을 한데 묶은 이번 소설집은 해설을 쓴 우찬제씨의 명명대로 작가의 ‘이야기하는 욕망과 대화적 상상력’의 탁월한 성취들이다. 일찍부터 그의 소설집을 기다려온 사람들은 요즘 젊은 세대 작가군에서는 보기 드물게 튼실하고 굵직한 서사성을 갖추고서 단편을 발표해온 그를 ‘성석제의 뒤를 잇는 자재(資材)롭고 재미진 신세대 이야기꾼’으로 부르면서 그의 화려한 문학판 입성을 기대해왔다.
작가는 이 단편집에서, 2004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엽기 살인 행각으로 사람들 입질에 오르내린 ‘보도방’ 문화(「버니」)를 비롯해 절에서 길러진 고아 소녀(「머리칼 전언」), 지하철 앵벌이(「옆에서 본 저 고백은」), 생활에 찌든 무능한 가장(「최순덕 성령충만기」), 자기 이름 석 자밖에 쓸 줄 모르는 청년(「백미러 사나이」), 민통선 근처서 감자밭 가꾸기에만 여념이 없는 순박한 아낙(「발밑으로 사리진 사람들」)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우리 사회 주변부로 소외당한, 게다가 교양이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막돼먹은’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재로만 보면 그다지 이채로울 게 없는 듯하나, 저잣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자잘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서” 윤택하게 재생산해낸 재주 부림은 단연 그만의 비범한 능력이다. 거기다 여러 가지 직접화법(「햄릿 포에버」의 피의자 조서, 「버니」의 랩 가사, 「최순덕 성령충만기」의 성경 의고체 말투,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액자소설 형식)의 형식을 빌려 독자들을 이야기판으로 불러들여서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때 독자는 청자로 거듭나 이야기 속에서 함께 소통하는 적극적·능동적 주체로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이기호의 소설은 감각적 문체와 소재로 무장한 뮤직비디오나 영화 같은 비주얼 아트에 비견되는 근래 젊은 작가들의 작품 세계와는 현격하게 구별된다. 투박하나 정겨운 소설 본연의 자리를 파고드는 그의 무던한 노력은, 우리네 마당놀이나 서양의 카니발 같은 축제의 장으로서의 이야기판을 만들어낸다. 1인칭 직접화법의 단조로움과 일상성을 극복하기 위해 구사한 ‘우의적 말투’나 문장 사이사이 교묘하게 숨어든 ‘조롱’과 ‘냉소’는 다양한 이야기 스타일 계발과 자신만의 재미있는 말법을 구사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의 일환이자 긴하게 선택된 전략이다. 한껏 어둡고 진지한 리얼리티 세계에 놓인 주인공들이 2차적 상상(역시 본문에서 언급되는 “현실보다 더 생생한 환각” 같은 상상)의 세계를 거쳐 진한 페이소스와 실소를 동시에 품어내는 대목에서 독자는(혹은 청자는) 엉뚱하지만 제법 살만 한 세상 속에 놓인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기호의 이야기가 나름의 호소력과 설득력을 인정받는 대목이다.
예컨대 이기호의 ‘삐딱한 세상 보기’는 유쾌하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주인공 ‘이시봉’처럼 작가 이기호에게도 타고난 이야기꾼에게 부여된 비밀스럽고 독특한 망원경이 있는 걸까? 이를 두고 해설을 쓴 우찬제씨는 “환상적 전제를 바탕으로 서사의 실마리를 마련하며, 그것을 통해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전략을 수행하는 것, 이것이 이기호 소설의 큰 특성”이라고 규정하고, “이야기 마당의 회복, 서상성의 회복, 그것이 이기호가 작가가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런 작가의 욕망은 행복하게도, 썩 잘 읽히는 이기호 소설을 창작케 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은근한 상찬을 아끼지 않는다.
첫 소설집인 만큼 그가 아직 못 다한 이야깃감과 형식의 세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서사의 종언과 함께 “구식 문청들의 황홀한 몽상”이 외면당하는 신산한 시절에 등장한 이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가 자못 기대된다.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눈앞에 보이는 아무 땅이나 파보아라. 지상에서부터 약 십오 센티미터 정도만 파고들어가면, 그곳에 당신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당신이 상상치도 못했던,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을 테니……. 주변이 온통 시멘트 천지라고? 철물점에 가서 시멘트 깨부수는 망치를 사라, 이 친구야. 시멘트 밑에 뭐가 있겠는가?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
“당신, 지금 유부남을 사랑하고 있다고? 그 때문에 풀어놓을 말들이 많다고? 그래, 그럼 우리에게 와. 딱 하루만 우리와 함께 지하철을 돌자고. 그러고 나서 무슨 생각이 드는지 말해보자고. 유부남이 떠오르는지, 유부국수가 생각나는지.” _본문에서
그는 결코 폼을 잡는 이야기꾼이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누구보다도 이야기꾼이 어떤 존재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장식으로서의 문학을 거부한다. 그는 활달한 이야기꾼이기를 소망한다. [……] 잡다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그는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서 제법 윤택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폼 잡으며 거론하는 서사의 종언 담론 따위를 슬며시 조소한다. 이기호, 그에게 이야기의 바깥은 없다! _우찬제(문학평론가)
돌아보니 지난 오 년, 내 삶의 궤적이 꼭 그 꼴이었다. 해산되어버린 서커스단의, 그리 신통치도 않고 게으르기까지 한 문어. 심수봉 누님의 전언처럼 ‘사랑밖에 모르는’ 문어. 그 문어의 혼잣말이 바로 여기에 묶인 소설들이다. _「작가의 말」에서
버니
햄릿 포에버
옆에서 본 저 고백은─告白時代
머리칼 傳言
백미러 사나이─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간첩이 다녀가셨다
최순덕 성령충만기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해설 삐딱한 욕망의 카니발_우찬제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