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펼쳐지는 손오공 일행의 기상천외한 모험!
정본 완역 『서유기』
6권 수록분: 제41회 ~ 제50회
제51회 심원(心猿)이 온갖 계책을 다 썼으나 모두가 헛수고요, 수공(水攻) 화공(火攻)으로도 마귀를 제압하지 못하다
제52회 손오공은 금두동에 들어가 한바탕 뒤집어엎고, 석가여래는 마왕의 주인을 넌지시 일러주다
제53회 삼장은 자모하(子母河) 강물을 잘못 마셔 잉태하고, 사화상은 낙태천의 샘물 떠다가 태기(胎氣)를 풀다
제54회 서쪽으로 들어선 삼장 법사는 여인국에 봉착하고, 심원(心猿)은 계략을 세워 여난(女難)에서 벗어나다
제55회 색마는 음탕한 수단으로 당나라 삼장 법사를 농락하고, 삼장은 성정(性情)을 지켜 원양(元陽)을 깨뜨리지 않다
제56회 손행자는 미쳐 날뛰어 산적떼를 때려죽이고, 삼장 법사는 미혹에 빠져 심원(心猿)을 추방하다
제57회 진짜 손행자는 낙가산의 관음보살에게 하소연하고, 가짜 원숭이 임금은 수렴동에서 또 가짜를 찍어내다
제58회 마음이 둘로 갈리니 건곤(乾坤)을 크게 어지럽히고, 한 몸으로는 참된 적멸(寂滅)을 수행하기 어렵다
제59회 당나라 삼장은 화염산(火e山)에 이르러 길이 막히고, 손행자는 속임수를 써서 파초선을 처음 빼앗다
제60회 우마왕(牛魔王)은 싸우다 말고 잔치판에 달려가고, 손행자는 두번째로 사기 쳐서 파초선을 손에 넣다
서유기 ― 총 목차
기획의 말
오승은 지음
오승은(吳承恩)은, 문헌 기록에 따르면 자(字)는 여충(汝忠), 호(號)는 사양산인(射陽山人)이다.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 지역에 해당하는 산양현(山陽縣) 출신으로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학관(學官)을 지낸 선비 가문이었으나, 부친 대에 와서는 그나마 몰락하여 소상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어릴 적부터 총기가 뛰어나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젊은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을 거듭한 끝에, 50세가 되어서야 성시(省試)에 급제하여 공생(貢生)이 되었다. 그리고 60여 세 나이로 겨우 동남부 지방의 일개 현승(縣丞)이라는 미관말직에 부임하였으나, 그것도 2년 만에 사직하고 물러나 불우한 만년을 보내다가 자손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태어난 시기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500년 또는 1504년, 세상을 떠난 시기는 1582년으로 추정된다. 지난 1981년 중국정부 당국이 오승은의 무덤을 발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관 뚜껑에 ‘형왕부 기선(荊王府紀善)’이란 묘지명이 적힌 것으로 보아, 말년에 후베이성(湖北省) 일대의 영주였던 어느 왕실에서 예법을 가르치는 한직(閒職)에 종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정부 당국은 그때 발견된 두개골을 감정 받아 그것을 바탕으로 오승은의 상반신 입체 조각상을 빚어 세워, 『서유기』의 진정한 ‘저자’로 공인하였다고 한다.
임홍빈 옮김
임홍빈(任弘彬)은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구부 전문위원을 거쳐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책임편찬위원과 국방 군사연구소 지역연구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뒤 1992년부터 현재까지 개인 연구실 ‘함영서재(含英書齋)’에서 중국 군사사 연구와 중국 고전 및 현대문학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관계 역서로 『중국역대명화가선』(Ⅰ,Ⅱ) 『수호별전』(전6권) 『백록원(白廘原)』(전5권, 공역) 등이 있으며 저서로 『현대중국어교본』(상, 하)을 냈다. 그리고 한국 군사 문헌인 『문종진법 병장설』 『무경칠서』 『역대병요』 『백전기법(百戰奇法)』 『조선시대군사관계법』(경국대전, 대명률직해) 등 10여 종을 국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