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그러니 내가 어찌 나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만 21세였다. 막 등단을 했고,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꿈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도스토예프스키의 낭만성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고 장편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이 모든 꿈이 꼭 실현되리라는 턱없는 믿음이 시나브로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이 ‘이곳’으로 바뀌기가 무섭게 장밋빛 꿈은 진눈깨비 빛깔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꿈꾸었으나 모스크바에 떨어졌고, 무수한 연구 자료들과 나의 설익은 생각들 사이에서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날이 많아졌으며, 유학 첫 해 여름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장편소설은 논문 작업에 밀려 완전히 뇌리에서 지워졌다. 재작년 겨울, 1996년 9월 이후 몇 번씩 폐기 처분했다가 또 다시 퇴고를 시도하곤 했던 이 소설의 원고를 다시 만지기 시작했다.
어학 연수 차 1년간 모스크바에 머물렀던 한 아이의, 어린 자식을 잃은 한 여인에 대한 지극히 산문적인 이야기와 어느 날 한국에서 날아온 어느 분의 지극히 시적인 문장, 정확히 ‘체념’이라는 한 단어가 삶과 사랑, 그리고 글쓰기의 응집소로서의 자살 테마를 완성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작가로부터 끝끝내 버려지고 만 ‘영원한 실패작’이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원죄’인 『분신』에 비하면 이 소설은 운이 좋았던 셈이다. 원고가 한 편의 글로 완성되기까지는 거의 6년이, 책의 모양을 갖추기까지는 7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처음 원고의 절반 가량을 미련 없이 흘려보냈고, 한때는 절실했던 것이 이제는 담담한 미적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니 새해 겨울 부산에서 모스크바로 들려온, 어느 새 환갑을 바라보고 계신 아버지의 애틋한 말씀대로 나도 조만간 서른이 된다. 지금 이 순간, 21세 때 내가 가졌던 야망을 닮았던 꿈들은 한 가닥 청승맞은 한숨으로 바뀌어버린 듯하다 ─ 카프카의 ‘집으로 가는 길.’
이 소설의 화두를 제공해주신 「얼음의 도가니」의 작가 최수철 선생님께, 그리고 몇 년 전 이 소설의 원고를 되돌려 주시며 뼈아픈 충고를 해주셨고 더불어 이 소설을 끝맺음하게 해주신 이인성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2003년 2월, 모스크바에서
서(序)를 대신하여
지루한 말들
늘어지는 말들
「소설초고」
추악한 출현
터뜨려지는 말들: 설사
‘방에 대한 소고’
‘나쁜 피’
‘위대한 통속’의 소설화에서 발생하는 문제
어그러지는 말들
‘사랑을 위하여’
바스러지는 말들
(뭉크의) 사춘기
닳아지는 말들
결(結)을 위하여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