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회 진해 선림사에서 손행자는 요괴의 정체를 알아보고, 세 형제는 흑송림(黑松林)에서 스승을 찾아 헤매다
제82회 아리따운 요녀는 삼장에게서 양기를 얻으려 하고, 당나라 스님의 원신(元神)은 끝내 도(道)를 지키다
제83회 손행자는 여괴(女怪)의 근본 내력을 알아내고, 아리따운 색녀(왑?는 드디어 본성으로 돌아가다
제84회 가지(伽持)는 멸하기 어려우니 큰 깨우침을 원만히 이루고, 삭발당한 멸법국왕, 승려의 몸이 되어 본연으로 돌아가다
제85회 앙큼한 손행자는 저팔계를 시샘하여 골탕먹이고, 마왕은 계략 써서 당나라 스님을 손아귀에 넣다
제86회 저팔계는 위력으로 도와 괴물을 굴복시키고, 제천대성은 법력을 베풀어 요괴를 섬멸하다
제87회 하늘을 모독한 죄로 봉선군(鳳仙郡)에 가뭄이 들고, 손대성은 착한 행실 권유하여 단비를 내리게 하다
제88회 선승(禪僧)은 옥화현(玉華縣)에 이르러 법회를 베풀고, 손행자와 저팔계, 사화상은 첫 문하 제자를 받아들이다
제89회 황사(黃獅) 요괴는 훔쳐온 병기 놓고 축하연을 베풀고, 손행자와 저팔계, 사화상은 계략으로 표두산을 뒤엎다
제90회 스승은 죽절산의 사자 소굴로, 사자 요괴들은 옥화성으로 각각 붙잡혀가고, 도(道)를 훔치려다 선(禪)에 얽매인 구령원성은 끝내 주인에게 굴복하다
오승은 지음
오승은(吳承恩)은, 문헌 기록에 따르면 자(字)는 여충(汝忠), 호(號)는 사양산인(射陽山人)이다.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으로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그나마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한 끝에,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그리고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태어난 시기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500년 또는 1504년, 세상을 떠난 시기는 1582년으로 추정된다. 지난 1981년 중국정부 당국이 오승은의 무덤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관 뚜껑에 ‘형왕부 기선(荊王府紀善)’이란 묘지명이 적힌 것으로 보아, 말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영주였던 어느 왕실에서 예법을 가르치는 한직(閒職)에 종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정부 당국은 그때 발견된 두개골을 감정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오승은의 상반신 입체 조각상을 빚어 세워, 『서유기』의 진정한 ‘저자’로 공인하였다고 한다.
임홍빈 옮김
임홍빈(任弘彬)은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구부 전문위원을 거쳐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책임편찬위원과 국방 군사연구소 지역연구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뒤 1992년부터 현재까지 개인 연구실 ‘함영서재(含英書齋)’에서 중국 군사사 연구와 중국 고전 및 현대문학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관계 역서로 『중국역대명화가선』(Ⅰ,Ⅱ) 『수호별전』(전6권) 『백록원(白廘原)』(전5권, 공역) 등이 있으며 저서로 『현대중국어교본』(상, 하)을 냈다. 그리고 한국 군사 문헌인 『문종진법 병장설』 『무경칠서』 『역대병요』 『백전기법(百戰奇法)』 『조선시대군사관계법』(경국대전, 대명률직해) 등 10여 종을 국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