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꿈을 싣고 어디로든 달려 보자!
■ 기획 의도
『달려라, 그림책버스』는 원주 ‘패랭이꽃 그림책버스’의 설치와 운영을 후원하기 위해 글 작가 일곱 명과 그림 작가 일곱 명이 글과 그림을 기증해서 만든 동화집이다. 인세는 전액 ‘패랭이꽃 그림책버스’ 운영 자금으로 쓰게 된다.
이 버스를 타면 아이들은
모두 신나고
온몸이 반짝이고
거인이 됩니다.
아이들은 천재가 되고
물고기가 되고
새가 됩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2004년 5월 1일, 박경리 선생의 옛 집터에 자리잡은 토지문학공원에 마련된 ‘패랭이꽃 그림책버스’의 개관을 축하하는 정현종 시인의 축시이다. 시인이자 그림책 작가인 이상희 선생이 4년간 간직해 온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널따란 유치원 방 한쪽 모퉁이로 애써 아이들을 몰아붙여도 ‘책 읽는 분위기’라는 걸 만들어 내기까지는 한참 걸린다. 아무래도 좀 특별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백일몽을 꾸듯 상상하곤 했던 것이 ‘그림책버스’였다…… 너무 낡아서 사람을 실어 나르기 힘든 버스를 하나 구한다, 안면 있는 화가 선생들한테 부탁해서 버스 외부를 멋지게 칠한다. 내부도 잘 닦은 다음 양쪽 창가에다 서가를 설치해 내가 모은 그림책을 쭉 꽂는다. 그런 ‘그림책버스’ 속에서 그림책을 읽는다면 틀림없이 재미와 효과가 배가되리라.
–「패랭이꽃 그림책버스가 나오기까지①」 중에서
패랭이꽃 그림책버스의 운전기사 이상희 시인의 꿈은 이렇게 소박하게 시작됐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의 독려와 관심은 이 꿈을 펼칠 수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굳이 폐차 버스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상희 시인이 폐차 버스로 그림책버스를 꾸민 이유는 이렇다.
내게는 ‘자연 속에 놓일 가장 경제적이고 간단한 형태의 상징적인 대승적 그림책 세계’, 이 다음엔 ‘어디에서 누구라도 좇아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그림책 세계’가 바로 ‘낡은 버스를 개조한 그림책버스’인 것이다.
–「패랭이꽃 그림책버스가 나오기까지②」 중에서
폐차를 구하는 과정과 더렵혀진 버스를 어디 앉아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만들기까지는 각처에서 여러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림책버스 완성의 의미는 더욱 큰 것이다. 맨손으로 일구어 낸 아름다운 도서관, 누구나가 주인인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버스’, 한 곳에 서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무수히 많은 정성과 사랑은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달리고도 남을 것이다.
드디어 개관을 맞은 날, 우리는 넘치도록 축하와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기운을 내어 이틀간을 저녁마다 모여 자정 넘겨 가며 출판사들이 선물해 준 그림책에 번호를 붙이고 정리하는 목록 작업을 했다. 5월 4일 처음으로 어린 친구들을 맞아들이기 시작한 이후 ‘패랭이꽃 그림책버스’ 앞에는 개방 시간 이전부터 갓난쟁이와 그 어머니들이 와서 기다리고, 유치원 파하는 시각이 되면 유모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패랭이꽃 그림책버스가 나오기까지⑥」 중에서
누구에게나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 다만 그 권리가 누구에게는 쉽고도 간단한 일이지만 누구에게는 쉽게 되어지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더욱이 환경이 따라 주지 않아서 그 즐거운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아이들은 의외로 많다. 그런 의미에서 ‘패랭이꽃 그림책버스’ 같은 도서관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비록 지금은 원주에 국한된 일이지만 다른 도시에서도 이런 운동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냥 길을 가다가 들러도 좋고, 그저 그림책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 가도 좋은 곳이니까 말이다. 이 그림책버스 한 대가 ‘책 읽는 분위기’를 절로 만들어 줄 것이다.
■ 내용 구성
이번 앤솔러지 동화집의 주 테마는 일곱 개의 사랑 이야기이다. 일곱 개의 사랑이야기인 만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할머니와 손녀의 사랑, 서로간의 지켜야 할 신뢰 등 소재도 다양하다. 한 권 안에 여러 작가의 여러 이야기와 다양한 그림을 맛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김밥이랑 깡통이랑」: 김서정 글·한성옥 그림
옆구리가 터졌다는 이유로 주인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김밥 최대의 영광을 얻지 못하고 버려진 김밥. 그런 김밥 옆으로 유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온 옆구리가 찌그러진 깡통. 주인이 자기를 예뻐해서 뽀뽀를 해 줬다는 둥 김밥 속 긁는 소리만 해 대니 김밥은 이 깡통 때문에 더욱 속이 상한다. 어찌됐든 둘 다 앞날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깡통은 비행기 날개가 되는 게 꿈이지만, 김밥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 순간 엄마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김밥을 먹으려 하자, 김밥은 꿈에 부푼다. 자기가 엄마고양이 젖이 되고, 그 젖으로 아기고양이를 먹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미나 울림」: 김지은 글·윤미숙 그림
다섯 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칠순이 넘도록 연길에서 고된 삶을 산 김순례 할머니. 이제 할머니는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맞게 된다. 맞벌이 부부의 아기 ‘박미나’를 돌보게 된 것이다. 갓난아이 때부터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기까지 미나와 보낸 할머니의 시간은 기쁨 그 자체이다. 할머니의 고된 삶을 한 순간에 녹이고도 남을 만한 미나와의 시간을 뒤로하고, 불법체류자라는 꼬리표가 붙기 전에 할머니는 연길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미나가 넣어 준 편지 봉투를 열어 본다. 비뚤비뚤한 글씨는 틀림없는 미나였다. “무릅 아프지 말아요. 김할먼이. 사랑해요. 미나 울림.”
