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943년 크리스마스 밤, 북해 근처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손은 시베리아 토끼 털로 만든 외투에 달려 있는 하얀 털 방울을 별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얼굴까지 눌러쓴 모자에다, 네 살 반의 나이에는 걸맞지 않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늑대 가죽으로 된 담요를 무릎에 덮은 채 의자 속에 파묻혀 있었다.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썰매는 눈 위를 재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마부는 채찍을 높이 쳐들고 제설기 아래로 부드럽게 부딪히는 소리와 양편으로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조용히 썰매를 몰고 있었다. 썰매는 관목 몇 그루만 보이는 적막한 들판을 지나 시커먼 바다를 따라 달렸다. 물거품에 젖은 가시양골담초, 강풍이 휘몰아치는 둑, 흘수선 위에 일렁거리는 거무튀튀한 동그란 표시등이 보이는 그곳에는 말의 울음 소리가 귀를 멍하게 하는 요란하면서도 규칙적인 폭음 소리에 뒤섞이며 계속 들렸다. 초소에 도착했다. 아흐퉁Achtung(주의)! 할트Halt(정지)! 마부는 손을 올려 경례를 하는 군인에게 아우스바이스Ausweis(증명서)를 내보였다. “보내…… 통과시켜……” 보초병이 가시 철망을 발로 밀며 방벽을 열었다. 썰매는 군사 주둔지까지 계속 달렸다. 이따금씩 비쳐지는 전조등과 눈〔雪〕의 반사광이 병영을 환히 비추어주었다. 때때로 하늘에는 빛이 스쳐가고 얼굴 위에는 섬광이 비쳤다. 멀리서 예광탄이 긴 아치를 그리며 빛을 발하자 갖가지 색깔의 조명탄이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을 만들며 천천히 다시 떨어졌다. 마부는 썰매에서 뛰어내렸다. 썰매의 낮은 문을 열어 소녀가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보초병이 다가와 병영 문을 열어주었다. 소녀는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갔다. 문을 들어서자 보초병은 어린아이의 털외투를 벗겨주었다. 아이는 목 주위에 하얀색의 작은 꽃이 두 줄로 수놓인 장식 깃이 달려 있고 팔 부분을 볼록 부풀린 짧은 소매의 자주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양쪽으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고 안쪽에는 어두운 색의 큰 군기가 걸려 있는 초라한 연단으로 앳된 얼굴의 해군 두 명이 아이를 에스코트했다. 그리고 해군들이 아이를 들어올려 연단 위에 내려놓자, 아이는 경이로운 목소리로, 환상적인 목소리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 시작했다.
서문
제1장 거룩한 밤
제2장 굉장한 밤
제3장 한 장의 종이
제4장 44 W.44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