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제63집을 발간하면서

이번 호 『사회와 역사』에는 60여 회를 넘긴 그간의 업적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글들이 실려 있다. 특집으로 마련된 세 편의 글은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와 자생적 근대화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김상준의 「온 나라가 양반 되기」는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급격히 증가된 양반의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의 연구들이 이 주제에 관해 흔히 인구학적 분석을 하거나 경제적 요인을 찾았던 것에 반해 김상준은 유교의 예론, 쟁의 정치, 상품 경제의 확대에 주목하며 이 문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박윤재는 「양생에서 위생으로」에서 개화파의 위생관을 다루면서 한말의 자발적 근대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필자는 개화파의 의학론을 위생론의 정립 과정으로 파악하면서 그들의 주장이 근대 국가 건설론과 어떠한 연관을 가지는지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최윤오와 우대형은 「조선 후기 유통망의 발달과 지주제」에서 부재지주와 유통망의 관련성을 검토하고 있다. 청주와 충주 지역의 개인 양안을 분석하고 두 지역의 서로 다른 유통망이 부재지주의 자본 축적에 어떻게 다르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특집의 논문에 더하여 두 편의 일반 연구 논문이 수록되었다. 김동노는 「거시 구조 이론에서 미시 사건사로」에서 미국의 역사사회학을 지식사회학적 접근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1970년대 이래로 역사사회학이 미국의 학계에서 기반을 잡아가고 그 연구 경향이 변화하는 과정을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학문 내의 지적 흐름에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 주은우는 「19~20세기 전환기 자연 풍경과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통해 풍경 가운데서도 특히 자연 풍경이 민족과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상징적인 의미화 실천들의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 필자는 자연과 풍경 역시 의미 작용의 담론적 실천들 바깥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번 호에는 연구 논문과 함께 연구 비평 논문과 연구 노트를 실음으로써 다양한 편집을 시도하였다. 이영림은 「근대 초 프랑스에서의 사적 영역의 창출」에서 아리에스가 책임 편집한 『사생활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사생활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이 외적 자극과 그로 인한 집단 심리의 변화가 개인의 심성에 각인되어 외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점을 정교하게 분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 측면이 초래하는 심성의 변화는 빠져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한석정은 「단독 제국에서 사과의 경제까지」에서 영미권에서의 일본 제국 연구의 경향과 과제를 살피고 있다. 필자는 제국주의 연구가 권력이라는 논제를 중심으로 모이는 경향이 있음을 파악하고 있는데, 이때의 권력은 전통적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정치적·경제적 권력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의 차원, 즉 이념적·사회적·문화적 권력을 의미한다. 정진성의 글 「일제 말 강제 동원기의 기업 위안부에 관한 연구」는 필자가 찾아낸 사료에 대한 연구 노트이다. 일본의 기타큐슈 지역과 홋카이도에 세워졌던 위안소를 중심으로 기업 위안소의 상황을 조사하면서, 필자는 다양한 일차 자료와 증언 조사의 결과를 정리 제공하고 있다. 책의 끝머리에는 정근식이 『까자흐스탄의 고려인』에 관해 쓴 서평 「중앙아시아 한인 연구의 전환을 기대하며」가 실려 있다.

─『사회와 역사』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