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도움말]
출간을 거듭할수록 독자 여러분을 점점 더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로 인도하는 우리의 친구 아스테릭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이번 편에서 아스테릭스와 그의 친구들은 ‘대결투’의 장으로 우리들을 안내합니다. 대결투라! 제목만 듣고도 벌써 손에 땀을 쥐는 분들이 있네요. 그렇습니다. 여기서 대결투란, 골족의 족장들이 자신의 명예와 자기 부족의 지배권을 걸고 한 판 겨루는 것을 말합니다. 족장들의 대결인 대결투에서 한 족장이 승리하면 패배한 족장과 그의 부족은 순순히 자기 마을을 통치할 권리를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생사를 건 한 판 대결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겠죠? 이와 같은 대결투의 생생한 현장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 아스테릭스가 사는 마을을 다스리는 족장의 이름을 기억하시겠어요? 다른 어떤 것도 겁내지 않지만 하늘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것 한 가지만은 두려워하는 사람 말이에요.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동양에서는 ‘기우(杞憂)’라고 부르는 건 여러분들도 아시죠? 어쨌든 이런 ‘기우’를 품고 사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무쌍한 족장, 바로 ‘아브라라쿠르식스’입니다. 그가 다스리는 마을에 무적의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마술 물약’이 있다는 것은 로마 사람들뿐 아니라 골족의 다른 마을 사람들도 다 알겠죠. 그러니 아브라라쿠르식스에게 대결투를 신청하는 도전장을 내밀 족장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도전장을 내민 겁 없는 한 족장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콩크리트릭스!! 그는 로마 제국의 지배에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아스테릭스네 마을과는 다른 관점을 취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로마의 풍습을 받아들이고자 하죠. 사실 로마의 발전된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당시의 골족들에게 보다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었겠죠. 희생을 줄이면서 자신의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릴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발상은 어딘지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로마의 풍습이 골족 사람들에게 잘 맞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잖아요. 예를 들어, 본문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로마 사람들이 입는 ‘토가’는 로마보다 추운 골 지방에서는 도저히 옆구리가 시려서 입을 수가 없는 옷입니다. 아무리 토가가 멋져 보여도 입을 수 없는 건 입을 수 없는 거죠. 어쨌거나, 자기 마을 사람들에게 춥거나 말거나 토가를 강제로 입히려 드는 이 콩크리트릭스는 과연 무슨 배짱으로 아브라라쿠르식스에게 도전장을 던졌을까요? 콩크리트처럼 단단한 사람이라서? 헤헤. 그거야 만화를 보면 다 알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싶어요. 요즘 같으면 우두머리들끼리의 주먹다짐으로 한 부족에 대한 관리권이 왔다갔다하지는 않을 텐데요. 대신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같은 걸 하잖아요. 후보들이 출마하여 목에 힘주고 사진 찍어서 나 좀 찍어주쇼, 하는 거 말이에요. 주먹다짐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조금 원시적이랄까, 뭐 그렇긴 하지만, 이러한 결투 비슷한 것이 최근까지도 존재한 것은 사실이죠. 우리가 잘 아는 김두환이 일제 말기에 종로 뒷골목의 패권을 놓고 맨주먹만으로 상대 패거리의 우두머리와 한 판 붙었던 것은 잘들 아실 거예요. 옛날에는 주먹다짐이 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옛날에는 싸움이 중요했었던 거죠. 툭 하면 경계선을 넘어 옆 마을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오면 하기 싫어도 싸움을 해야 했고 그것이 나라 간의 커다란 싸움으로 확대되면 바로 ‘전쟁’이 되는 거죠. 