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1
소설에는 주인공이라는 것이 있고 그리고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소설 읽기라고 일단 생각하는 독자라면, 이 책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실망스러운 것이 될 터이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2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씌어졌고 ― 평소의 내 스타일과는 아주 다르게 ― 한 부분이 끝난 다음에 그것을 거의 잊어버릴 만하면 다음 부분을 시작하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을 쓰고 있는 동안에, 내가 분명히 기억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두 권 이상의 책과 단편들을 썼다. 주변의 환경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많이 변화했다. 다른 글을 쓸 때 내가 보통 그러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지도 않았다. 이것을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빈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분명한 빈곤인 개인적으로 겪는 가난, 궁핍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자기애의 치명적인 상처 등이다. 어떤 시각으로 본다면 현재 빈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말이다. 그것은 더 이상 보편적으로 중요한 화제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를 말한다면 좀 다르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거나 혹은 직접 만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서 빈곤을 읽었다. 가난을 겪은 사람이나 심지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말고는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읽은 것이 없다고 말할 수조차 있다. 극단적으로 단언해서, 나를 포함해서, 빈곤하지 않은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최초의 모티프가 되었다. 물론 내 시각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모든 사람이 ‘일반적인 것’만을 써야 한다면 아마도 내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한 전문가로부터는 ‘만일 네가 그랬다면, 정말로 빈곤한 것은 이 지상에서 너 하나뿐’이라는 조언을 들은 적도 있지만 뭐 나에게는 그렇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빈곤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그 경계는 모호해지고 개념은 다양해져서 사회가 진보하고 복잡해질수록 빈곤 또한 따라서 팽창하는 듯하다. 게다가 심지어는 점차 추상적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빈곤의 모습들은 이것을 쓰는 내내 나를 자극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터무니없는 욕심을 갖고 있기도 했는데, 빈곤과 마찬가지로 이 원고를 영원히 끝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두번째 유감스러운 일이다.
3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열정을 품는 대상이 생겼다. 그것은 몹시 고무적인 일이고 또한 상당히 드문 일이기도 하다. 나는 책이 갖고 싶었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책 말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책을 사야 하고 ― 나는 갖고 있는 책이 거의 없다 ― 책을 보관해둘 수 있는 책장이 있어야 하고, 또한 서재나 그와 비슷한 공간이 있어야 하고 결정적으로 책을 사거나 읽거나 선택하거나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한다. 첫번째 조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책장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서재를 만들 만한 공간이라고는 침실 한 귀퉁이뿐이다. 그런 욕구를 느끼자마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나는 많은 책을 버리면서 살아왔다. 아니 거의 모든 책을 버렸다. 내가 그 책들에 애착을 갖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이사를 자주 다니는 불안한 생활을 오랫동안 해서이기도 하고 대개의 책이 내가 직접 구입한 것이 아니기도 해서이지만 나는 열정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1979년에 샀던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를 기억한다. 당시에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꼼꼼하게 읽었고 오랜 시간을 지니고 다녔지만 1994년 더운 여름밤 다른 책들과 겨울 이불과 함께 오피스텔의 쓰레기 투입구 아래로 던져버리고 만 것이다. 오피스텔의 사이즈에 비해서 나에게 짐이 너무 많았고 매번 이사하기에 책은 너무 번거로우며, 나는 책 따위에는 전혀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충동적인 결심이 있었을 것이다. 불안한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신경질적인 기분도 있었을 것이다. 겨울 이불이 없으면 난방도 잘 들어오지 않는 그 건물에서 겨울에 어떻게 지내나 하는 걱정을 잠깐 한 것은 사실이지만 책에 대해서는 추호의 미련도 없었다. 그래서 중학생의 필체로 이름과 구입한 날짜와 그것을 구입한 성신여대 입구의 서점을 적어넣고 비닐 커버를 만들어 씌우기까지 한 나의 『러시아 혁명사』는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은 그 책을 다시 살 수도 없겠지만 다시 산다고 해도 1979년에 내가 산 그 책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서점에서 『책과 함께 살다』라는 서재 꾸미기용 인테리어 사진집을 보고 있었다. 그 사진집은 갖가지의 훌륭해 보이는 서재의 모습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소유자를 부유하고도 지적으로, 그러면서도 감수성도 풍부한 존재로 보이게 해주는 그런 서재 말이다. 그러나 나를 우선 사로잡은 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 책의 제목이었다. ‘책과 함께 살다’라니. 사람이나 개가 아니라 책과 함께 말이다. 그때 나는 1979년으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해에 샀던 책으로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표지가 다 떨어져나간 『의사 지바고』뿐이다. 발작적으로 모든 것을 전부 쓰레기 투입구 아래로 던져버리던 그 시간들 사이에서 내가 왜 그 책을 계속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1979년은 나에게는 그 두 권의 책을 샀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의미가 있는 해였다. 게다가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는 CD북을 선물받았는데 그 책의 제목이 ‘1979’였다. 물론 그 책에서는 1979년이 이란 혁명이 일어나고 오랫동안 사랑했던 동성애인이 테헤란 뒷골목의 지저분한 병원에서 죽은 해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나를 다시 열정적으로 만든 것들 중에 스위스 작가 크리스티안 크라흐트Christian Kracht의 『1979』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에필로그
이 책,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의 시작은 몇 년 전 거절당한 한 원고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어느 기업의 사외보에서 청탁받고 쓴 단편소설이 그 잡지에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내부에 지배적이어서, 실리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의 1회분이었다. 원고를 청탁하고 그리고 거절하는 역할까지 맡은 사람은 나에게 아주 미안해하고 자세한 상황을 여러 번 설명하면서 작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역력했으나 그 일로 인해서 나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말해도 상대편은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기분이 상하지 않은 이유는 그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고 그리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고 어느 정도는 예상하기도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그 원고를 시작으로 하는 비연속적인 이야기의 소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몇 년 동안이나 연재하게 된다. 그리고 원고를 거절당한 가장 최근의 경우는, 대학의 신입생들을 위해서 선배로서 짧은 (말하자면 인사의)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아주 열심히 써서 마감으로 정해진 날보다 한참이나 먼저 보냈는데 유감스럽게도 역시 거절당한 것이다. 물론 언제나 담당자들은 예절 바르고 친절하려고 매우 애쓴다. 이러다가는 거절당한 원고만을 모아도 어느 날인가는 책 한 권 분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2003년 3월
베를린 마르찬Marzahn에서
배수아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만두, 소양 치즈
모계 사회
성(聖) 모녀
지식인의 초상
눈의 여왕
두 마리 통통한 비둘기
털 모델
낯선 천국으로의 여행
황견(黃犬)
강시
검은 하루
그런데, 먹을 것 좀 가지고 있어?
나는 그냥, 낙서할 뿐이다……
콘트라베이스
예비적 서문-슬픈 빈곤의 사회
오직 무참히 짓밟힌 인간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