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지워진 삶의 무게를 걷어 내고
자아를 찾게 되는 한 소녀의 성장기!
동생이 많은 집의 맏이는 할 일도 많고 ‘준부모’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어깨가 이만저만 무거운 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소홀했다간 예측 불허의 일들이 일어나는 데다가 그 일에 대한 책임까지 뒤따르기 십상이다. 작가는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아시아의 어느 나라를 배경으로 자기 삶에 지워진 무거운 짐을 벗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펼쳐 나간다.
타라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엄마를 도와 집안일까지 거들어야 하는 큰딸이다. 동생들은 자고 있지만 일찍 일어나 엄마를 도아야 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기며 불평 한 마디 늘어놓지 않는 착하고 믿음직한 맏이다. 물을 긷는 엄마를 따라 나가 강물에 손을 넣어 흐르는 물살을 느껴 보기도 하는 꿈 많은 소녀이기도 하다.
벼를 처음 거두는 중요한 날, 엄마는 타라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당부하고 나간다.
첫째, 나이가 많이 드셔서 일을 못 하는 할머니 말벗 해 드리기.
둘째, 돌도 안 된 남동생 잘 돌보기.(엄마는 젖 먹일 때나 들어올 수 있단다.)
이제 타라는 엄마 아닌 엄마가 되어 엄마가 이른 대로 하나하나 일들을 해낸다. 아기를 포대기로 등에 업고 이 일 저 일 집안일도 하고 할머니 말벗도 해 드린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타라는 등에 업은 동생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늘 엄마가 하던 대로 포대기를 살짝 풀어 허리 쪽으로 돌려 안는다. 그런데 하필 그 때 아기가 잠이 깨 팔다리를 흔들어 대는 바람에 땅에 떨어뜨리고 만다. 아, 그 일이 타라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될 줄이야.
다행히 아기는 다치지 않았지만 발에 흙이 묻고 만다.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이냐고?
그 나라에서는 남자 애들은 돌 되기 전에는 흙 안 닿게 키워야 한단다. 그게 전통이라나.
그렇게 애쓰며 엄마의 당부를 지켰건만 동생을 땅에 잠깐, 아주 잠깐 떨어뜨린 것으로 그 수고가 모두 물거품이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할머니에게 호된 꾸지람까지 듣고 만다. 타라는 얼마나 속이 상하고 억울했을까? 하지만 그 일로 타라는 자기 자신을 찾게 되니까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집을 나온 타라는 우연히 그림자 인형극을 하는 할아버지를 만나 그림자 인형극 공연을 도우며 자신도 뭔가를 할 수 있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으며 그 동안 맛보지 못한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가족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법. 타라는 자기가 왜 그 자리에 오게 됐으며 자기는 누구인지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자랐다는 걸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굵은 선으로 깔끔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된 일러스트레이션은 타라의 일상과 마음을 잘 표현해 준다. 또 그림자 인형극을 하는 장면은 마치 진짜 인형극을 보고 있는 것처럼 명암 대비가 뚜렷해 이야기 안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림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의상을 글의 분위기에 맞게 (천을 이용해)콜라주 기법을 써서 표현했는데, 이것 또한 그림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