인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싸움’은 인류의 문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지금도 미국 같은 나라는 툭하면 남의 나라에 싸움을 걸고 그 와중에 무기를 팔아먹어 재미를 보곤 하죠. 아무리 문명화된 세상이라 해도 싸움은 여전히 일어납니다. 물론 지금은 족장들끼리 주먹다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이 주먹다짐을 하지는 않죠. 대량살상 무기 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판에 주먹이 세냐 아니냐는 나라끼리 싸우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데 그리 중요한 기준이 아닙니다. 대신 주먹 싸움은 다른 방식으로 문명화된 세계 속에 존재하죠. 어떻게요? 예, 바로 ‘스포츠’의 일부로서 존재합니다. 싸움은 싸움을 붙이는 사람들에게는 꽤 돈이 되는 흥행거리이자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만만찮은 재미를 주는 볼거리입니다. 아마도 권투나 레슬링이 그렇게 흥행화된 가장 일반적인 싸움일 겁니다. 세계 챔피언이 있는가 하면 도전자들도 있죠. 어떤 때는 세계 챔피언들끼리 한 판 붙어서 전세계에 위성 중계방송이 되기도 하죠. 그럴 때에는 ‘세기의 대결!’ 뭐 그런 제목이 붙어 있기 십상입니다. 어쨌든 그런 대결이 있으면 전세계의 시청자들이 한 판의 싸움을 보기 위해 두 주먹에 땀을 쥐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습니다. 라운드 사이사이에 하는 광고방송의 광고료는 천문학적 숫자이기 일쑤고 경기를 직접 관람하기 위해 부자들은 한 자리에 몇백만 원씩 하는 표를 사서 바로 링사이드에 자리를 잡고 피가 튀는 싸움 구경을 하죠.
늘 이야기하는 점이지만, 아스테릭스를 보면 옛 전통적인 유럽의 문화와 역사가 현대의 문화와 독특한 방식으로 섞이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죠. 그게 참 재미납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은이들은 ‘대결투’를 통해 옛 골족들, 그러니까 유럽의 중부 지방에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의 호전적이고 일면 야만적이기까지 한 풍습을 그려 보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풍습을 현대 사회의 한 단면과 잘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대결투의 현장을 현대의 스포츠에 대한 열광과 빗대어 놓고 있어 보는 우리로 하여금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족장끼리의 결투가 요즘처럼 ‘스포츠화’된 경기는 아니었겠죠. 한 마을의 명운이 걸린 싸움인데 그게 어디 재미나게 즐기는 스포츠가 될 수 있었겠어요? 그러나 이렇게 대결투를 스포츠에 갖다 붙인 것이 아주 얼토당토않은 상상은 아닙니다. 이미 로마 시대에는 스포츠가 크게 성행하고 있었다고 해요. 로마 제국이 점차 타락하면서 통치자들은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자주 열었다고 해요. 검투사들끼리, 또는 검투사들과 맹수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요즘의 스포츠보다 훨씬 잔인한 방식으로 로마의 시민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아마도 아스테릭스 3권인 『글래디에이터가 된 아스테릭스』를 보면 이 점을 쉽게 확인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이 대중 스포츠가 발생한 시대라는 걸 감안하면, 이번 편에서 대결투의 현장을 현대의 스포츠와 결부시킨 것은 로마 제국이 골 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당시와 우리가 사는 지금의 문화를 다 같이 고려해볼 때 꽤 설득력 있는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은이는 로마 문화와 자국 문화 사이의 갈등을 겪고 있는 골족의 문화적 상태를 잘 그려내면서 그 가운데 골족의 용감무쌍함을 은근히 자랑하는데, 딱 거기서만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스포츠라면 무조건 열광하기만 하는 현대인의 세태를 옛날 옛적 이야기를 통해 은근히 비꼬고 있는 겁니다. 이와 같은 것을 문학에서는 ‘풍자 정신’이라 부르죠. 아스테릭스는 참 풍자 정신이 탁월한 만화이기도 합니다. 화려하고 정교한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런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에 아스테릭스의 인기가 오래 가는 겁니다. 먼 나라의 옛날이야기가 우리에게 생생하게 와닿는 이유도 그것이구요.