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에는 벌집처럼 수많은 방들이 있다. 그 방들은 각각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우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우화들이 반사하는 세계는 현실의 바깥들이기도 하고 시인의 내면이기도 하고 어떤 형이상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우화적인 시들은 잠언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일거에 바닥을 허물어뜨리거나 섬뜩하게 독자들의 굳어가는 뇌리를 파고드는 면도날 구실을 한다.
[시인의 말]
빠져나간다.
빠져나갈 수 없는 각도를
나를 도려내고,
흩어지는 사물들처럼
_2004년 5월 이수명
[시인이 쓰는 산문]
언어 이전이나 언어 이후를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언어 너머에, 언어 밖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듯이, 시는 언어를 통해 언어로부터 해방되려는 것이 아니다. 언어로부터 해방된 어떤 직접적이고 자연적인 세계, 즉물적인 대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를 통해 대상과의 거리를, 대상에 이를 수 없음을, 대상이 흩어지고 부서져 있어서 언어로 건질 수 없음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시다.
언어는 해방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희하는 것이다. 다양한 언어 실험들은 그 유희의 공간이 더 넓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언어를 넘어서려는 초월적 기도는 아니다. 언어를 초현실적으로 사용하거나 시에 기호나 숫자들, 그림을 들여온다고 해서 그것들이 언어를 넘어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시적 언어의 폭이 확장된 것이다. 하지만 언어의 밖을 꿈꾸지 않는, 물감처럼 불온하게 풀어져 있는, 목적이 없이 들불처럼 번지는 유희의 언어들, 도달점이 없어서 늘 최초에 도달해 있는, 낯을 가리지 않는 언어들은 역설적으로 해방감을 준다. 이 언어들이 언어를 지켜주지 않는 곳에서, 이미지를 난폭하게 탈환하는 곳에서 시는 솟아오르며 전율한다. 시인은 이때 저항하는 언어를 기울여 쏟아버리는 자이다. 그가 처음 보는, 생각보다 목이 긴 언어들을.
▨ 시인의 말
제1부
어느 날의 귀가
이식
포장품
우편배달부 김
벽돌 쌓기
꿈
그와 이야기를 할 때면
전지가위
벌레의 그림
혀에서 지푸라기들이 자라고 있다
금
먹이
트랙
해부
스무 개의 상자를 들고 오는 스무 명의 사람들
풀
도둑고양이
검은 고양이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제2부
두 개의 문
나는 구부렸다
너무 많은 손
검은 프라이팬
비명 소리
서랍 속의 벌레
금지된 놀이
면도
너의 얼굴
실내
새 한 마리
의자의 구조
마네킹
비오는 날
낙하산을 편 채
현상 수배
또 하나의 탈출
그 방을
신발장 속의 신발들
눈을 떴다가 감았다
그림자 놀이
모자
투명한 물고기
소리
벽을 바라보는 눈
개미의 날개
피아노 독주
물결
도망
비둘기 옆의 비둘기
시간의 손가락
거대한 테이블
제3부
통나무 의자
수챗구멍
데칼코마니
마흔
이빨들의 춤
빗물이 벽을 타고 흘렀다
페이스 페인팅
어둠의 신발
얼룩말 현상학
▨ 해설 : 꿈의 시나리오 쓰기, 그 후 /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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