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아폴로Apollo가 시와 음악의 신이면서 동시에 의료와 치유, 건강을 주관하는 신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한편 서양 문학사에 굵직굵직한 획을 그었던 작가 가운데 본업이 의사였거나 의학을 수련했던 이들―이를테면 러시아의 체호프, 독일의 벤과 실러, 오스트리아의 슈니츨러, 미국의 윌리엄스, 프랑스의 라블레와 몸, 영국의 키츠와 도일 등―도 적잖다. 그럼에도 의학과 문학은 그 학제 간 교류가 가장 힘들 것이라는 예측에 섣불리 이의를 제기할 만한 이는 많지 않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통념에 일타를 가하는, 국내에선 최초로 의학과 문학의 학제 간 교류의 산물로 마련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단행본이 나오는 데는 집필에 참여한 27명의 필자들뿐만 아니라 『의협신보』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아낌없는 노력이 뒤따랐다. 2003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문학과 의학’이라는 강의를 본과 2학년 학생들에게 선택 과목으로 개설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강의를 위한 첫 단계로 『의협신보』에 ‘문학과 의학의 만남은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기획을 연재했고, 그 연재가 학생들과 관련자들의 크고 지속적인 호응을 얻어 단행본 출간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연세의대의 손명세 교수와 의학교육학과의 이병훈 연구강사, 시인 마종기, 문학평론가 정과리 교수가 구체적 기획안을 내고 실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 책의 1장에서는 의학과 문학이 어떤 연계점과 공통의 문제의식을 갖고 함께 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놓고, 이제까지 서구의 의과대학에서 실시해온 문학 교과과정curriculum을 비롯한 객관적인 통계 자료와 학계 보고서, 그리고 현장에서 이를 체험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네 편의 글이 소개된다. 2장에서는 각각 중국의 신화전설과 그리스 신화, 시, 영화, SF 속에서 발견되는 의학과 문학의 드라마틱한 접점들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일별하고 있다. 이어서 3장과 5장에서는 의사와 작가라는 이중의 삶을 살면서 훌륭한 성취를 이뤄낸 작가들 혹은 그들의 작품 속 인물 탐구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문학사에 감춰진 비밀과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고 있다. 4장에서는 우리의 삶에서 의학이 “살아가는” 방식, 즉 의사의 윤리, 인간의 삶과 죽음, 존엄성을 앞에 둔 의학 기술의 진보와 그 이면, 의학이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이 문학 작품 속에서 전개되는 양상을 구체적 텍스트를 놓고 분석․정리하고 있다. 마지막 6장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내용들을 재정리하면서 의학 교육과 문학 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절대적 이유들을 개진하고 있다.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은 통해 새로운 상상력과 문제의식에 공감하기를 바란다. 한편 『의학과 문학』의 기획자들(연세의대와 의협신보)은 다음의 작업으로, 생명과 죽음, 질병과 고통, 광기, 의사의 인생, 의학과 사회, 의학과 의료 지식의 서술, 의학의 풍경이라는 주제에 해당하는 세계 문학의 걸작들을 담는 ‘의료 문학 선집’의 기획과 함께 의사 출신 작가들과 문학자들이 함께 모여 학회도 꾸리고 학술지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뜻 깊은 작업이 되리라 본다.
- 문학과 연애 중인 의사들 ‘문학의학학회’ 창립 [인터넷 의협신문]
- 문학과 의학의 이색 만남, 인간愛로 通하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