「우체국 가는 언덕」: 황선미 글·유문조 그림
눈 쌓인 언덕은 돌아오지 않는 아들에게 편치를 부치러 가는 할머니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 언덕 위에 할머니가 모아 놓았던 종이 상자를 들고 바짓가랑이가 눈투성이인 사내아이가 서 있다. ‘수취인 불명’이라고 찍힌 편지를 들고. 엄마에게 보내려고 편지 아저씨를 기다리던 중이란다. 그 의미를 설명해 주려던 할머니는 마음을 바꾼다. “우리, 따뜻한 거 먹으로 갈까?” 할머니는 아이 뒤 종이 상자에 앉아 작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꼭 안아 준다. 꽁꽁 얼기만 한 줄 알았던 아이의 작은 몸이 따뜻하다.
「아빠, 십자수를 놓다」: 이금이 글·김석진 그림
할머니의 등장으로 평온하던 집 안에 냉기가 감돌기 시작한 현우네 집. 평소에 집안일을 잘 도와 주던 아빠가 아무 일도 못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현우는 여자 친구에게 줄 십자수 열쇠고리를 만드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고, 자기가 공주인 줄 아는 현아는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결국 할머니와 엄마의 설전 끝에 할머니는 화가 난 채로 돌아가고, 엄마의 화를 풀어 줄 방법을 모색하던 아빠는 현우가 만들어 선물한 십자수 열쇠고리가 인기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엄마 생일 선물로 십자수를 놓을 생각을 하는데……
「바다 속의 피아노」: 이상희 글·한태희 그림
아빠와 엄마가 항상 돌봐 줄 수 없는 나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시간 보내기는 어디선가 들려 오는 피아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피아노를 사 줄 수 없었던 아빠는 나에게 꿈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바다 건너에다 제일 멋진 피아노를 주문했지만 태풍 때문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고. 바다 속에는 아빠가 사 주고 싶었던 피아노가 나를 기다릴 거라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피아노 자기를 찾아서 또도도도동 멋지게 한 곡 쳐 주길 기다릴 거라고…… 그리고 나는 어느새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는 철든 아이가 되었다.
「사과가 꼭 하나만 열리는 사과나무」: 박윤규 글·김종민 그림
조용하기 그지없는 칠성골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능금동자는 신기한 나무 한 그루를 주고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마을 사람 모두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신기하게도 사과는 꼭 하나씩만 열렸고, 모두 나누어 먹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견물생심이란 말이 있듯이 어떻게든 벼슬자리를 얻어 보려 한 까망쇠가 임금님께 바치려고 사과나무를 훔쳐 가자, 어디선가 능금동자가 나타나 사과나무를 다시 가져가 버린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까망쇠를 마을 사람들은 따뜻하게 맞아 주고, 칠성골은 사과나무가 없었던 때처럼 다시 사이좋게 지내게 된다.
「귀신 친구」: 이경혜 글·이형진 그림
씩씩한 엄마와 달리 너무너무 겁이 많은 미솔이는 어느 날 화장실에 갔다가 자기 또래의 귀신 친구 토희를 만난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귀신인 토희도 미솔이를 보고 겁을 냈다는 거다. 토희라는 이름도 하도 겁쟁이라 토끼 고기를 먹었나 보다고 귀신들이 붙여 준 이름이란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다. 미솔이는 토희 덕분에 밤길을 걸을 때도 한밤중에 깨어나도 이제는 조금도 겁을 내지 않는다. 언제가 토희가 옆에 있다는 걸 아니까. 더 신나는 일은 미솔이를 겁쟁이라고 놀리던 엄마가 한밤중에 화장실에서 토희를 만나고는 토희보다 더 겁쟁이가 되었다는 거다.
머리말
김밥이랑 깡통이랑
미나 울림
우체국 가는 언덕
아빠, 십자수를 놓다
바다 속의 피아노
사과가 꼭 하나만 열리는 사과나무
귀신 친구
패랭이꽃 그림책버스가 나오기까지
이 책을 함께 만든 글 작가와 그림 작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